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방문기

회암사지와 회암사 방문기 20230125

한마음주인공 2023. 2. 3. 16:44

지난주에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회암사지와 회암사를 들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회암사를 가기 위해

의정부를 지나 양주시에 있는 덕정역에서 하차하여 이곳을 가는 78번 시내버스를 40분간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회암사지 박물관 전철역에 내려 회암사지 박물관을 먼저 관람하고 이어서 바로 박물관을 나오니 회암사지

넓은 옛 사찰터가 펼쳐 졌습니다

 

 

회암사지 터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사철텆 숭의 하나였는데 이곳이 태조 이방원 티브이 역사드라마에서

태조 이성계가 함흥을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그런 사찰이라고 하여 사찰과 왕궁이 조합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고 지금의 사지터를 보아 그 당시에는 정말 대단한 큰 사찰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와 사찰터로 이어지는 잔디렾 길을 통해 회암사지 사철터에 이르는 10분 동안 걸어 오르니 정말 광대한

규모의 회암사지터가 발굴당시 안내와 함께 계단을 오르며 설명판이 서있다 주변으로 보아 산세는 그다지 크지 않은

나지막한 남향방향 자리에  각종 법당자리 그리고 설법전 그리고 맨 위중앙에 궁궐터로 추정하는 왕궁터가 나왔다

 

 

왕궁터 오른쪽 맨 위에는 사리탐이 남아 있어 당시의 회암사지의 규모와 이곳 사찰과 궁궐이 어우러진 이곳이 당시 우리 불교의 총 본산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곳이라니 사찰터의 규모 만으로도 당대 불교의 융성함을 었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회암사지를 관람하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나오지 회암사 가는 일주문이 나오고 회암사길이 나온다 

 

 

회암사 일주문지나 차도로로 올라가니 양 500m 새로 창건된 회암사가 나온다  마침 회암사 대웅전 암에 이르니 일요법회를 하는지 다소 큰 스피커에서 스님의 법문 읽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비록 큰 규모의 사찰은 불에다 온 데 간데없고 터만 

남았지만 새로이 창건된 회암사에서 다시금 큰 불사를 기원 해 본다

 

오봉도 임금님이 어전 뒤 그림  회암사 박물관에서  20230125
태조 이성계 치유의 궁뤌 20230125

 

회암사 좌측으로 뒷산에 오르는 길이 있었으나 조금 늦은 시간 오후 3시가 되어 되돌아 나와야 했다 이처럼 오늘 이성계의 궁전이 있던 회암사지와 회암사를 둘러보며 고려와  조선에 이르는 시기에 융창한 불사터와 그 규모를 보고 불교가 차지한 

민족 신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비록 조선에 들어와 불교가 타압되어 불교가 쇠퇴되었으나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웠했던 고려말기와 조선초에 불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 본다

 

회암사지 박물관  20230125

 

이 글을 쓰면서 회암사지에 대하여 궁 궁한 점이 많아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회암사지

사적 제128호이다. 1313년 이전에 이미 절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326년 고려에 온 인도 승려 지공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376년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이 절을 중창했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했고, 그 자신도 퇴위 후 이곳에서 생활했다. 1472년 세조비인 정희왕후의 명으로 정현조가 중창했고,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의 비호로 전국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 왕후가 죽은 뒤 보우가 처형되고 절도 황폐해졌다. 선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옛 절터 부근에는 1977년 중건한 대웅전·삼성각·영성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등이 남아 있다.

 

 

회암사지 옛터  20230125

사적 제128호.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보우선사의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에 의해 1313년(충숙왕 즉위) 이전에 이미 절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26년 고려에 온 인도 승려 지공(指空)이 천력연간(1328~29)에 회암사의 절터를 측량했다는 기록으로 인해 지공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1376년(우왕 2)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삼산양수지기(三山兩水之記)의 비기에서 이곳은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와 지형이 같으므로 가람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흥한다고 하여 이 절을 중창했다. 한편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퇴위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은 대가람이었으며, 1424년(세종 6)에 행해진 선교양종(禪敎兩宗) 폐합 때의 기록으로도 그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472년(성종 3)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명으로 정현조(鄭顯祖)가 중창했고,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비호로 다시 전국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 왕후가 죽은 뒤 유생들의 탄핵으로 보우가 처형되고 절도 황폐해졌다. 선조 때까지는 기록에 간간이 절의 이름이 보이지만 1818년 재건한 무학대사비에는 폐사되었다고 하므로 선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옛 절터 부근에는 1977년 중건한 대웅전·삼성각·영성각(影聖閣) 등이 있다.

회암사 박물관의 용두례 머리  20230125

절터에는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무학대사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부도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남아 있다.

 

회암사 부도 20230125

 

회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회암사 대웅전   20230125

그러나 지공이 창건하기 전에도 1174년(명종 4) 금나라의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으며, 보우(普愚)가 1313년(충선왕 5)에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한 바 있어 이미 12세기에 존재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의 승려 수는 3,000명에 이르렀으며,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로, 조선의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효령대군(孝寧大君)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1424년(세종 6)의 기록을 보면 이 절에는 250명의 승려가 있었고, 경내가 1만여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1472년(성종 3)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중창하였으며, 명종 때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교 재흥

회암사지에서   20230125

정책을 펼 때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修禪道場)이 되었으나, 왕후가 죽고 유신(儒臣)들에 의해 나라의 정책이 다시 억불정책으로 선회하자 1565년(명종 20) 사월 초파일에 보우(普雨)가 잡혀 가고 절은 불태워짐으로써 폐허화되었다.

1821년(순조 21) 지공·나옹·무학의 부도와 탑비가 고의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정에서 1828년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옛터 옆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는 사호를 계승하였다. 1922년에 봉선사 주지 홍월초(洪月初)가 새로 보전을 짓고 불상을 봉안했으며 지공·나옹·무학의 진영을 모셨다.

회암사지  20230125

1976년에는 호선(昊禪)이 큰 법당과 삼성각·영성각(影聖閣) 등을 중건하였다. 회암사의 정문이었던 일주문(一柱門)으로 들어서면 대웅전이 있었던 곳으로, 주춧돌의 수가 532개나 된다.

이 법당터 옆에는 사찰의 화장실 자리가 있고, 오른편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물(石物)이 남아 있는데, 길이 12자, 너비 9자, 두께 1자, 깊이 3자이며, 이 옆에는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맷돌과 기름틀이 있다. 또한 본당 뒤에는 사방 6자의 떡안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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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   20230125

이 사지는 현재 서울의 중앙여자고등학교 소유로서 안내판만 있을 뿐이고, 여기서 500m쯤 올라가서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현재의 회암사가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387호인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와 보물 제388호인 회암사지부도, 보물 제389호인 회암사지쌍사자석등(檜巖寺址雙獅子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로는 제49호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인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인 회암사지부도탑이 있다.

옛 절터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0년 현재 대규모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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