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에 운문사라는 사찰이 있다는 것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사찰을 방문하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개 사찰이름이
사찰이 있는 산이름에서 유래되어 여기 운문사도 운문산에서 유래 된것이 아닌가 한다 운문사 도착시간이 오후 2시경이
이었는데 평일 오후라 사찰내에는 관람하는 이가 매우 드물고 아주 한적하고 평지에 있는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사찰이
었다
사찰 입구로 들어서니 우측에 키가 작고 소나무가 처진가지를 드러 내며 늘어진 소나무가 눈에 띈다 원래 처진 소나무는 우리나라 품종이라 하는데 이곳에 이렇게 키가 낮고 마치 큰 원형의 형태를 이룬 대형(처진 소나무가 보호수로 보후 되고 있다 참 신기하고 주변 사찰 정원과 잘 어울리는 자연의 조화스러움에 한참을 살펴보게 되었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1966년 8월 25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6m 정도이며 가슴높이둘레가 2.9m로서 가지는 동서방향으로 17.6m, 남북으로 20.3m 정도 퍼졌다.
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반송(盤松)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반송은 원대가 여러 개로 갈라져서 자라지만, 이 나무는 2m 정도 자란 다음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소나무가 맞다.
수세(樹勢)가 좋고 반원형에 가까운 수형을 이루고 있어 매우 아름답다. 사방으로 처진 가지는 계속하여 밑으로 자라기 때문에 땅에 닿지 못하도록 지주로 받치고 있다.
만세루
정면 7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건물. 기단(基壇)은 막돌 기단으로서 비교적 건물에 비하여 낮고 건물 내부 바닥의 마루판이 일반적인 누각에 비하여 높지 않은 편이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막돌초석이며 이른바 덤범주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위에 원형인 민흘림의 긴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몸에는 창방(昌枋)을 끼워 고정시켰으며, 윗몸 위에는 비교적 굽이 낮은 주두(柱頭 : 대접 받침)를 놓고 2익공(二翼工)을 짜올렸다.
익공의 안쪽은 보머리[樑頭]로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간결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며 추녀 끝에는 건물 4귀에 모두 활주(活柱 : 추녀 뿌리를 받친 가는 기둥)를 세워서 안정되게 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켜 연등천장[椽背天障]으로 하였다.
가구형식(架構形式)은 정면 평주(平柱)와 측면 평주의 줄을 맞춘 격자 위에 고주(高柱) 없이 평주만으로 축(軸)을 이루고, 대들보나 퇴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모두 한칸씩 짧은 평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운 다음 중보를 얹고 그 위에 다시 대공(臺工)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건물의 사면을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이어 우측으로 이어지는 경내로 들어가니 대웅보전이 웅장하고 큰 법당이 나오고 마침 주변 경내 스피커에선 부처님 찬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곳 선운사 도량이 넓고 큰것을 이곳 청도지방의 대표적 불교 사찰임을 바로 알게 된다 예전 청도의 운문산(1200M)을 오른 적이 있다 그때는 가지산 자락을 올랐다 이곳 운문사로 하여 밀양 해탈사로 내려온 적이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에 참배하고 나와 다시 대웅보전 앞 경내를 살피는데 이곳에 많은 요사체가 보인다 스님 참선하는 곳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나오려는데 이곳에 원형국사의 비가 있어 이곳 사찰의 위용과 역사를 다시한번 알게 된다 국사라는 직함은 왕의 스승이었던 지금을 말하면 왕의 선생님이 계셨던 사찰이다
이어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 오보니 주변에 여려 사찰들이 많이 모여 있다 초행길 운문사는 조용하고 넓고 아득한 우리나라 불교의 작은 성지가 아니가 싶다 운문사를 돌아보며 이곳에서의 과거 불교가 융성해 큰 터전이 되었던 것처럼 운문사가 더욱 발전하고 불법을 더 많이 포교하는 마음으로 운문사 기행을 마칩니다
운문사의 기행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알고파 인터넷 배가 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운문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신승이 창건한 절로 608년(진평왕 30)에는 원광법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 4 원광서학(圓光西學) 및 보양이목조(寶壤梨木條)에 원광법사와 운문사는 관련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문사에 있는 처진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호
〈사적기 寺蹟記〉에 따르면 고려시대인 937년(태조 20) 중국 당(唐)나라에서 법을 전수받고 돌아온 보양국사(寶壤國師)가 까치떼의 도움으로 이 절을 짓고 작갑사(鵲岬寺)라 했으나, 943년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보양국사가 절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많은 전답과 함께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105년(숙종 10)에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한 이후로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인 1690년(숙종 16) 설송(雪松)이 임진왜란 때 폐허화된 절을 다시 중건하여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 이 절에는 조계종 운문승가대학이 설치되어 많은 비구니들의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萬歲樓)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미륵전·작압전(鵲鴨殿)·금당·강당·관음전·명부전·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당앞석등(보물 제193호)·동호(보물 제208호)·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3층석탑(보물 제678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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