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은사는 경남 김해시 김수로왕릉이 있는 북쪽에 부산성옆에 있는 사찰로서 인도 아미타 허왕후의 불심이 깃들어져
있는 작은 사찰입니다 부산성 높은 곳에 위치하며 규모는 작지만 여기에 세워진 인도 아미타국에서 전해온 인도풍
조각이 있는 인도풍 부처님 진산사리탑이 있다



우연해 경남 김해시 김수로왕릉 일대를 여행하며 가야 테마 파크 뒷산에 인접한 해은사는 부처님 은해를 생각하게 하는
사찰 이름처럼 좀 특이한 사찰이다 이곳 사철터에서 김해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특히 부산성이 인접해 있어 오후 낙조명소로도 해은사 옆 부산성 노을이 정말 아름 다운 곳이다


가야국이 생겨나며 인도 아미타국에서 12명의 안내자와 16세의 허왕후가 인도에서 중국 내륙을 거처 중국동쪽에서 배를 타고 이곳 가야국 감수로왕과 인연으로 이어진 발해건국인 김수로왕의 왕후가 되기까지 잔잔한 사연이 얽힌 부처님 은해를 기리기 위해 허 왕후가 새웠다는 기록이 안내판에 전하 내려오고 있다


해은사 부도 진신사리탑은 쵝근에 완성한 듯 아직 사리탑에 돌이끼나 돌 이 오래된 흔적은 없지만 원형으로 세워진 탑의 돌에 새겨진 아미타국 의 인도인의 문화모습을 보며 잠시 어떻게 통신수단이 없던 시대에 저 멀리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이곳 가야국에 인연이 닿아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는지 참 기묘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또한 김해 분산성은 해은사와 능선으로 맞닿아 있어 분산산성에 오르면 은해사와 함께 김해의 여러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내가찿은 일요일 20230108에도 분산성과 해은사를 찾아온 손님과 관람객들이 많이 보이고 특히 해은사 출입구 과일 바구니에 귤과 바나나 등을 놓아 두어 해은사를 찾는 이들이 먹을 수 있게 한 배려가 인상적이다 나도 귤 하나를 먹고 부도탑에 보시를 하고 왔다


비록 규모는 작고 허술하지만 이사찰이 있게한 부처님은 해를 생각해 건축된 사찰이라 하니 그 창시된 사찰역사가 바로 부처님이 숨길이 여기저기 묻어있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비 사랑을 주는 듯 부처님의 자비 사랑이 넘치는 사찰 같았다 이 글을 쓰면서 더욱더 김해 해은사의 알고싶은 점이 많아 인터넷 배가 사진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해 해은사
부처님의 가피가 내린 김해 최고의 명당인 만장대(萬丈臺)에 위치한 해은사는 정면 남쪽에는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가 바라보이며, 서쪽에는 김해시, 동쪽에는 동김해시가 훤하게 내려 보인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해은사(海恩寺)'라는 이름은 허황후(許皇后)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바다를 건너왔기에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김해시에는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ㆍ허황후 설화와 관련된 곳이 많이 있으며, 수많은 사찰이 남방불교 전래설에 입각하여 그 창건을 얘기하고 있다. 해은사 또한 그런 사찰들 중 하나이다.



해은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왕전(大王殿)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대왕이라 함은 바로 수로왕(首露王)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각 내부에 수로왕과 허황후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은사는 분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내린 '만장대'라는 칭호를 보더라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찰들이 그러하듯이 해은사 역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82년 영산전(靈山殿)을 재건하면서부터 가람이 정비되었고, 현재는 김해시의 지원으로 분산성 일대가 복원, 정비되고 있다.

* 해은사 창건배경 및 역사 *
분산성 정상에 위치한 해은사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가 무사히 배를 타고 건너올 수 있도록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 조와 금관성파사 석탑(金官城婆娑石塔) 조에 의하면, 허황옥이 바다를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창건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어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해은사가 분산성 안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전란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얼마 전까지 대왕전에 봉안되어 있던 수로왕과 허황후의 진영(眞影)이 조선후기의 작품이므로 이로써 조선시대 역사의 한 부분을 짐작해 볼뿐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쇠퇴해졌던 가람은 1982년에 영산전 중건을 기점으로 여러 법당을 중건ㆍ보수하였으며, 최근에는 부산ㆍ경남지역에서 처음으로 납골당을 설치하여 지장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1997년에는 허황후가 배에 실어 왔다는 파사석탑을 재현하는 불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해은사 옆 김해 부산산성
분산성은 고려 우왕 3년(1377년) 박 위 부사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고종 8년(1871년) 정현석 부사가 개축한 것이다. 그러나 성의 기초 선정 방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테뫼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최초 축성연대는 가야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 군박 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朴葳)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김해시내, 김해평야와 낙동강, 그리고 남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분산의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현재는 시내 쪽 경사면에 약 900m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는 남북의 2개 문지와 서편의 암문, 아물지 등 몇 개의 건물터도 남아있다. 성곽의 길이는 총 929m, 평균 폭은 약 8m이다. 산성 안에는 해은사가 있다.

해은사는 가락국의 허왕후가 바다에서 왔던 것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 승병이 주둔하였다고 전한다. * 분산성의 또 다른 이름 만장대 * 김해시민들에게는 "만장대"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데,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뒤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동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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