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의성 금성산,비봉산, 산수유 산행 20230318

한마음주인공 2023. 3. 20. 14:51
금성산 흔들바위 20230318

산행코스 : 금성산 주차장   ⇒   용삼   ⇒   용문바위  ⇒   병마훈련장   금성산 정상  ⇒ 흔들바위 

    비봉산   ⇒   비봉산 BACK   ⇒   효선고개  ⇒  정자  ⇒   티발골 산유수 나무  ⇒  화전지  ⇒   산유수 마을 주차장

   총 17 KM  총 소요시간 6시간 30분 

 

 

오랜만에 경상북도  의성에 있는  금성산과 비로봉 산수유마을 축제장을 산행하게 되었다  나는 구래 산수유가 

유명한지 알었는데 의성에도 정말 산수유나무 가 군집으로 많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산수유 마을 산수유꽃 축제가

있어  금성산과 비봉산에는 산행인이 적었으나 산수유 마을 축제장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예전부터 의성군은 육지 속의 섬과 같다 하던 곳이 이제는  도로와 교통이 좋아 이곳 의성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이번에 새로 안사실인데 이곳에 신리시대에 조문국의 나라가 있었던 곳 이곳 금성산 일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이

산수유가 지금도 많이 있고 나무에는 작년 2022년 열매가 가득 달려 있다 대략 산수유나무 수령은 50년 이상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어르신들이 연로하여 산유수 수학을 거의 못한다고 한다

 

 

 

용샘 20230318 가뭄으로 물이 말라 있음 20230318

 

우리가 산악 버스에서 내린 곳은 금성산 주차장인데 이곳에서 시작하여 조금 올라가니 용샘 이라는 곳이 바위밑에 있었는데 이곳도 가뭄으로 용샘에 물이 없다 그리고 조금 오르니 예비군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예전 터가 나오고 바로 조금 더 

오르니 금성산이다 

 

 

 

이곳 의성 오늘 산행한 산은 높이가 약 10M 미만의 작은 소나무가 산행길 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소나무 특징은 굵지 않고 중간 부분이 가늘며 소나무 껍질이 3센티 정도의 홈을 이루고 자라 산행 중에서 이런 소나무를 많이 만나며 걸은

것은 처음 이라 생가 된다 

 

금성산과 비로봉에 이르는 구간에는 사진처럼 무수히 많은 소나무가 군락으루며 10km 구간을 덥고 있다 이것이 이산의 특징이었다20230318
신라 조민국 마을 터 20230318

 

 

예전 훈련장에서 조금 오르니 그 성산 정상이다 정상의 표지석은 거의 평지 같은 곳에 위치하며 주변에 역시 작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어 사진 몇 장을 금성산 표지석을 배경을 해 촬영하고 다시 조금 내려가니 흔들바위 갈림길이

나와서 그곳으로 40M 정도로 내려가 바위를 밀어 흔들어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바위가 흐린다 

 

첫번째 보우리인  의성 금성선에서 20230318

 

 

이어 이곳 흔들 바위에서 사진을 찍다 산행일해인 고향이 이곳인 부부를 만나 조민국 이야기와 조민국 공원 그리고 

어린 시절 이곳이 포격 훈련장이었다 하시며 조민국이 신라시대 나라로서 이곳이 조민국 나라의 작은 수도였다고 한다

처음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다시 한번 오늘 이곳 산행에 대하여 잘 알게 된다 

 

솔잎과 소나무가 끝없이 이어지는 솔바람산길 20230318

 

 

나는 흔들바위에서 다시 능선길로 올라와 비로봉으로 가는 얕은 길을 가는 데 이곳도 역시 작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이어진다 작은 고개와 산을 20 깨 정도 넘은듯하다 비교적 높지는 않지만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이 소나무숲을 걷게 된다 역시 소나무 천국인 것 같다 같이 동행한 일행이 외국에서 ㄴ소나무를 망국나무라 부른다 한다 소마무 재료가 사용되는 건축 부분이 그리 많지 않고 일단 소나무 주변에는 다른 나무 가 자라지 못한다 한다 

 

 

이렇게 쉬지않고 나지막한 소나무 산길을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며 드디어 비로봉에 오르니 오후 1시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해 점심을 먹고 다시 BACK 하여 다시 효선고개를 넘어 낙엽이 산길이 덥힌곳을 찾아가니 앞 선두주자가 *토자유*라는 푯말표시 종이를 설치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라 생각했다

 

 

금성산 봉수대 터   20230318
비봉산 정상   20230318
이곳 등산로 주변 소나무는 골이 깊은 외피가 특징인것 같다 보토 골깊이가 30센치정도였다 20230318

이어 화전2리를 지나 정자가 길옆에 있는곳에서 잠시 쉬고 다시 나와 선행한 한분은 가지고 온 포도 몇 알을 주셔서 다비 같은 마음으로 포도알 3알을 얻어먹었다 이어 조금 내리막길 포장된 농로를 걸어가니 우측과 좌측에 고령으로 된 산수유나무 가 정말 많기도 하다 

 

할미꽃이 피기시작한다 이꽃은 묘지근처에서 육독 피어나서할매꽃 20230318

 

산수유나무에는 빨간 열매가 아직도 달려 있는 곳이 많았는데 노화되고 사람이 적어 도저히 산수유 열매를 딸 수가 없다 한다  이어 우리는 저수지로 오르는 산수유 마을 축제장에서 마을에서  운영하는 찻집과 마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귀경길에 올라왔다 

 

 

 

이글을 쓰면서 경북 의성에 대하여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의성군 

동쪽은 안동시·청송군, 서쪽은 상주시, 남쪽은 군위군·구미시, 북쪽은 안동시·예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18′∼128°53′, 북위 36°11′∼36°31′에 위치한다. 면적은 1,174.90㎢이고, 인구는 5만 447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7개 면, 400개 행정리(182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다.

지형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대체로 북서부의 신평면을 제외하고는 그리 험하지 않다. 북동부는 태백산맥의 지맥(支脈)이 지나고 산지가 중첩해 고원지대를 이루지만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개발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

동부에는 황학산(黃鶴山,782m)·구무산(676m)·어봉산(魚鳳山, 634m) 등이 솟아 안동시와 청송군, 남부에는 만경산(萬景山, 499m)·청화산(靑華山, 701m)·왕제산(320m)·선암산(船巖山, 879m)·매봉(800m)이 솟아 구미시와 군위군과 경계를 이룬다. 또, 북부에는 봉화산(401m)·삼표당(三標堂, 444m)·갈라산(葛羅山, 570m)이 솟아 안동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외 군의 북부에는 비봉산(飛鳳山, 579m)·독점산(獨店山, 311m)·문암산(門巖山, 460m)·봉암산(453m)·골두봉(313m)·국사봉(國師峰, 521m)·해망산(海望山, 400m)·천제봉(天祭峰, 359m)·응봉산(鷹峰山, 386m)·천등산(天登山, 347m) 등이 솟아 있다. 또한 남부에는 금성산(金城山, 530m)·비봉산(飛鳳山, 672m)·오동산(梧桐山, 313m)·오토산(五吐山, 475m)·북두산(北豆山, 500m) 등이 솟아 있다.

하천은 위천(渭川)과 미천(眉川)을 주류로 하며 이들 하천과 그 외 하천이 모두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위천은 군위군 팔공산에서 북류하며 비안면 쌍계로 흘러든 뒤 비안면·단북면 등을 거쳐서 흐르다가 단밀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

미천은 동부 산악지대인 안동시계 황학산에서 발원하며 옥산면·점곡면·단촌면을 관류해 단촌면 세촌리와 안동시 일직면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서 동부 3개 면의 관개용수가 되고 있다.

쌍계천(雙溪川)은 춘산면 신흥리 산두봉(山頭峰, 719m)에서 발원해 춘산면·가음면·금성면 등 3개 면을 관류하는 하천이다. 이외에도 신평면 덕봉리에서 시작되어 북서류하는 광산천, 안사면에서 시작되어 만리리·월소리·쌍호리를 거쳐 북류하는 신평천, 다인면 외정리에서 시작되는 봉정천, 다인면 덕지리에서 시작되는 망지천, 안평면 신안리에서 시작되는 신안천 등이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내륙 산간지역이기 때문에 위도에 비해 한서의 차이가 심하고 강수량도 적은 편이다. 연평균기온 11.8℃, 1월 평균기온 -3.0℃, 8월 평균기온 24.2℃, 연강수량은 1,475㎜이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해 청동기시대에는 활발히 사회가 분화되어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변진 24개국 중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 단밀면)·여담국(如湛國: 금성면 탑리리) 등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들의 행방을 알 수 없지만 185년(벌휴이사금 2) 이곳에 위치한 소문국(금성면)이 신라에 병합되어 군현으로 편성되었는데, 514년(법흥왕 1)에 설치된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은 이곳의 안계면 지역에 비정되고 있다. 이와 함께 주위의 지역인 비안면 지역도 신라에 편입되어 서부 지역에는 아화옥현(阿火屋縣)과 아시혜현(阿尸兮縣)이 설치되었다.

그 뒤 이 지역은 크게 의성·비안의 두 지역으로 나뉘어 군현제 아래 편입되었다. 즉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시 의성 지역에는 문소 군(聞韶郡)이, 서부 지역에는 비옥현(比屋縣)·안현현(安賢縣)·단밀현이 설치되었고, 문소 군이 이들과 진보현을 다스렸다. 이때 다인면 지역은 달이현(達已縣)에서 다인현(多仁縣)으로 개명되어 상주에 속하였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군사상 요지로서 왕건과 견훤의 쟁탈 대상이 되었는데, 이 지역의 호족 홍술(洪術)이 왕건에게 귀부해 의성부(義城府)가 설치되어 우대받았지만, 929년(태조 12) 견훤의 침공을 받아 홍술이 죽임을 당하였다.

1018년(현종 9) 지방제도 개편시 의성부와 의흥군은 안동부에 속했고, 비옥현 및 이때 이름이 안현현에서 바뀐 안정현(安定縣)은 상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의성 부는 1143년(인종 21) 현으로 개편되면서 현령이 파견되어 주현(主縣)이 되었다.

그러나 1199년(신종 2) 민중봉기로 인해 감무로 강등되었고, 충렬왕 때 대구현에 일시 병합되었다가 주현으로 복구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안정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는데 의흥현은 선주에 소속된 부계현(缶溪縣)을 합병했고, 비옥현은 안정현 감무의 지배를 받았다.

산수유꽃 정자 인근  20230318

조선 초에도 세 지역은 행정구역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의흥현은 1413년(태종 13) 현감이 임명되었고, 비옥현은 1421년(세종 3) 안정현과 합쳐서 안비현(安比縣)으로 되었고, 1423년 비안현(比安縣)으로 개명되었다. 당시의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의성현이 637호 4,102인, 의흥현이 424호 3,392인, 비안현이 463호 4,077인이었다.

화전저수지 20230318 가뭄으로 물이 별로 없다

이 지역에서는 조선 전기 이래 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문풍을 떨쳤다. 임진왜란 때 김사원(金士元)·김해(金垓)·김치중(金致中) 등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했으며, 정묘호란·병자호란 때에는 신적도(申適道)·권수경(權守經) 등이 역시 의병을 일으켜 크게 활약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에 의해 전국이 23부로 편성되자 세 지역 모두 군으로 되어 대구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자 경상북도에 소속되어 의성군은 2등 군, 비안군·의흥군은 4등 군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비안군·의흥군은 의성군에 병합되어 오늘날의 의성군으로 발전되었으며, 1940년 의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기에 신교육의 보급이 이루어지자 문소학교(聞韶學校) 등이 설립되기도 했고, 항일의병운동도 일어나 3·1운동으로 이어졌다. 1919년 3월 12일 비안공립보통학교의 학생들과 쌍계동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만세시위운동은 25일까지 군내 각 지역으로 파급되어 4·2 만세시위운동으로 경상북도 지역에까지 크게 확산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성면 광현동이 군위군 군위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74년 신평면에 안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비안면 안평동이 봉양면으로 편입되었고, 1987년 1월 1일에는 단밀면의 용산리가 선산군 도개면으로, 선산군 도개면의 청산리가 이 군의 구천면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산수유축제 마을 식당에서 소머리국을 저녁으로 해결 20230318

1988년 5월 1일 동을 이(里)로 개칭하였다. 1990년 4월 1일 안사출장소가 안사면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4월 27일에는 단북면 신하 3,4리가 다인면 용무 1,2리로 구역과 명칭이 변경되었다.

금성면 소문천(召文川) 주변에 고인돌이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으로서 1960년에 발굴한 바 있는 금성면 탑리리 고분군이 있다. 또한 단촌면 장림리에 있는 석곽분 60 여기가 1980년에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일대가 의성 금성산 고분군(경상북도기념물, 1998년 지정)으로 지정되었다. 금성면 산운리의 금성산에는 금성성지, 의성읍 팔성리에 성산산성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681년(신문왕 1)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된 고운사(孤雲寺)가 단촌면 구계리에 있다. 다인면 봉정리의 대곡사(大谷寺)는 고려 공민왕 때 지공선사(指空禪師)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창건한 절로서 대곡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과 대곡사 범종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이 경내에 있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수정사(水淨寺)와 운람사(雲嵐寺)·지장사(地藏寺) 등이 있다.

탑으로는 금성면의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이 있는데, 이 탑은 부분적으로 전탑의 수법을 모방했으며 목조건물양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단촌면의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구계리의 고운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춘산면 빙계리의 의성 빙산사지 오 층 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 의성 치선동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옥산면의 금학리삼층석탑, 비안면의 자락리삼층석탑, 안사면의 쌍호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산수유 축제장 에서 품바도 열리고 있다 20230318

불상으로는 단촌면 구계리의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단촌면의 의성 관덕동 석조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비안면 자락동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의성 장춘리비 로자나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단북면의 의성 정안동 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외에 안사면의 의성 월소동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의성안사동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비안면 석 제리의 만장사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구천면의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단촌면 구계리의 고운사 가운루(경상북도 유형문화

의성 마늘 밭에서 20230318

재, 1982년 지정)를 비롯해 의성읍 도동리에 의성향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소우당(중요민속자료, 2000년 지정),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운곡당(경상북도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 의성 점우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 점곡면 윤암리의 의성 소계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9년 지정), 안계면 교촌리에 비안향교, 춘산면 대사리에 덕양서원, 빙계리에 빙계서원, 단밀면 속암리에 속수서원 등이 있다.

또한, 사곡면 오상리에 동강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4년 지정), 봉양면 구미리에 오봉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금성면 산운리에 학록정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점곡면 서변리에 영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1년 지정), 사촌리에 의성 만취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의성읍 도서리에 기양정·능파정, 후죽리에 문서로 등이 있다.

한편, 의성읍 상리리의 임진왜란 당시의 일기인 정만록(보물, 1986년 지정), 금성면 탑리리의 유금강산권(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이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도 금성면에 의성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천연기념물, 1993년 지정), 점곡면 사촌리의 의성 사촌리의 가로 숲(천연기념물, 1999년 지정)이 유명하며, 빙계서원 주위에는 풍혈(風穴)·빙혈(氷穴) 등을 포함한 빙계팔경(氷溪八景)이 있다.

희귀 동식물로는 신평면 중율리의 왜가리, 안사면의 의성 월소리 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점곡면의 의성 사촌리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 의성읍 의성도서동의 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72년 지정)가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4년(태조 3) 지금의 의성읍에 건립된 의성향교가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비안면 서부리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10년(광해군 2) 유생들이 안계면 교촌리에 세운 비안향교(比安鄕校)가 있다.

산유수 마을안 엤 토담과 축대 20230318

또한, 서원으로는 춘산면 대사리에 1625년(인조 3) 설립된 덕양서원, 봉양면 장대리에 1672년(현종 13) 설립된 장대서원, 가음면 양지리에 1818년(순조 18) 건립된 명곡서원 등이 있어 이 고장의 유생들을 교육시켰다.

근대식 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문소학교가 설립된 이래 1911년 의성면에 의성공립보통학교, 1912년 비안면에 비안공립보통학교가 각각 개교되었다. 그 뒤 1920년 점곡면에 점곡공립보통학교, 1921년 안계면에 안계공립보통학교가 각각 세워짐으로써 군내에 1면 1교의 교육체제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한편, 사회단체로는 의성 및 안계 청년회의소, 의성자혜원 등이 있어 각종 사회활동을 펴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4개의 복지회관, 2개의 도서관, 군민회관, 일반공연장, 문화원, 등이 있다. 의성읍 중리리에 문화회관, 의성읍 후죽리의 군민회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의성읍 중리리의 경상북도립 의성공공도서관, 안계면 용기리의 의성군립도서관이 개관하고 있어 교육·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1984년 설립된 의성문화원은 각종 문화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의성문화제를 주관해 씨름과 가마싸움 등 민속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의성의 주요한 민속놀이에는 가마싸움·기와밟기·줄다리기 등이 있다. 가마싸움은 팔월한가위에 서당 학동들이 행하던 놀이이다. 한가위에 훈장이 귀향을 하면 학동들은 아사천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각각 바퀴가 네 개 달린 가마와 기치·의상 등을 준비하는데 접장이 수령이 된다.

한가위가 되면 동태머리꾼이라는 공격진을 앞세우고 양편이 석전을 벌인다. 그리고 장사진(長蛇陣)·개문진(開門陣) 등 팔진도(八陣圖)를 이용한 전세를 펴다가, 드디어 적진을 돌파하고 적의 가마 주위를 선회하면서 적의 수비군과 접전한다.

적기를 많이 빼앗고 상대방의 가마를 쳐부수면 승리하게 되는데, 승자는 적의 기치와 가마를 노획해 개선하면서 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게 되고, 패자는 신발을 벗어 땅을 치며 원통해한다. 우리나라 다른 지방의 민속놀이가 주로 어른들에 의해 행해지고 농업·어업과 관련된 것인데 비해, 이것은 서당 학동들 사이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특징적이다.

기와밟기는 정월보름에 여자들에 의해 행해지던 놀이로 ‘꽃게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안동의 놋다리밟기와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좀 더 과격한 것이 특징이다.

아사천을 중심으로 나누어진 두 편 여자들이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한 줄을 만들면 그 위를 꽃게(장수)가 지나간다. 마지막에 지나가는 꽃게를 진꽃게라고 하는데, 진꽃게가 상대편 진꽃게와 만나면 싸움이 벌어지고, 줄을 만들고 있던 여자들도 참여해서 싸움은 열기를 더해 간다.

이정자가 마지막 산행길 돌아가는곳이었다  20230318

진꽃게는 ‘기둥’이라 하는 네 사람의 부녀자에게 태워져 행렬 앞으로 나와서 상대방과 다툰다. 몸싸움 끝에 기둥이 쓰러지거나 기둥에서 진꽃게가 떨어지면 지게 된다. 기와밟기놀이로서 그 해 농사를 점쳤는데 북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남쪽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줄다리기는 정월보름에 남북으로 나뉘어 넓은 남대천 옆 백사장에서 마을마다 만들어 온 줄을 합쳐 시합한다. 사람이 많을 때는 수만 명이 모여서 힘을 겨루었다. 각 마을에서 가져온 줄은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참여할 수 있도록 머리 부분을 하나로 묶고, 끝으로 갈수록 여러 갈래로 만들었다. 줄이 연결된 부분은 고로 연결하고 다시 동여매었기 때문에 장정의 한아름이나 될 정도로 굵었다.

광복 이전에는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았으나, 6·25사변 이후 많은 곳에서 동제를 중단하였다. 주로 정월보름에 동제를 지내는데, 제관은 동네에 거주하는 남자 중 유복한 사람으로서 집안에 초상이나 출산이 없는 사람으로 마을회의에서 결정된다.

제관은 제사 전날부터 금주·금연하고 부부의 동침을 금하며, 기타 부정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또한 집 안팎을 청소하고 금줄을 쳐서 부정을 막는다. 제물은 제관이 직접 상이나 출산이 없는 상인에게서 구입한다.

경비는 동네 재산으로 충당하는데, 제물은 제를 지낸 다음날 동민에게 가구마다 골고루 분배해 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제는 정한 날짜에 꼭 지내지만, 제 지내기 전에 사람이나 가축이 죽으면 다음 달 초로 연기한다.

이 고장에는 풍수설화·지명유래설화·효자효녀설화·보은설화 등 많은 설화가 전한다.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금성산에는 옛날부터 금성산의 묘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금성산 산꼭대기에 묘를 쓰게 되면 석달 동안 이 일대에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고종 때 이 고장만 계속 가물었다. 농민들이 안타깝게 비를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금성산 산꼭대기를 샅샅이 뒤지니 석곽이 나왔다.

주민들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되어 시신의 머리가 산 아래로 팽개쳐졌다. 그러자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가 함빡 내렸다고 하며, 무덤을 쓴 사람은 그 뒤 다른 지역에 가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뭄이 심하게 들면 주민들이 이 산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산을 파헤치면 비가 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 조상의 묘를 쓰면 큰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을 믿고 밤중에 남의눈을 피해 시신을 암매장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효자·효녀설화로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베틀바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갑숙이라는 처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병이 난 어머니를 위해 약을 구해 오다 길에서 신음하는 할머니를 업고 집으로 왔다. 업고 온 할머니를 어머니와 함께 간호했는데, 다음날 할머니는 사라지고 어머니의 병환은 말끔히 나았다.

마늘밭    20230318

그 뒤 갑숙이는 베를 짜서 생계를 꾸렸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 나라 안에 소문이 퍼져 임금님이 직녀들을 데리고 베짜는 시합을 구경하러 왔다. 갑숙이의 낡은 베틀을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을 때 누더기를 입은 할머니가 나타나 지팡이를 휘두르니 선녀들이 내려와 갑숙이와 같이 베를 짰다.

물론, 이 베는 직녀들의 베보다 훌륭하게 짜였고 갑숙이는 임금님에게서 상을 받았다. 이때 선녀들이 베를 짠 베틀은 열 개의 베틀바위로 우뚝 서 있게 되었고, 효녀 갑숙이는 그 뒤 왕비가 되었다고 전한다.

열떼재에 있는 낡은 집 한 채는 은혜를 베푼 사람, 은혜를 갚은 사람의 혜담·보은담이 서린 곳이다. 열 떼 재는 산적이 출몰해 열 사람 이상이 떼를 지어 넘어야 안전하다는 고개이다.

보리고개 때 할아버지와 손자가 소 판 돈을 안고 급히 재를 넘다가 아우성 소리를 듣게 되었다. 굶주림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잡아먹으려 하고 그 어머니가 이를 말리는 소리였다. 손자는 돈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중하다고 할아버지를 설득해 젊은 부부에게 돈을 주게 하였다.

그 뒤 손자는 청년이 되었으나 점차 가세가 기울었고, 은혜를 입은 노씨 부부는 점차 부자가 되어 옛날 은인을 찾을 방도를 모색하다가 열떼재에 주막을 차리고 행인의 과거지사를 듣기로 하였다.

행인들에게 무료로 술을 대접한 지 여러 해가 지나 주막을 그냥 지나치는 나그네를 일부러 붙잡고 옛날 일을 한자리 부탁하였다. 그는 바로 어린 손자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조 씨였고, 옛날 열떼재를 넘을 때의 사건을 말하였다. 노씨네는 조 씨에게 살림을 나누어 주고 죽은 할아버지의 묘에 제사드리고, 그 뒤 양가는 두터운 정을 맺고 지냈다.

이 밖에도 술이 나왔다는 「누룩바위이야기」, 여자의 경박성을 훈계하는 「신주못이야기」, 용이 울면서 지나갔다는 「울고개이야기」 등의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은 주로 부요(婦謠)가 전파되어 계승되고 있으므로 사설적(辭說的)인 형식의 민요가 많다. 대표적인 민요로는 「청상요(靑孀謠)」·「시집살이요」·「놋다리노래」 등이다.

「청상요」는 청상의 임에 대한 애절한 심회를 토로한 내용이니, “언제언제 오실랑 공/동솥안에 안친쌀이/싹이 돋아 오실장 강/큰솥 안에 안친쌀이/움이 돋아 오실장 강/핑풍 넘어 기린닭이/홰치거든 오실장 강.”이라 하여 돌아올 가망 없는 임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에서 미련으로나마 외로운 마음을 달래 보는 노래이다.

또한, 「시집살이요」는 흔히 시집살이의 괴로움을 노래한 것과는 달리, “아랫논에 미베숨거/웃논에는 찰베숨거/골골에는 깨를 숨 거/메떡 치고 찰떡 치고/찰떡에는 깨소옇고/메떡에는 콩고옇고/목이 자숙 자라병에/소주 한 병 잔뜩옇고/목이 자숙 황새병에/탁주한병 가뜩옇고/쑥개 잡아 쑥찜 찌고/수탉 잡아 원반 짓고/안개 잡아 안 찜 찌고/암탉 잡아 찌짐 하고/우렁추렁 걷는 말에/아해종아 말 몰아라/어른종아 부담해라/홍비단 당홍치마/숭금비단 섭저구리/북도명주 동정 시쳐/남북자지 짓을 대고/맹지고름 솔피 달아/벌집같이 좁은 길로/안반같이 넓은 길로/서발장 때 뻗친 길로/설대 같은 곧은길로/반부담에 도듯이고/울렁출렁 걷는 말게/우리 집에 나는 간다/오동오동 나는 간다.”라고 전한다.

이 노래는 부지런히 알뜰살뜰 살림을 하다가 버젓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친정을 찾는 즐거운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놋다리노래」 역시 이 지방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이지래는 누지랜가/나라님의 억지래지/이 터전은 누터인가/나라님의 옥터일세 /긔어데서 손이 왔니/정상도서 손이 왔네/몇 대간을 밟고 왔니/신댓간을 밟고 왔네/무슨 옷을 입고 왔니/철갑옷을 입고 왔네/무슨 갓을 쓰고 왔니/용단갓을 쓰고 왔네/(중략) 무슨 신을 신고 왔니/목파래를 신고 왔네.”라고 하여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밖에도 「자장가」·「메밀요」·「상사요(相思謠)」·「안동부사 딸노래」 등의 노래가 전파되고 계승되어 오고 있다.

임야면적은 전체 면적의 67.5%를 차지하는 데 비해 경지면적은 204.45㎢로 17.4%에 불과하다. 경지 중 밭은 81.43㎢로 39.8%를 차지하고 논은 123.02㎢로 60.2%를 차지한다.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은 1.74㏊ 정도로 영세하며, 총인구 가운데 농업인구는 45.1%를 차지하고 있다. 위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안계평야가 발달되어 있는데 계천저수지·조성저수지 등이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을 비롯한 각종 식량작물과 채소의 재배가 널리 행해지고 있는데, 특히 마늘·사과·고추와 작약 등의 특용작물 재배도 활발하다. 그 중 면화·대마 등 섬유(纖維) 작물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크게 감소를 보인 반면에, 참깨·들깨 등의 유지(油脂) 작물은 면적과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약용작물은 백작약·산수유를 비롯해 20여 종이 재배되고 있다.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 마늘은 의성읍·사곡면·가음면·금성면·신평면·안평면이 주산지이다. 특히 가음면 순호리에서는 마늘엑기스에 사과즙·한약재 등 13종의 원료를 첨가한 마늘드링크, 마늘진액에 설탕·향료 등 5종의 원료를 첨가한 마늘캔디 등의 건강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다.

색깔이 곱고 감미가 높은 의성고추는 의성읍·단촌면·점곡면·옥산면·안평면에서 주로 재배되며 연간 4,400여 t이 생산된다. 한약재로서 작약은 사곡면 일원과 의성읍 상리리에서 주로 재배되며, 재배면적이 13㏊로 전국 20%를 차지하여 연간 68여 t(전국 생산의 1위)이 생산된다. 축산업은 육우·젖소·닭 등의 사육이 많으며, 현재는 대규모 기업과 전업축산농가(專業畜産農家)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입목축적은 6백 79만 4,103㎥이며, 임산물 생산량은 55만 6,319㎏이나, 특히 등운산 기슭에서 자생하고 있는 송이버섯은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광업은 1960년대부터 군의 일대에서 금·은·동·연·아연·형석·고령토·석탄·철흑연·만강·운모 등 12 개종에 78개의 광업권이 설정되어 있다. 2008년 현재 광구수는 40개로 그중 가행 중인 광구는 4개로, 의성읍에서 고령토가 산출되고 단촌면에서 규석이 산출되고 있다.

농공단지는 의성읍·봉양면·다인면에 3단지가 있고 총면적 55만 8,661㎢로 총 52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201명이 종사하고 있다.

상업을 보면 전통적인 농업지역으로서 일찍이 상업이 크게 발달되지는 못했으나 농산물의 교역만은 오래 전부터 활발하였다. 근대적 시장은 1960년대 중반에 12개소, 1960년대 후반기와 1970년대에 들면서 2개소, 1980년대에 1개소가 개설되어 총 15개소의 5일장이 개설되어 주로 농산물과 가정의 필수품을 매매하는 역할을 해 왔다.

1986년에 의성읍에 사설 일반시장이 개설되었고 그 밖에 농·수협공판장 등이 있다. 이곳에서 주로 거래되는 물품은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고추를 비롯해 각종 농산물과 약초 등이다. 마늘과 고추가 출하되는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정기시장의 거래는 절정을 이루며, 겨울에는 우시장이 활발하다.

의성장에서는 마늘과 고추가 많이 거래되며 단촌장은 전국 최대의 고추시장이다. 동부지역의 장에서는 작약·시호·황금 등 약초가 많이 거래된다. 현재는 읍·면 단위 소재지 상가(商街)들이 슈퍼마켓이나 체인스토아 등의 연쇄점화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국이 1일 생활권화되어 고가품이나 다량 구입은 대구·안동 등 도시에서 구하는 실정이다.

교통은 국도 5호가 군위·의성·안동, 28호가 예천·위성·군위로 각각 연결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지방도가 면의 곳곳으로 뻗어 있다. 철도의 중앙선이 의성읍을 지나는 등 국도 5·28호를 따라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다.

동쪽에는 태백산맥에 속하는 황학산·산두봉 등의 높은 산이 있고, 군내에는 금성산·비봉산·국사봉·기령산 등의 구릉성 산들이 널리 분포해 있는 내륙·산악관광지이다. 관광명소로는 단촌면 구계리의 고운사, 춘산면 빙계리의 빙계계곡, 금성면 대이리의 조문국지와 제오리의 공룡화석, 봉양면 구산리의 탑산온천 등이 있다.

고운사(孤雲寺) 경내에는 최치원이 세운 가운루·나한전, 높이 2.5m의 단정한 맵씨를 자랑하는 고운사3층석탑, 신라 말 선각국사가 조성한 석조석가여래좌상, 염라 10 왕이 모셔져 있는 명부전 등이 있다.

의성의 명소인 빙계계곡은 청송군 보현산(普賢山)의 지맥이며, 화목령(和睦嶺)과 금오(金梧)골짜기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크고 작은 지류가 이룬 협곡으로, 계곡의 절벽과 맑은 물이 조화되어 절경을 이루며 둘레 10m, 높이 2m의 바위에는 ‘慶北八勝之一(경북팔승지일)’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있다.

그리고 절벽 아래 반구형으로 패여 있는 용추(龍湫)·물레방아·풍혈·정오가 되면 햇빛이 인(仁) 자 모양의 그늘을 만든다는 인암(仁巖)·윤은보선생을 기리는 의각·빙산사지 오 층 석탑·빙혈·빙산꼭대기에 쇠스랑처럼 움푹 파인 부처막 등의 빙계팔경이 계곡 입구에서부터 차례차례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관광객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여름에는 얼음이 얼고 찬바람이 나며 겨울에는 더운 바람이 나온다는 빙혈·풍혈이다. 부근의 개일약수터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금성면 북동부의 금성산 꼭대기에는 600평 규모의 평지가 있다. 이곳은 금성면 일대에 터를 잡았던 조문국의 병마훈련장이었다. 탑리·대리리에는 경덕왕릉을 비롯해 조문국의 고분이 많이 남아 있고, 문익점이 최초로 목화씨를 뿌렸던 제파지인 것을 기념해 1909년에 세운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있다.

제오리에는 지금으로부터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이 일대의 뻘밭을 거닐던 공룡발자국이 300 여기가 화석을 이루고 있다. 금성면 탑리리의 오 층 석탑, 단촌면 관덕리의 삼층석탑·석불좌상, 다인면 봉정리의 대곡사 13층석탑, 금성면 수정리의 1300년 전 의상대사가 창건한 수정사, 춘산면 대사리의 덕양서원 등이 있다.

그리고 봉양면 구산리에는 게르마늄 함량이 전국최고치(72.4㎍)이며 세레늄·리듐·유황·나트륨 등을 함유하고 있어 당뇨·혈압·위장병·대장염·간염·관절염 등에 특효가 있다는 탑산온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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