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비도 3일이 멀다하고 자주 내리고 기온도 아침저녁으로 차가움도 다른해와 유달리 느끼는 나만의
기온변화일까요 아무튼 비가 자주내려 모내기후 정식으로 아직 논에 들어가는 물고를 터준 적이 없을 정도로 물걱정없는 모내기 (5/22)이후 생활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산길을 오전 6시반에 걸으면 차가움도 잠시 돌아 올때는 차가움이 가시며 약간 더위를 느끼게 됨니다
숲속길은 나무잎이 울창하여 시아가 짧기만 하고 알수없는 새들의 지적이 유난이 맑게만 들여 오는 아침이 상퀘하기기만 합니다 이처럼 6월은 불과 5월과는 1주일 차이지만 작은변화가 있음을 감지하게 됨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유난히 더워 기상대에 문의하여 오늘 기상에 대하여 알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기상예보 6/8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오늘은 여름 더위가 이어지겠습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 28도 대전 31도 광주와 대구 33도 등 붉은 색으로 보이는 충청과 남부지방은 30도를 웃돌겠는데요.
아직까지는 습도가 낮아 그늘에서는 선선하겠습니다.
수도권지역엔 구름이 많이 끼어 있습니다.
오후에 경기 북부와 영서 중북부엔 5밀리미터 안팎의 비가 오는 곳이 있겠고, 그 밖의 수도권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겠습니다.비의 양이 적고 비가 내리는 시간도 한두시간으로 짧겠습니다.
남부지방은 맑은 가운데 자외선도 강하겠습니다.
낮기온은 대부분 30도 안팎까지 오르겠지만 동해안은 강릉 25도 예상됩니다.
바다의 물결은 전해상에서 1-2미터로 비교적 낮게 일겠습니다.
내일은 서울의 낮기온이 31도 등 오늘보다 기온이 더 오르겠고 모레까지 더위가 이어지겠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우리동네 아우인 전정일 아우님과 둘이서 아우님 차를 타고 오전 10시 반 황골 정자에서 출발하여
교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교동에는 정정일 사촌인 전정필 목사님(교동도 인사교회 목사님)이 계서서 3년전에도
교동 관광을 세밀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 다시 초대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교동도는 내가사는 강화에서 다시 교동대교를 건너야 하는 곳인데 예전에 비하면 참 좋은 교통수단이 교동도 관광을
쉽게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교동도에 대하여 궁금하여 강화군 문화자료를 열람하고 좀더 세밀히 알고싶어 인터넷에 들어가 찿아보니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교동도 이력과 관광안내도 (위키워크 백과사전참조)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이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1]
고려시대 때부터 수도와 가까워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연산군, 광해군이 있으며 연산군은 여기서 죽었다. 그 외에도 임해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영선군(고종의 조카 이준용), 화완옹주 등이 여기에 유배되었다.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경기수영 예하 함선과 병력이 항시 주둔하고 있었인ㅅㅅ며, 인조 시대에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에 들어가지 않는 경기, 황해, 평안 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읍을 폐하고 강화와 합군하였다가 다음해 7월에 다시 읍으로 하고 군수를 두었다. 그때 당시는 교동 동서남북면 4개 면과 송가면을 합쳐 5개면이었다가 국권침탈 후(1910)에 송가면은 송남면으로 개칭하고, 본도는 4개면 13개로 구획되었다. 합군(1914) 이후, 송남면은 삼산면에 부속되었고 교동은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이 되었다. 1934년 이후, 화개·수정면을 합면하여 지금의 교동면이 되었으며 현재 법정리는 13개, 행정리는 17개이다.
본도는 인천광역시 서해안에 놓여 있으며 동교도동 대룡시장은 양사면, 삼산면, 서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으로는 불과 5km 밖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이르고 있어 황해도 연백군이 눈앞에 보인다. 도서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으며 해안선은 평탄한 편이고 해저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다.
2014년 7월 1일에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강화 버스 18번과 자동차로 교동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문화·관광
문화재
- 조선시대 한증막 터
화개산 자락에 있는 봉분 형태의 조선시대 찜질방으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1970년대까지 이용되었다고 한다. 2008년 마을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교동도에 남아 있는 한증막 세 곳 중 한 곳이다.
- 연산군 유배지
연산군이 최후를 맞은 위리안치 유배지로 전해오는 곳이다. 위리안치 상황과 소달구지를 타고 유배 온 연산군 모습 등을 재현해 놓고 전시관을 세웠다. 전시관에서 유배형의 종류, 교동도 유배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 교동읍성 남문
1629년(인조 7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같이 만든 것으로, 둘레는 870m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동/남/북쪽에 성문을 세웠으나, 현재는 남문(홍예문)만 남고 나머지 문과 성곽 모두가 사라졌다. 2018년에는 홍예문 문을 복원하였다.
- 부근당
교동읍성 북쪽, 무너져 내린 성곽 곁에 남아 있는 옛 사당이다.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되는 탱화가 걸려 있는데, 주민들은 연산군이 죽음을 맞은 11월 격년으로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당굿을 벌여 왔다고 한다.
- 교동향교
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공자 초상을 가져와 모셨다는 향교다.[2]
- 화개사
고래 때 목은 이색이 공부했다는 작은 암자이다.
기타
- 옛교동교회
한옥 건물의 옛 교회.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강화군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 대룡시장
6.25 전쟁 때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월남하였던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자, 황해도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다는 연백시장을 본따서 만든 재래시장이다.
대룡시장
- 망향대
교동도 북서쪽 해안 율두산(밤머리산)에 있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와 정착한 실향민들이 고향 땅을 바라보며 제를 올리고 망향의 한을 달래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 2개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강 건너 북한 땅의 건물과 간간이 오가는 주민을 볼 수 있어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생생히 느낄수 있게 한다.
망향대
- 교동 제비집
교동도에 대한 여행 정보도 얻고 여러 체험도 할 수 있는 관광안내소다. 제비집이란 이름은 실향민들의 고향 황해도와 교동도를 자유롭게 오가는 수많은 제비들을 상징해 지은 것이다.
- 교동 스튜디오
대룡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사진관이다. 1960~70년대식 교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고 흑백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강화나들길 교동코스
강화나들길 9번(교동나들새길. 월선포 ~ 화개산)과 10번(교동머르매길. 대룡시장 ~ 머르
이처럼 교동도는 많은 문화재와 특이 연산군 유배지로서도 유명하다 그래서 강화와 바다 사이를 두고도 참 많은 문화재가 수두록하다 그런 교동도에 10전 전부터 이곳 인사리에서 터를 잡고 있는 전정필 목사님 안내로 교동도를 2번째로 관광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모내기로 지친 전정필 아우님과 함께 가게 되어 너무 기쁘고 좋은 여행이었다
우선 인산리 황골에서 출발하여 천천히 외포리를 경유해 내가시장 그리고 양사면 고개에서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출입신고를 한다음 다시 교동대교를 건너 교동도 대륭시장 옆을 지나 인사리로 가는 들판길을 가로질러 가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교동평야의 모내기는 강화도 보다 빨리 모내기를 하였는지 소다발를 밭아그런지 모가 청청하고 푸르다
그리고 이곳 논에 모내기 광경을 보면서 특이하게 모내기 한논의 바닥이 평탄하고 고르기만 하다 아마도 트랙도 논정지작업이 우리아우님과 나보다는 월등하게 련된 기술을 보유 하신분들이 논 로터리 작업을 한것 같다 그리고 수로에는 섬인데도 물이 풍부하여 물사정이 좋은것 같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교동도는 농가당 기본 1만평은 기본으로 하고 많게는 2만에서 5만평을 주로 많이 한다고 하니 강화도 보다는 농사지음에 있어서는 섬이지만 부유하게 농사르 짓는곳이기도 하다 가는 도중 여성 분들이 들께를 이식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이처럼 교동도 농민들은 부지런하고 강하다다고 한다
6.25전쟁으로 연백에서 피난 오셔서 다시들어갈줄 아시다 그대로 교동에 정착하여 살고 계시는 분이 많이 계신다
그래서 형성된것이 대룡시장이다 대룡시장은 최근 인천에서도 가볼만한곳으로 소개돼 주말이면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번 우리가 찿아간 6/6일에도 시장에는 어디서 모려왔는지 골목길안에 뻬꼭하게 사람으로 붐빈다
마스크만 섯지 코로나 19는 없는 듯한 그런 분위기었다 우리는 전정필 목사님이 주일예배를 마친후 마추어 이곳에 오게되어 맨처음으로 대룡시장을 찿았다떡방아간에서 줄을서서 가래떡을 사고 다시 다른골목으로가 이북에서 와서 장사를 하시는 94세 할아버지 가게에서 개떡다샀다
이어 들판을 지나 난정 저수지를 찿았다 난정저수지 전망대에 올라 이북산아와를 사펴보니 안개로 희미하게 보였지만
난정저수지는 정말 큰 규모의 저수지인듯 강화에서 제일큰것 같다 그리고 물도 가득하여 보는것 만으로도 마음이 탁트인다
이이 우리는 다시 망매단으로 가 이북산야를 살펴보고 망매단 차랑 까페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까페사장님이 이곳 교동출신 가수이어서 노래를 신청하니 기꺼이 불러 주신다 비록 작은 차량 까페이지만 이곳에서 기타로 임진강 이라는 노래를 음료를 들며 드는데 나도 모르게 임진강 노래에 흠취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우리는 관광일정을 마치고 철책선이 있는 곳을 따라 인사리로 돌아왔다 오늘 전정일 아우님과 전정필 목사 아우님이 이런 여행을 시켜주어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다음에 만나기로하고 우린 다시 강화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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