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에 있는 명종 대왕 태실 및 비가 있는 유적을 찾게 되는 시간이 되어 해미 인근 가서 해미성을 끼고 운산면으로 가는 도로를 들어서니 명종대왕 태실 및 비가 있다는 안내표지판이
전신주에 걸려 있어 그곳을 도달하니 티멥 지도에 표시되며 운행종료를 알린다 일단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약 80m 정도
원추형으로 돤 산을 금하게 오르니며 산길 옆으로 심어진 측백나무가 나무길로 15분 정도를 오르니 바로 유적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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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탑갑게도 명종 대왕 태실 및 비의 개조공사를 2023년에 시작하였다 하는데 지금은 방치되어 태실묘주변이
방치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같게 되었다 그리고 파해쳐놓은 석물들이 여기저기 방치하고 공사 안내판에는 익산시청 문화재관리고로 되어 있고 담당 시공사와 감리자 연락처가 있는데 안내판에는 공사시공자팀장이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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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간접으로 공사방치된곳을 안전한길로 하여 간신이 접근하여 그곳은 80m 산정상이었는데 방치된 석재들의 무게게
상당했을 것 같은데 어디에서 이러한 석재를 산정까지 당대에 옮겨와 설치하였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아마도 명종대왕 왕자전하 태실이기에 그 위엄 속에 이러한 어려운 공사가 진행되어 보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는 총 3개의 태실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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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곳 서산운산면이 명종대왕 태실은 일제시대에는 돌보지 않아 석조물들이 흩어져 있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다 다시 개조공사를 하다가 2년째 방치가 게속되는것이 너무나 안탑가움에 괜히 마음이 숙연해
지면서 이자리를 떠나 걸어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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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내려오는데 서산의 저녁노을이 자연스러운 주황색 빛을 바라며 이곳 명종대왕 태실을 찾아온 나를 마치
위안이라도 해주고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금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곳 지형도
참 특이하게 이곳 명종대왕이 있는 태실부근이 유독 원추형으로 되어 멀리서도 산세의 경이로움을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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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곳 서산 해미 운산면에 이러한 조선 전기 명종대왕태실이 존재 한다는 것이 이지방의 당대 왕자전하
태실에 대하여 존귀함과 위대함을 잘 나타내준 결과과 아닌가 한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명종대왕 태실비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준 것 같아 색다른 감회로 이곳 명종대왕 태실 관련 자료를 알게 되어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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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글을 쓰면서 더욱더 명종대왕 태실 및 비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명종대왕태실및 비
명종대왕 태실및 비는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산 6-2에 소재하고 있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태실(胎室)은 32개의 부채꼴 판석을 깔아 8각 지대(地臺)를 만들어 8각의 돌난간을 세우고 그 중앙에 석종형(石鐘形) 태실과 8각 옥개석을 놓았으며, 이 태실의 서북쪽으로 3개의 태실비(胎室碑)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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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춘령아지씨태실(大君椿齡阿只氏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는 남쪽의 비는 명종이 태어난 4년 후인 1538년(중종 33)에 태실을 만들면서 세운 것이고, ‘왕자전하태실(王子殿下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는 북쪽의 비는 인종(仁宗)의 승하로 중종(中宗)의 둘째 아들인 명종이 즉위하자 국왕의 태실을 봉심해야 하기 때문에 1546년(명종 1)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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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비는 1711년(숙종 37)에 종전의 비석이 전부 손상된 까닭에 ‘왕자전하태실비’를 개각하여 세운 것으로, 등이 4 엽화문으로 장식된 귀부대좌 위에 용과 구름무늬로 새긴 이수를 가졌다. 비신 전면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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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태실의 관리는 관할구역 관리의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태실을 고의로 훼손하거나 벌목 · 채석 · 개간 등을 하였을 때에는 국법에 의하여 엄벌하고 있었으므로, 명종 태실도 대체로 양호하게 관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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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조조에는 한때 지역 품관(品官)의 투장(偸葬) 사건과 태실난간 훼손 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일제시대 이후에는 돌보지 않아 석조물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
1986년 11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3월 보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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