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창덕궁 20250216

한마음주인공 2025. 2. 17. 16:46

서울에 있는 창덕궁을 가보고 싶었다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려 2번 출구를 나오니 창덕궁 정문인 대한문이 바로

나와 도착하니 이때 시간이 오전 10시 마침 수문장 교체 공연이 옛 복장을 하고 북을 치며 주변을 사로잡는다

이런 수문장 교환 공연은 처음이며 그리고 복장도 겨울철에 알맞게 겨울복장에 마스크도 궁중 마스크 모양의

입을 가리고 수문대원들이 스퍼가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입장하는 식을 거행하여 10여분 정도를 예전 조선시대로

돌아가 마음을 바로하고 정중히 지켜보게 되었다 

 

수문장 교대식 20250216

 

 

대한문 앞 수문장 교체행사를 다 마친후 입장하여 나는 우측 가장자리로 하여 임금의 사무실이었던 편전과 그 주변의

전통 궁중 한옥을 돌아보며 오 술길로 된 길을 걸어 오르니 예전 임금이 외교관 접대장소인 벽돌건물이 4층으로 되어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이곳에서 우리나라 궁중의 전등인 상제리제와 왕궁에서 상제리제를 설치하였던 역사적 사실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ㄷ한문앞 수문장 교대식 20250216

 

 

조선 후기 고종이 주로 사용하였다 하는 서양식 벽돌건물이 유달리 서양풍이 풍기며 우리나라 와 초대 외교관계를 수립한 미국 영국 , 덴마크 이탈리아 러시아등 많은 나라 초대 대사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초대 주미공사 민영환 등을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있었다 

 

 

수문장 교대식 20250216

 

 

 

그리고 이 외교접대 건물 앞에는 수령이 제법 된듯한 거목 회화나무 2 구루가 당대의 실상을 고증하듯 큰 아름드리나무로 

우리를 반겨준다 회화나무는 학자나무 또는 선비나무로 주로 관기가 벼술하신 집 주변에 심어졌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 건물에서 조금 나와 가시 침엽수(마로니아나무)가 300년 이전에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있어 잠시 표지판을 읽어보니

이런 나무는 우리나라 자생 나무가 아닌 외국에서 들어온 나무임을 알 수가 있었다 

 

현대미술관내 수묵별미 한중 근대식 회화전 20250216

 

 

나는 다시 덕수궁 안에 있는 고딕 서양건축물로 된 현대미술관을 들어가 보니 마침 한중일 서예 및 그림전시가 있었고 

당시 주요 그림을 설명해주느느 해설사가 있어 4점의 작품을 구경하며 이응로화백의 군마도의 활기찬 말들의 싸움과

그림상의 넘어지고 일어나고 말들이 이을 들어내며 싸우는 활기찬 모습에서 군마도의 생동감을 잘 알아보게 되었다 

 

군마도 20250216

 

 

어느 분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붓과 그림을 그리지 않고 용접으로 소나무 가지를 역어 놓은 것이 그림에 그림자가

너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이것도 부을 버리고 용접으로 만든 작품에 빛을 주어 그림자 모습이 매우 강열하다

이처럼 현재 미술도 사용도구나 재료가 현대적으로 바꾸어가며 금림이 그림 세계를 펼쳐나간다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정숙한 수문장 교대식 20250216 AM10:00

 

 

 

미술관에서 나와 나는 고종의 길이란 곳으로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추억 속의 덕수궁 돌담길을 읍으로 중얼거리며 대한 무는로 오는데 마침 이곳 정동길이 차 없는 길이라 한다 그리고 시청 앞 광장에서는 윤석열 탄핵반대집회와 찬선집회가 열리서 이은 지 경찰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택극기와 성조기를 가방에 고았고 가는 이들이 참 많이 보인다 

 

대한문을 들어서자 마자 우측으로 걷던길 20250216

 

 

오늘 덕수궁을 돌아보며 글을 쓰면서 덕수궁에 대한 궁금함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배가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궁궐. 본래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곳을 선조가 행궁으로 삼았다. 1611년에 경운궁, 1618년에는 서궁으로 불렸다. 1897년 선원전·함령 전·보문각 등이 지어졌으며, 1900년 이화문·돈례문·영성문 등이, 1902년 중화전·관명전 등이 건립되었다. 1904년에는 즉조당·석어당·함령 전 등이 중건되었고, 1910년에는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덕수궁 내부 20250216

 

 

사적 제124호인 조선시대의 궁궐. 1611년에 경운궁, 1618에는 서궁으로 불렸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의 건립이 이뤄졌다. 1897년, 1900년, 1902년, 1904년에 걸쳐 궁궐의 건립과 중건이 진행되었고 1907년 고종이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꿨다. 1910년에는 근대 서양식의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으나, 조선의 5대 궁궐 중 규모는 가장 작고 전체배치가 정연하지 못하다.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으로 조선말 고종이 살던 곳이다. 궁궐의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직후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이 되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10월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1615년(광해군 7)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궁궐이 되었으며 1618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으로 불렸다. 인조는 이곳 별당에서 즉위했으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왕태후와 왕태자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건물의 건립이 이뤄졌다. 그 해에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시는 선원전, 침전인 함령 전, 보문각 등이 지어졌으며 9월 17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하고 소공동의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정궁이 되었다.

 

 

고종의 주요 외교행사를 거행한 건물 20250216

 

 

1900년(광무 4) 담장공사가 완공되었고 정문인 인화문 및 돈례문·회극문·영성문 등의 전문이 완성되었다. 그해에 선원전이 불탔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과 관명전 등이 새로이 건립되었으며 1904년 대규모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으나 즉조당·석어당·함령 전 등이 중건되었다. 이때 정문의 이름을 대안문이라 했다. 1905년 중화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으며, 이때 대안문도 수리하여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이곳에 살면서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순종이 이곳의 즉조당에서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거처가 되었다. 1910년 근대건물인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전이 건립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함령 전에서 죽었다. 1921년 중화전에 봉안했던 고종의 영정을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동 덕수궁 돌담길 20250216

 

 

건물의 배치는 중앙에 정전인 중화전이 남향하여 있고 정전의 뒤편에는 석어당과 즉조당이 있으며, 정전의 동편에 침전인 함령전이 있다. 함령 전의 서쪽에 덕홍전이 있으며, 북쪽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이 있다. 정문인 대한문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전인 중화전의 주위에 회랑이 없어 다른 궁궐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현재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하여 중화문·함령 전·즉조당·준명당·석어당·덕홍전과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등이 남아 있다.

 

수문장 교대식 20250216

 

 

서양식으로 세워진 석조전과 정관헌은 주변의 한식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건축양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특히 석조전의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궐의 본래 모습이 상당히 손상되었다.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조선왕조의 궁궐로 본래 일반사가의 집을 궁궐로 꾸몄기 때문에 규모도 가장 작고 전체배치가 정연하지 못하다.

궁궐 내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석조전, 정관헌, 중화전 등이 있다. 현재 덕수궁은 역사 유적으로 관광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개방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 궐 밖의 덕수궁 돌담길도 옛 정취와 현 문화를 동시에 느끼며 거닐 수 있는 길로 유명하다. 덕수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은 약 1.1km에 달하는데, 1959년 이중 100m 구간을 영국대사관이 점유하게 되면서 60여 년간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었다가 2017년 8월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영국대사관이 자리한 돌담길 중간의 70m는 여전히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주한 영국대사관과 서울시, 문화재청이 협력해 덕수궁 내로 돌담길을 연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협약을 진행했으며, 2018년 개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덕수궁 내 보행로가 조성되면 대한문에서 시작해 덕수궁길과 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 후문을 거쳐 서울시의회로 통하는 둘레길이 조성될 예정이다.

 

 

덕수궁 안에 있는 근대 서양식 건물. 영국인 J.M. 브라운의 발의에 의해 1900년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기본설계는 영국인 J.R. 하딩이, 내부설계는 영국인 로벨이 했으며 공사감독은 한국인 심의석, 러시아인 사바틴, 일본인 오가와[小川陽吉], 영국인 M.H. 데이빗슨 등이 했다. 3층 석조건물로 1층에는 상궁처소·주방, 2층에는 접견실 및 홀, 3층에는 황제 황후의 침실·담화실·거실·욕실 등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장중한 이오니아식 기둥의 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 측면에 튀어나온 현관을 만들었다. 건물 앞의 정원과 함께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의 건축을 모방해 지은 것이다.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었으며 6·25 전쟁 이후 1986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정관헌

덕수궁 안에 있는 양관 가운데 하나. 함령 전 북쪽에 있으며 1900년 이전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고종의 연유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양옥이라고는 하나 팔작지붕 등 전통목조건축의 요소가 많이 있다.

 
정관헌

정관헌(1900 이전), 전통목조건축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가 절충된 특이한 건물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다음 바깥두리기둥은 처마를, 안두리기둥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안두리기둥이 받치는 부분까지만 팔작지붕을 씌우고 바깥두리기둥이 받치고 있는 부분은 지붕을 덧달아내어 퇴를 만들었다.

 

 

현대미술관 용접으 로 작품 표현한 소나무 20250216

 

 

 

안쪽의 독립기둥은 기둥 밑부터 기둥머리까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기둥머리는 둔중한 느낌을 주는 로마네스크풍으로 만들었다. 베란다에 두른 나무기둥과 처마장식 및 동제 난간이 매우 정교하다. 전체적으로 전통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절충된 특이한 건물로서 근대 서양식 건축의 도입을 보여주는 건물로 주목된다.

 

 

덕수궁중화전덕수궁의 정전.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격적인 궁궐 중건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1902년 중화전이 세워지면서 정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5년 중건되면서 원래 2층이던 것이 1층이 되었다.

 
 
 
중화전

앞면 5칸, 옆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며 높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졌다. 기단에 회랑을 두르지 않았으며 사방에 계단을 두었는데 남쪽 계단 앞에는 품계석이 각각 12개씩 배열되어 있다. 원형 주조사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짜올 린 다포계로 공포는 외삼출목·내 사출목으로 궁궐건축의 상례를 따르고 있다.

 

 

외부 살미첨차는 3중으로 앙서를 조작하였고, 기둥머리에는 후기 건물에서 흔히 쓰는 안초공을 두어 기둥머리의 허전함을 덜고 있다.

가구는 2 중량 구조이며 2개의 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고 있다. 뒷줄에 있는 고주 사이에 어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닫집을 설치하였는데 닫집의 천장에는 쌍룡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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