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김좌진 장군 생가 20241231

한마음주인공 2025. 1. 8. 16:42

김좌진 장군의 생가는 홍성군 갈산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 우선 갈선 면 행정복지사무소와

갈산시장 갈산농형 과 갈산 초등학교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곳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생가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 20241231

 

 

남서향의 대지에 아답하게 자리한 김죄진 장군의 생가에는 관리사무실이 있어 김좌진 장군의 일대의 

생계가 지금도 이루워 지고 있는지 그리고 멀리 만리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인의 만행에 항거하여 싸우셨던 

김좌진 장군님의 위대성을 고찰하여 사실 이기념관을 들어게 되었다

 

일단 김좌진 장군 생가를 가기전에는 갈산초등학교와 갈산시장 갈산농협이 있는 곳으로 가보게 되었는데

이곳 갈산면 일대의 지형과  이지역을 가르 지르는 개천 갈산천을 둘러보고 이어서 이어지는 

길을 걸어보며 이지역에서의 지형이 장군이 태어날 풍수지리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이어 김좌진생가터와 기념괌 그리고 그 뒷편 묘역을 걸어보며 김좌진 장군의 어린 시절을 그려보며 이곳'갈산에서의 

김좌진 가족들의 당시생활상과 장군으로서 기반과  재정도등 그리고 애국자심 의 발로를 기억해 보며 길을

걸어서 돌아가며 이군 김좌진 장군의 홍성 갈산면 에서의 어린시절 성장하시며 길들여진 애국력의 발력을

존경하며 백야 김좌진 장군의 일대기를 되새기며 그분의 업적을 칭송 하고 싶어진다

갈산초등하교 정문 에서 20241231

 

 

이 글을 쓰면서 김좌진 장군에 대하여 궁금하여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좌진 장군 

한일병합 이후 국내에서는 일제의 감시와 억압 때문에 제대로 된 항일 투쟁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특히 무기와 군사 훈련이 필요한 무장 투쟁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뜻이 있는 독립투사들은 좀 더 여건이 좋은 만주나 연해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자체적으로 부대를 만들어 훈련을 하다가 기회가 되면 국내로 진출할 생각이었다.

 

 

1919년 국내의 3·1 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때까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무장 독립투쟁단체들이 연립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좌진(金佐鎭)이 속해 있던 북로군정서도 그중 하나였다. 북로군정서는 1919년에 대종교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무장 독립투쟁단체다. 서일(徐一)과 현천묵(玄天默)이 각각 총재와 부총재로 참여했고, 김좌진은 북로군정서에서 총사령관을 맡았다.

 

김좌진은 1889년(고종 26)에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김형규(金衡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며, 문충공 김상용(金尙容)의 11대손이다. 김좌진의 집안은 재산이 많아서 어린 시절을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의 나이 13세 때 형 김경진(金景鎭)이 서울에 사는 친척 김덕규(金德圭)의 양자로 갔다.

김좌진 장군 기념관 20241231

 

 

그때부터 김좌진은 편모(偏母)를 모시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그는 글공부보다는 말타기, 활쏘기 등의 무예에 더 관심이 많았다. 몸집이 크고 힘도 장사였으며, 동네에서 친구들과 병정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좌진은 1905년에 서울로 올라와 무관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애국 계몽사상에 눈을 떴다. 1907년에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홍성으로 내려온 김좌진은 가산을 털어 호명학교를 설립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국권수호의 의지를 불태웠다.

 

 

1910년에 한일병합으로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김좌진은 대한광복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리고 무장 독립투쟁을 위한 군자금을 조달하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서울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자 친척집을 찾아간 것이 문제가 되어 2년 6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갈산농협서 바라본 갈산초교 20241231

 

 

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낀 김좌진은 1918년 만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대종교에 입문해 서일과 함께 대한정의단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1919년에 대한정의단이 군정부로 개편되면서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으로 군대를 지휘하였다.

갈산시장 20241231

 

 

김좌진장군 생가터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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