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은 강화제1교를 건너면 바로 등산로와 연결되는 산행시작점이 있다 오랜만에 고향 아우와 선배님을
대동하고 문수산으로 가기위해 점심식사후 오후1시20분경 내차를 타고 전정일 아우님,전정범형님,전종환형님
을 전정일 아우님댁에 모여 가기로 햇다
일단 점심을 먹고 난 후라 배도 부르고 하여 간단한 등산장비를 점검하고 산 입구에 도착해 매일 갔던 산행길
초입이라 익숙한 길이라 초입의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이산 전체가 예전 화산이 폭팔하며 강가에 있던 곱돌이
화산폭팔 암석과 함께 석여 있는것이 좀 특색있는 암석 산행길이다
오늘 오르는 이 문수산은 내가 알기에 15번 정도는 온 산이며 문수산이라 산명이 불교에서 온 문수동자,문수보살등과
친근한 산임을 알게된다 이산 2/3 중간 높이에 문수사라는 사찰이 있다 아마도 문수산이 잇기에 문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수산은 이곳 일대에서 제법 높은산에 속한다
이산 높은 곳에서 특이 이북 산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날20220205 도 좁차가운 영하13도의 날이어서 정말 하늘은 파랗고 이북산하가 잘 보인다 길오르는곳 여기저기에 하얀눈이 쌓여있고 또한 이곳은 문수산성이 잘 복원되어 예전시대의
이곳이 삼국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성이다 물론 시대가 흐르며 조선시대에서 성을 이용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문수산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산행하기 좋은 그런 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산행길은 평화누리길이기도 하다
산길을 고향 선후배님들과 오르며 모처럼 흥겨운 입담과 마을에서 생긴일 그리고 대통령후부 예상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같은 문수산행의 매력을 더하게 된다
오늘 오르는 문수산 주 행산행길은 문수산의 대동맥이라 할만큼 큰 능선폭을 자랑하고 산행길옆 산성이 나란히 걷게되어 편하고 부드러운 곡선구간과 능선아래로 펼쳐지는 김포와 강화로 연결되는 시선이 참 시원하다 그리고 오후 4시이후에는 저녁노을이 더해져 강화쪽으로 쏫아지는 석양이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톡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문수산은 전체가 화산폭팔 로 폭팔암에 곱돌이 박혀져있는 암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지 이곳 산행길은 흙먼지가 잘 일어나지 않기도하다 어느정도 올라오니 정자와 쉼터가 우리를 반긴다 이제 우리일행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번에 정상까지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400m 이산을 오르는데 군데군대에서 6번을 쉬고 나서야 문수산 정사에 오른다
문수산 정상에 오르니 이북 산하가 선명이 잘도 보인다 이북에도 우리처럼 논이 농지 정리가 되어있고 여기 저기 마을이
잘 정돈되어 보인다 한참을 저만치 이북을 바라보며 오서 평화통일 되어 가보고 싶은 북녁 산하를 가고 싶다 멀리 개성 송학산도 그리고 파주문산도 선명하게 보인다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이내 우리는 오르던길로 되돌아 내려왓다 정상에서 서쪽 능선으로 가려다
군데 군데 쌓여있는 눈때문에 발도 미끌고 아이젠도 준비가 안되되어 온길로 되돌아 내려오는것이 좋을듯하여
우리일행은 망설임없이 온길을 되돌려 내려왔다
오늘길에 시간이 벌써 오후 3시 이었는대 이때 초입에서 이산을 오르는 부부산행인과 개별 산행인을 2그룹을 만나
고 보니 저들은 언제 저산을 내려올가 걱정도 된다 그리고 산정상 보다도 내려오는 중간 산행길에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온몸이 얼어 들어오는것만 같다 역시 겨울 산행은 바람과 더불어 보온조치에 만전을 기하여야 할것 같다
이제 65세 정년을 넘어 한해 한해 산행 하는데 작년과다른 힘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다행이 일행모두 3번째 손인 스틱을 집고 왔기에 산행도중 넘어지기나 쓰러지는 일이 없이 무사히 내려왔다 내려온시간이 오후4시반 이다 해가 기울고 바람도 불고해 여간 차가움이 크게 느껴진다
우리는 안전산행을 마치고 다시 내차를 타고 강화다리제1교를 건너 강화군청옆 내가 자주가는 단골 골목순대국에서
저녁을 먹고 내가 모처럼 대접을 하게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러한 것도 산행의 한 맛이기도 하다 저녁후
다시 내차로 양도면 인산리 황곡마을에 일행을 내려드리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나는 다시 외포리 어판장으로가 새우젓 1통 1만8천원주고 사고 말린잡고기 1만원 그리고 바지락1kg/15,000 그리고
멍게 1kg/12,000원어치를 사 집으로 왔다 집에도착시간이 어느덧 7시반 저녁시간이다 저녁은 순대국으로 해결했으니
이나 얼었던 몸을 샤워로 하고 이내 잠자리로 향했다
문수산 산행기를 쓰면서 문수산에 대하여 궁금한점을 더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백과사전을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문수산
한남정맥의 최 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해발고도는 376m로 아기자기한 등산의 맛을 주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에 염하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맑게 개인 날 한강 건너엔 손에 닿을 듯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어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문수산에는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맞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있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피톤치드와 음이온 등을 받으며 가벼운 휴식과 산책하기에도 제격이다.
김포 문수산성(金浦 文殊山城)은 숙종 8년(1682)에 강화유수가 강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여 12년이 지난 숙종 20년(1694) 끝낸 산성이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이다. 명칭은 신라 혜공왕 때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산성은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만 3511m2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강화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1694년(숙종 20) 구축한 것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던 곳 중 하나였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을 확보하려고 육전대를 투입해 문수산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김포출신의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게 격퇴를 당하였다.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함대가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전투(廣城津戰鬪)가 벌어졌다. 그런데 강화 쪽의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과 함께 이곳 덕포진(德浦鎭 : 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 뒤 미국함대는 인천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草芝鎭) 등을 함락시켰다. 이 두 양요를 겪은 뒤 1874년에는 덕포진에 안항동포대(鴈行洞砲臺)를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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