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 미끄럽고 바람이 부는 12월 20일 아침 기온 영하 8.5도 한낮기온 영하 5도인데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고자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집에 움크리며 티브이를 보는 것이 지루하였다 점심을 얼른 먹고 집을 나서본다
얼굴에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전철을 타고 용문역에서 내린 시간이 오후 3시 15분이다 용문사행 버스를 기다려도
차는 오지않아 2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택시를 탔다






용문역에서 용문사까지 택시로 9,200원 나와 택시비를 지불하고 용문사 입구 매표소에 소 입장료 2,500원 지불하고
용문사 방향 산 쪽 계곡길을 올라가니 양평 농업기술센터 농업박물관이 나온다 들어가 관람을 하려 하니 월용 일이라 휴관이란다 다시나 와 용문사 계곡길을 오르니 찬바람이 참 많이도 불어댄다





진짜 계곡 바람에 얼어붙은 계곡 시냇물은 얼어붙어있고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한겨울을 실감하며 종종걸음으로 오르니
조금만 문수교가 나오고 다시 더 오르니 관음교가 나온다 이곳 용문사는 은행나무가 오래된 것이 있어 용문사 하면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참 은행나무는 크기도 하다 여직것 국내에서 본 은행나무 중 제일 크고 굵기도 참 대단하다




은행나무 철재 가대에 소원지를 수없이 매달어 놓은 것이 은행나무만큼이나 참 많기 더 하다 저마다 인생 소원 부모 소원
많은 소원을 은행나무에 기대며 소망지들이 펄럭인다 이어 나지막한 계단을 오르니 종무소와 대웅전이 나온다
일단 대웅정에 들어가 3배 인사 올리고 오늘 내가 대웅전 부처님을 보이려고 3시간 반을 달려왔습니다






참배 인사 올리고 나오 좌측으로 오르니 칠성각과 산령각이 있다 규모는 적으나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양식이다 그리고 오르는 우측 ㄷ낮은 돌담에는 참 많은 미니 부처님이 나를 반겨주신다 그리고 미소 전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이것이 다른 절과 다른 이름이 이채로웠다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니 많은 부처님들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웃고 계신다



이어 큰 마당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팔각정 정자의 관음전이 보인다 이것도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이색 집이다
팔각 정안에 관음보살을 주 보살로 모셔 놓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지주 국사 개인 비라는 곳으로 가는 길이 있었으나 그곳은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용문사는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사찰의 구석구석을 다 두루 갖추어진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그리고 큰 은행나무가
ㅇ용문사의 역사를 실체로서 알려 주는 것 같고 이곳에도 템플스테이가 이어지고 있어 시간이 되면 참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셍긴다 이제 템플스테이는 전국의 큰 규모 사찰에서는 다 행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용문사도 외구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된 것을 임란 이후 보구 하여 현재에 이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용문사도 많은 시련을 격은 호국 사찰로 여겨진다 용문사 은행나무 등 역사는 1378년(우왕 4)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이 경천사(敬天寺)에 있던 우왕이 원각(願刻)한 대장경판을 이곳에 옮겨 세 칸의 대장전(大藏殿)을 지어 봉안했으며, 1395년(태조 4) 조안(祖眼)이 중창하였다.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 씨(沈氏)를 위하여 보전(寶殿)을 짓고,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한 뒤 이듬해 경찬회(慶讚會)를 열었다.



용문사를 둘러보니 이곳도 승병이 일어나던 곳이라 알려지니 경남의 표충사와 더불어 불교가 의병활동으로 일본
왜구들과 저항한 흔적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계곡 중앙이고 낮은 중턱이라 부는 바람이 참 차갑게 다가
언다 이곳 이도 우리 불교가 큰 역할을 했던 곳이라 생각하니 잠시 찰나 둘러보는 불자의 한 사람으로 용문사가 더욱 발전
하고 번영하기를 기원해 본다


이 글을 쓰며 용문사에 대한 궁 궁한 점이 많아 인터넷 백과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용문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용문산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도 한다.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大鏡大師)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649년(진덕여왕 3)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892년(진성여왕 6)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또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1378년(우왕 4)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이 경천사(敬天寺)에 있던 우왕이 원각(願刻)한 대장경판을 이곳에 옮겨 세 칸의 대장전(大藏殿)을 지어 봉안했으며, 1395년(태조 4) 조안(祖眼)이 중창하였다.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 씨(沈氏)를 위하여 보전(寶殿)을 짓고,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한 뒤 이듬해 경찬회(慶讚會)를 열었다.




수양대군은 이 법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던 중 불사리(佛舍利)의 방광을 목격하고 이 절을 원찰(願刹)로 삼았으며, 1457년(세조 3) 퇴락한 법당과 승방(僧房)을 중수하였다. 1480년(성종 11) 처안(處安)이 중수하였으며, 1890년(고종 30) 봉성(鳳城)이 조대비(趙大妃)의 외호를 받아 중창하였고, 1893년에도 한 차례 중창하였다.



1907년 의병 봉기 때 모든 건물이 불타자 취운(翠雲)이 큰방을 중건하였고, 1938년 주지 홍태욱(洪泰旭)이 대웅전·어실각(御室閣)·칠성각·기념각·요사채 등을 복구하였다. 6·25 전쟁 때 용문산 전투로 다시 불에 탔으나 1958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그 뒤 1983년 지장전·범종각·일주문 일부를 중수했고, 관음전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그중 지장전은 1994년에 완공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지장전·관음전·삼성각·종각·요사채·일주문(一柱門) 등이 있으며, 옛 절터에는 주춧돌이 산재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 부도(正智國師浮屠) 및 비가 있으며, 산신각 동쪽에는 부도 5기가 있다. 이 밖에 이 절 앞에는 높이 42m, 가슴높이 둘레 14m의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이곳에 들러 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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