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삼성산 산행

한마음주인공 2022. 3. 8. 15:09

오랜만에 안양에 소재하는 삼성산을 찾게 되었다 삼성산은 안양 예술공원 뒤편에 위치하는 산으로 제1전망대 노하여 국기봉으로 하여 서울대산림연구소가 있는 곳으로 7km를 4시간에 걸쳐 두루 돌게 되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2시에 지하철 관악역에서 내려 곧바로 큰 도로 건너 산행 능선길로 접어든 시간이 오후 2시 20분이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내려오는 사람들이고 오르는 이가 나 혼자 뿐이다 때로는 산길 옆에서 점심을 하거나 모여 않아

소곤대는 무리의 사람들이다 삼성산 전망대에 바로 보는 서해 바다와 시험 앞바다 그리고 북서 쪽으로 멀리 강화도

만니산과 혈구산 진강산도 희미하게 잘 보인다

 

 

이산은 오늘로서 벌써 20여 차례이지만 산길 옆 돌무더기들이 아기자기하고 특이 제1전망대 뒤  튀어나온 돌들이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바로 밑에 경인교대가 있고 안양로 한마음선원이 시원하게 잘 보이는 곳이다 이곳으로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좀 떨어진 위치에 삼막사가 있고 삼막사에 마애불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국기봉에 올라 사진을 2장 찍고 시간을 ㅂ보니 벌써 오후 4시가 지나간다 예전 같으면 이곳을 1시간에 올랐는데

이제는 2시간이 제1전망대까지 밖에 올 수가 없다 그래도 쉬지 않고 시간이 되면 산에 오르는 습성으로 이 산길 여기저기에 눈에 좋은 풍광과 절벽이 나를 반겨준다

 

오전 이곳 산행을 여러 번 하며 꼭 사진 촬영 장소가 또 그 장소에서 매번 사진을 찍게 된다 이제는 사진 찍은 장소를

머리에 외울 정도로 그렇게 이곳 산행길에 익숙해져 있다 이곳으로 오르다 정상 부근에 상불암과 천진암 등 암자도

여기저기 많이 있다 그리고 내가 가는 이 길은 하도 사람이 많이 다녀 돌과 나무 외피 부분이 반질 반질하다

 

 

잠시 사진 찍을 때를 빼고는 쉬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며 삼악산을 의미해 본다 삼성산은

관악산 남서방향이 주류를 이루고 이곳 안양 유원지 올음 길에 건축박물관과 이곳에 엤사찰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주춧돌이 있다 이곳 옆에 마애불상 대신 마애 종이 그려진 석조상이 있기도 하다

 

 

 

안양 예술공원은 해마다 예술작품이 여기저기 늘어난다 예술인들이 예술작품을 조형해 놓은 곳이라 우리가 상상 못 한'

아름다운 조각상과 조각물들이 줄 비하다 특히 등산로 좌우에 등산용품 판매점이 참 많기도 한 곳이 이곳 예술공원 입구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이 다니니 등산용품도 많이 팔리기도 하고 고리고 예술품도 많이 진열해 놓아 한번쯤 은 이곳의 풍경에

흠미하며 걸어도 좋은 그런 산길 코스 중 하나이다 입구에는 군밤과 호떡 판매하는 곳도 여러 있다

그만큼 이곳은 평일에도 사람이 많이 찾고 특히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안양의 명소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삼성산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에 들어가 삼성산을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삼성산을 기술하고 있다

삼성산

'삼성산'은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보통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삼성산(三聖山)」 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

 

 

 

는 것이다. 산중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 (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