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지 패션쇼

한마음주인공 2018. 5. 30. 13:36

연일 맑은날에 모내기한 어린모는 제철을 만난듯 하루가 다르게 잎이 푸르게 올라오고 있다 모내기 한 후

일조량이 많아 모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맞고 있다

 

 

 

 

 

 

 

 

*한지등공예품 판매부스

 

 

 

어제는 28도의 높은 기온에 해수욕장이라도 가서 물에 첨벙 빠져 버리고 싶은 욕망이 마으 가득하고  오늘은

어제 보다는 덜하나 더운 기온은 우리가 여름에 들어갔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난 (5/3)일에는 한지 패션쇼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원지 한지문화원 마당 야외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많은 비가 내려 실내에서 행사를 보게되어 한지로 만든 의류패션쇼를 1m 가까이서

처음보는 행운을 얻었다

 

 

 

 

 

 

 

 

 

한지는 예전 에 닥나무라 껍질에서 채취한 섬유부분을 가공해 의류로 만든것인데 곱기도하고 부드러워

보는것 만으로도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한눈에 알게 한다

 

 

 

 

 

 

 

 

 

 

 

 

 

그리고 한지 의;류를 입은 남여 쇼걸과 남자들이 왕의류복과 생활의류를 선보이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의류가 부드럽게 보이는지 다시한번 한지의 우수성을 실감하게 된다

 

 

 

 

 

*일본전시관 부스도 있다

 

 

 

 

 

 

 

 

한지로 만든 공예품 중 특히 전등 갓으로 사용하는 제품이 가장

실용적일 것 같아 1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각종 체험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조해야 했다

 

 

 

 

 

 

 

 

드디어 밤이되어 주변이 어두워 지자 현관안 넓은 공간에서 한지를 이용한 한 남자가 화장을 짙게 하고 나와 한지 퍼퍼먼스를 하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한지 개장 퍼퍼먼스

 

 

둥그런 원형 모형의 대형 한지 꾸러미를 한참동안 만지더니 일어나 실타래를 여러사람을 거치게 하여 모이게 한다 이는 아마 한지 문화제를 인간에게 고루 전파 하고져 하는 행동 같다

 

 

 

 

 

 

 

 

 

 

 

 

 

 

 

10여분을 시작전 퍼머먼스를 하더니 다시 한지역사전시실를 개방하여 남,여모델들이 한지로 만든 의류를 입고나와 모델걸음으로 걸어 가는데 특이 왕의 복장을 한 남자와 왕비 복장으로 한 여자

모델이 인상적이 었다

 

 

 

 

 

 

 

 

 

 

모델 수십명이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패션쇼는 처음이자 바로 앞에서 하는것이어서 비록 화려한 조명은 아니 었지만 한지의 은은함과 밝은 자체책색이 이체롭다

 

 

 

 

 

 

 

 

 

 

약50여분간 모델들의 패션쇼가 초라한 불빛에 진행되는동안 앞으로 우리 한지의 무한한 미래 성장을 어렵풋이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 실내에서 행한 한지 패션쇼가 처음으로접하는 나에게 우리 한지의 미래성을 감지하게 된다

 

 

 

 

 

 

 

 

 

한지에 대하여 궁금하여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찿아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한지

종이는 수제지와 기계지로 나눌 수 있는데 기계지는 보통 우리가 쓰는 종이를 말하며 양지라고 한다. 한지는 한국에서 손으로 뜬 종이로서 중국의 수제지인 화지나 일본의 수제지인 화지와 구별하여 지칭한 것이다. 옛날의 계림지·삼한지·고려지·조선지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명칭이 한지로 바뀐 것이다.

 

 

 

 

 

 

 

 

 

 

 

한지의 특징은 두껍고 질기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종이나 문헌을 보면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는 두꺼운 것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진귀하게 여겨졌던 신라의 백추지 혹은 경면지 등도 긴 섬유의 종이를 몇 겹으로 붙여서 이를 두드려 광택을 낸 것이다. 백추지는 두드려 만든 하얀 종이라는 의미이며, 경면지는 두드려 거울처럼 빛나게 한 종이라는 뜻이다.

 

 

 

 

 

 

 

 

 

 

 

 

 

 

 

 

 

 

 

 

 

 

 

 

 

 

 

 

 

 

 

 

 

 

 

 

 

 

 

제조법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섬유를 잘게 갈지 않고 두드려 만들면 두껍고 질긴 종이가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질긴 것이 요구되는 우산·부채·책표지 등의 용도에 우리나라의 종이가 인기가 있었고, 그림이나 글씨에는 두드려서 광택이 나는 것을 즐겨 사용했으며 송의 미불(米), 명의 동기창(董其昌), 청의 강희제(康熙帝) 등은 한지를 즐겨 쓰고 상찬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니혼쇼키에 610년 담징이 전해주었다고 기록된 맷돌은 종이를 만드는 데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며 이것은 종이를 만드는 방법이 우리의 기호와 원료조건에 맞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래 초기부터 삼국시대까지는 중국 제지술의 모방단계였다. 섬유를 두드려서 만들었으며, 주원료는 마와 닥이었다. 기록에 보이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두껍고 광택이 있는 종이였다.

 

 

 

 

 

 

 

 

 

 

 

 

 

 

 

 

 

 

 

 

 

 

당(唐)의 병균은 〈문방사고도설 文房肆攷圖說〉 권3에서 우리나라의 종이는 마치 비단과 같아서 견지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백추지의 추는 도침을 나타내는 '槌'·' 搥'상통하며, 도침을 하면 종이가 매끄럽고 부드러워지며 치밀해져 좋은 종이가 된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기술뿐만 아니라 니혼쇼키에 기록된 것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드는 중국의 기술도 사용되었다. 즉 일본에 제지술을 전해준 7세기 전후에 우리의 기호에 맞는 독자적인 방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앞 시기의 기술을 발전시켜나간 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은 거의 변함이 없지만 더욱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원료를 사용했음을 분석 결과 알 수 있다. 이때는 불경 등을 필사하는 데 필요한 두꺼운 급가공 종이를 많이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종이로는 감지를 들 수 있다.

 

 

 

 

 

 

 

 

 

 

 

 

 

 

 

 

 

 

조선시대는 한지 제지술의 완성기로, 국영 제지공장이며 기관인 조지서를 설치해 종이의 규격을 통일시키고 원료를 다양화했으며 기술을 발전시켰다.

 

 

 

 

 

 

 

 

 

 

 

닥이 아닌 율무·버드나무·소나무·창포 등을 사용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 원료와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가공기술이 매우 발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종이가 제작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기술자와 원료의 부족으로 한지는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말기에는 두꺼운 종이만 선호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고, 기계가 도입되어 기계지가 대량생산되면서 점차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오늘날의 한지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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