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 : 2024년 1월 21일
산행코스 : 지하철 1호선 시청역 ⇒ 프레스 센터앞 9번 마을버스 ⇒ 수성동계곡 종점 하차 ⇒ 인왕산 능선길 ⇒
부암동자체센터앞 고개 버스 타고 시청역하차 ⇒ 시청광장(서울시 야외스케이트 장) ⇒ 환구단(조선호텔옆) ⇒
덕수궁 ⇒ 경운궁 ⇒국립현대미술관 ⇒ 돈덕정 ⇒종명전 ⇒ 정동교회 ⇒ 지하철 시청역
오랜만에 인왕산에 가보고 싶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시청옆 프레스센터 앞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광화문 광장과 경북궁옆으로하여 조그만 골목길로 가더니 수성동계곡 종점이 나온다 불과 시청역에서 15분을 버스 타고 온 거리인데 이내 계곡 9번 버스 종점이자 큰 광장이 나온다 서울에 이처럼 인왕산 수성계곡이 잘 보존되고 둘레길도 잘 이어져 있어 참 산행이나 트랙킹 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작은배낭에 산길에 혹 눈여 쌓여 있을까 걱정하고 수성계곡에 올라서니 눈은 없고 잘 정리된 데크길이 바로 인왕산을 우측으로 하여 오르는데 작은 소나무와 기암 절벽이 이곳이 서울 중심 광화문 뒤 산길이 맞는가 의심하게 된다 이어 조금오르니 석굴암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조금 산능선을 파악하고 이내 능선길로 이어 올랐다
오늘 날이 포근(영상2도)하여 그런지 산행 하는이들이 많이 오고 내린다 인왕산은 일전에 한번 온적이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 전혀 산길이 기억이 안된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서니 능선길로 이어지는 성곽석조물이 곡선능선형으로 이어져 참 보기 좋다 그리고 내가 오른곳은 인왕산 남쪽능선에 높은봉우리를 올라보니 이능선 성곽길이 참 길게도 이어져 보인다
이어 주금 가파른 길을 오르니 이곳이 인왕산 정상이고 오르는 능선 돌길에 돌을 파내어 산길을 만든것이 참 특이하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청와대와 경북궁이 우측으로 보인다 이곳 정상에는 경비시설이 있는지 건물도 산능선에 지어놓아다 그리고 이따금씩 산길옆 소나무와 아름다운 돌들이 참 아름답게 이어져 정상으로 이어 진다
이내 정상에올라 북으로 보이는 북한산 보현봉이 보이고 북한산 능선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데 날이 조금 흐려서
북한산을 자세히 전망이 안되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길로 돌아나와 나는 부암동주민자체센터 로
가기로 하고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갈림길에서 나는 기차바위길로 택했다
기차바위를 조금 지나 걸어내려오는데 안탑갑게도 산불이나 오랜동안 산능선을 지킨 소나무들이 노랗게 주어 있다 누군가의 부주위로 인한 산불이 이렇게 이곳에서 100년 이상을 살아온 나무들을 모두 죽이게 해놓은 현실이 참 부끄러웠다
항상 산해하면서 불조심은 산행인들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산과 약속같다
그리고 돌아서 내려오는데 남북 7-4 공동성명을 채택한 역사적 장소인 건물이 나오고 조금 내려오니 부암동 주민 자치센터이다 이때 시간이 오후 1시이어서 참 일찍 인왕산 산행을 하게 된것이다 이처럼 인왕산은 경북궁을 서쪽에서 보호하는 경비대가 있었던 것같다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 이런 자연인왕산이 잘 보존하여 있는 것이 참 너무 좋았다
오늘 산행한 인왕산이 궁금하여 인터넷 배과 사전에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인왕산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는 타포니(Tafoni)가 발달한 토르(Tor)가 많다. 주로 서울시 무악동 남쪽기슭 135m 고도에 위치한다. 인왕산의 토르는 주빙하 기후에 의해 화학적 풍화가 진행되어 생성된 것과 후빙기에 절리 발달에 따른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것이 있다고 한다. 흔히 타포니는 토르와 관련되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화강암 토르에서 관찰되는데 인왕산 또한 그에 해당한다. 토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풍화가 더욱 진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7년과 2008년 인왕산에서 관찰된 식물은 전체 75과 232종 38변종 5품종으로 총 275종이며, 귀화종은 37종이다. 주요 출현 식물은 생태계 교란 야생동 · 식물인 국화과의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이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는데,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고, 이후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가 있었다. 경지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그린 산수가 많은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왕산을 등산할 수 있는 코스는 총 5개이며 각각 두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고, 인왕산을 종주하는데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제1코스 사직공원 입구 · 약수터 · 정상 · 부암동(자하문), 제2코스는 사직터널 · 성터 · 정상 · 부암동(자하문), 제3코스는 독립문역 · 인왕산 일주문 · 국사당 · 선바위 · 철조망문 · 능선길 · 범바위 · 인왕천 갈림길 · 정상 · 305능선길 · 기차바위 · 인왕아파트 갈림길 · 홍심약수 갈림길 · 부암동사무소쪽 갈림길 · 하림각, 제4코스는 사직터널 전 사직공원 · 북악스카이웨이 · 국사당 · 달팽이바위 · 인왕산약수 · 해골바위 · 정상, 제5코스는 경복궁역 · 자하문길 · 영추문 · 청와대 앞길 · 청운중학교 · 최규식 경무관 동상 · 자하문 · 성곽길 · 정상 등이 있다.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하여 경복궁역, 독립문역, 홍제역에서 하차한 후 사직공원에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다시 부암동 자체센터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덕수궁앞에 내려 건너편 시청앞 광장에 나오니 자연 광장 스케이트장이 있는데 많은 어린이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줄기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야외 스케이트 장 이라고 한다 이어 스케이트장을 돌아 조선일보 입구에 있는 환구단으로 갔다
환구단은 지나가는 버스에서만 살짝 보았지 실제로 찿아와보기는 처음이다 환구단 하늘에 임금님이 제사를 모셔진 제당이다 지금은 조선 호텔에 에어쌓여 잘보이지 않지만 조금 우뚝한대지에 환구단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내 경내을 들러보고 나와 다시 건너편에 있는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덕수궁을 들어서려는데 눈발이 조금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머믓 거리다가 경운궁을 관람하고 다시 국립 현대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오면서 나는 돈덕정으로 갔다 이곳에서 고종입금이 서양식으로 즉의식이 거행했던 장소라 하고 이곳엔 지금 각종 현대사에 얼혀있는 관련자료를 전시중에 있었다
나는 돈덕정에서 나와 바로 우측덕수궁을 나와 덕수궁길을 내려가다가 종명전이라는곳을 관람했다 그리고 이내 돌아나와
정동교회건물을 관람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내려와 지하철 시청역으로 내려오며 오늘 눈맞으며 여행일과를 마무리 했다
이글을 쓰면서 환구단과 덕수궁 그리고 돈덕존,종명전,정동교회에 대하여 궁금하여 인테넷 배과 사진에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환구단
사적 제157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하늘을 상징하여 제단의 형태는 둥근 모양이었다.
고대국가 때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에 실시되었다. 고려 성종 때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왕권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도화했으나, 고려 말 배원친명정책 이후 원구제는 폐지되었다.
세조 때인 1457년 원구제가 거행되기 시작했으나 1464년을 끝으로 다시는 거행되지 않았다. 원구단이 다시 건립된 것은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후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원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 호텔을 건축했다. 현재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8각정 황궁우만 전해오고 있
돈덕정
덕수궁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황실 건물로 대한제국의 영빈관인 돈덕전(惇德殿)이 있었다. 돈덕은 『서경』에서 ‘덕 있는 이를 후대하고, 어진 이를 믿는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 돈덕전을 짓게 된 계기는 1902년 10월에 있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稱慶) 예식’에 각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대한제국의 건재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해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듬해(1903년) 4월, 다시 열흘간 대대적으로 벌이고자 행사 일정표까지 마련했지만 험악해지는 국내외 정세로 또 열리지 못했다.
이후 돈덕전은 사신의 접견과 귀빈의 접대 등 제국의 외교의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순종황제의 즉위식도 여기서 거행되었다. 돈덕전은 이처럼 대한제국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는데, 일제는 바로 그런 이유로 1920년대에 이를 허물어 버리고 1930년대 아동 유원지로 만들었다.
돈덕전은 당시 사진들이 여럿 전하고 있어 외관은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었는데, 규장각의 목수현 박사가 『법규유편(法規類編)』이란 책에서 돈덕전 내부의 평면도를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발굴조사 후 원래 모습대로 재건하여 지난해 9월 26일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종명전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중명전을 돌려주었다. 1977년 중명전은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고, 2003년 정동극장에서 매입한 뒤 2006년 문화재청에 관리 전환하여, 2007년 2월 7일 사적으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정동극장이 있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있다.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하였다.
정동교회
정동 교회는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크리스트교 교회 건물이다.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 양식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16세기 신항로 개척으로 서양의 선교사와 상인들이 동아시아에 진출하였고, 크리스트교가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선교사들이 무역과 함께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화를 전파하며 선교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유교 의식과 제사 등 전례 문제를 중심으로 지배층과 대립하게 되면서 세력을 크게 확대하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무렵부터 포르투갈, 에스파냐 등과 교역하면서 크리스트교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도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과 중국과의 학문 교류를 통해 크리스트교, 즉 서학이 전래되었다. 서학은 처음에는 학문으로 수용되었지만, 일부 지배층이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종교로 확산되었다. 평등사상을 중시하여 특히 여성과 하층민을 중심으로 크리스트교가 전파되었다.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크리스트교인이 갑자기 증가하였는데, 이는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사람들이 종교에서 안식처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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