사찰방문기

통도사를 가다

한마음주인공 2022. 3. 2. 17:34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사찰에 속한다 송광사,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이다 그런 곳을 큰 계획을

세워 난생처음 통도사를 찾게 되었다 통도사를 가기 위해 신평 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국선 1번 마을버스를 타고

통도사 입구 출입문에 들러 입장권을 발급받고 개천을 따라 서측으로 이어지는 무풍 한송로를 걸어 들어갔다

 

 

무풍 한송로는 소나무들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거리를 오르면 부처님과 마주치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 영림 총국

통도사라는 푯말이 참 인상 적다 그리고 자연 모래가 있는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줄지어

길 양쪽으로 들어서 있고 소나무 짙은 향이 마음을 폭 은하고 상퀘하게 한다

 

 

통도사의 무풍 한송로길은 참 아름다운 소나무와 시냇물 그리고 조용한 풍광이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 여기저기가 정비가 잘되어 있고 내가 온 날 은 참 기온도 포근하여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 나는 대중

교통으로 들어가지만 이 길을 걷지 않고 차로서 경내 주차장까지 간다면 이 풍부한 소나무향이 그리울 것 같다

 

 

약 1KM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서  좌측은 큰 개울이고 좌측은 바위가 여기저기 솟아 나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여러 바위 여기저기에 한문으로 새겨진 이름이 바위마다 수없이 많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위에 이름을 새겨

자기 이름을 남기려는 경향이 많은 듯하다

 

예전에야 한문으로 바위에 글을 새겨도 한자를 이해하는 이 가 있었더라도 지금 한글 새대에는 바위 위에 새겨진 한문은

아무 소용없는 무지의 자연파괴가 아닐 수 없다 오전 사람들의 유명해지고 심은 심정은 이해되지만 지금의 현실은 참

하잘것없는 그런 무며의 무명 짓으로 보게 된다 이런 바위 이름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씁쓸하다

 

이어 계속 오르니 좌측에 성보 박물관의 큰 규모의 박물관이 새 건물로 단축되어 있어 들어가려다 그냥 지나쳤다

물론 내가 역사학자다 문화재 의원이면 들어가 보겠지만 그동안 책자와 디지털 세상에 이런 큰 박물관을 관연

산사에 두고 운영해야 하는지 그것도 박물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는 더욱더 싫었다 앞으로 이러한 박물관은

제발사찰 내에 설치해 주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다 통도사 자체가 그양 자연과 어울리는 박물관이 되었음 한다

 

 

이어 일주문을 통과하고 경내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단청의 색 바랜 건축물을 보는 순간 이것이 바로 우리 문화재의 진수임을 알게 한다  화려한 단청에 가리어 그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본래 오래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통도사의 문화재

보호 의미를 알게 한다

 

 

잠시 우측으로 발길을 도리려는데 홍매화의 발아 사진을 찍으려고 많은 카메라 맨들이 사진 셔터 기를 눌러댄다

나도 하도 궁금해 사진을 몇 장 찍고 오래된 사천왕 상문을 통과는데 사천왕상이 너무 크고 우람한다 사찬 왕상의

눈알이 나를 압도하고 사천왕상 밑에 죄를 지은 이들이 밟히고 있다

 

 

 

 

 

잠시 통과하여 들어가니 불이문이다 그리고 좌우측에 단청이 바랜 건물들이 줄 비하여 직접 참배는 안 했어도 잠시 묵념하며 부처님의 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곳의 부처님은 원래 집안의 단상에 참으로 소박하고 작은 부처님들이시다

최근 새로 증축하는 사찰을 찾아가면 부처님상이 크고 조각 조형기술의 발달로 웃으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데

이곳의 본래의 부처님의 진상을 대하는 것 같아 너무 좋고 행복하다

 

 

잠시 들어가다 금수목, 수목이란 나무도 보이는데 주변이 메말라 나무들이 목말라하는 듯 보여 주면에 경계석이라 세워

물공급을 충분히 하여 본래 나무로 잘살기를 바라본다 참 이곳의 건축물이 모두 밀접되어 규모가 작게 배치된 것도

당시 사찰 가람의 배치를 잘 알게 해 준다

 

통도사 홍매화 촬영중인 사진작가들 20220301

 

잠시 걷다 보니 대웅전이란 큰 지붕이 참인상정이도 이 건물은 좌우측에 금 가게 단이라는 목판 안내판도 있고 이름이 건물 외부 중간에 다 다르게 표시된 것 도 인상적이다 이곳 바로 뒤에 통도사 창시자인 자장율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관한 금강계단이 있어 대웅전 안에는 부처님 상이 없고 유리창 너머로 진산 사리 봉안만 볼 수 있다 이것을 적멸보궁이라 하는 데 이곳에 신라시대부터 이었다 하니 통 동사의 위상을 새삼 알게 한다

 

 

대웅전 앞에는 설범 전이 있는데 이곳은 현재 불제자를 위한 교육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 내부 안이 확 트인 넓은 공간이었다 이렇게 통도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통도사의 당 시대 규모를 알게 되며 통도사가 얼마나 오래된 고찰 인지도 알게 된다 불국토를 염원하며 굳건히 자연스럽게 보존한 불국사에 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이어 나는 돌아 나오며 개울 건너편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에서 가지고 간 삶은 고구마와 달걀로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 음수대에서 물을 마신 후 잠시 편하게 다리를 쭉 펴고 10분 정도 쉬다가 이내 일어나 내가 걸어온 길로 내려가는데 올 때 걸어온 무풍 한송로길로 걸어내려 가며 우측 개울가 바닥이 돌로 드러난 매끈한 바닥을 보면서 이것도 또한 물길과 함께 참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ㅌ토통통ㄷ도돗도사삼사마만만ㅅ세셀ㄹ루

이어 매표소를 지나 죽 지나 걸어내려가니 신평 버스 터미널이다 이곳도 코로나로 관광객이 적어 장사하는 곳이 문을 단아 놓은 것이 참 많기도 하다 신평 버스터미널에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기다리다 버스가 와 집으로 향했다

모처럼 말로만 듣던 통도사를 관람하니 참 통도사는 대형 고찰에다가 원래 있던 문화재들을 비록 단청은 바랬지만 그

순순한 자연 사찰을 흠뻑 보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이글을 쓰며 통도사에 대한 더 궁금한점이 있어 인터넷 배과 사전에 들어가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통도사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1월에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역사 기록은 통도사의 사격(寺格)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는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켰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중요한 석조 조형으로는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그리고 국장생석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속하는 유물이고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물론 조형상으로 가장 앞서는 석조물로는 영산전(靈山殿)에서 마주 보이는 남산 위의 폐탑재를 들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파괴된 채 기단부의 사리공(舍利孔)만이 주목되고 있다. 이 석탑이 어떻게 하여 파괴되었는지 또는 최초에 건립된 사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찰방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골사 (밀양소재)  (0) 2022.03.17
석남사(울주군)  (0) 2022.03.17
범어사를 가다  (0) 2022.02.24
감은사지 가는길 20220122  (0) 2022.02.03
석굴암 간 가는길 20220122  (0) 202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