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강화읍 강화 성공회 관람180303

한마음주인공 2018. 3. 5. 13:16

강화읍  강화 성공회 관람180303

오늘은 우리 앞 마을인 큰별 밭 신유진 아우님 장녀 피로연이 강화읍 명진 부패에서 12시부터 시작하여 참석해 축하해 주고 시간이있어 강화읍 예전 심도직물공장 옆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성공회관람하고 싶어 강화읍 용흥궁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주변을 살펴 보기로 했다

 

 

                강화성공회로 가던중 강화남문에 잠시들러.....

 

 

 

강화성공회 위치도

 

 

 

기온이 포근하고 온화한데다 하늘도 맑아 이곳을 찿는 나에게 행운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선 용흥궁을 찿아 용흥궁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용흥궁 주차장에서 본 남산

 

 

*용흥궁 주차장 위로 보이는 강화 성공회

 

이렇게 도심한복판에 기와집은 옛날 고건물양식이 당대 권력자들의 상징이자 그 시대의 이건물의 위치가 갖는 역사적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한다

 

*심도직물공장 굴뚝 상부분 기념으로 설치

 

 

*용흥궁 주차장에서 도로중심으로 좌측이 강화 성공회 우측이 용흥궁

 

 

                 *70년도 당시 심도직물공장 종업원 1,200여명이 었다니 정말 큰 공장이었다

 

 

              *가까이서 본 굴뚝 구조물 

 

 

*김상용 선생님의 순절비

 

 

김상용 선생님의 순절비를 정확히 알고져 인테넷 배과사전에 살펴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상용선생님 순절비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김상용  선생의 충의를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비이다.

선원 김상용(1561∼1637) 선생은 선조 23년(1590) 문과에 급제하여 판동녕부사, 병조·예조·이조의 판서, 유도대장,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를 모시고 빈궁과 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른 후 순절하였다. 이러한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으며, 선원면에 자리한 충렬사에 그의 위패를 모시었다.

 

 

 

 

 

*용흥궁으로 가는 길에

 

비각 안에는 2기의 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하나는 정조 때 공의 7대손인 김매순이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숙종 26년(1700) 선생의 종증손 김창집이 건립한 것으로, 1976년 지금의 자리로 비각을 옮기던 중 발견되었다. 

 

 

 

 

 

 

용흥궁 도측면 우물터자리를 통과해 위쪽 계단으로 올라가니 강화 성공회건물이 출입문 기와가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용흥궁을 내려 보니 역시 기와건물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용흥궁은 규모는 작지만 당대 건축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다 이러한 건축물이 바로 강화성공회 앞에 위치하고 있다 용흥궁을 관람하고 나와 바로 뒤 강화성공 회 건물로 걸어가니 자세한 안내문이 있다

 

 

 

 

 

 

강화성공회 건물은 천주교이면서 건축양식은 한국사찰건물과 유사하다 이러한 것은 당대 성공회가 강화에 들어와 천주교전파를 위한 토착민이 천주교에 쉽게 적응하드록 지역주민을 배려한건축 양식이라 한다

 

 

 

 

 

 

 

 

그리고 성공회 출입문을 지나 우측으로 큰 고목인 보리수나무가있다 그리고 좌측에는 커다란 종도 걸려있다 그리고 성공회 정면출입구에는 사찰의 집 정면에서 볼 수 있는 한자로있 표기는 목판글씨가 달려있다

 

 

 

*강화성공회 천주성전

 

 

 

 

                 강화성공회 외삼문에서 본 남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용흥궁에서 본 강화성공회

 

 

 

 

 

 

 

이렇게 강화성공회 건물은 아주 특이한 양식의건물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공회 내부로 들어가 가니 소나무기둥에 천정은 목재로구성하여 있고 천정 1m 정도 하부에 유리를 설치하여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자연채광에 아주 밝아 있다

 

 

 

*강화성공회 뜰안의 보리수나무 안내판

 

 

*성당내부

 

 

 

 

 

 

 

그리고 이곳에 사용된 소나무는 멀리 백두산에서 베어 뗏목으로운반하여 이곳 건축신축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비치된 팝프렛에서 설며하고 있다

 

 

 

 

 

 

*성당의 역사 사진를 비치해 놓고 있다

 

 

 

 

성공회 내부에 비치된 당시모습과 생활풍습 사진들이 걸려있다사진을 살펴보고 우리 강화에 이런 천주교 건축양식이 당시우리주변의 사찰양식과 흡사하게 신축된 것이 흥미롭다

 

 

 

 

 

 

 

 

 

 

 

성공회 안에서 나와 밖으로 나와 성공회 외부벽 재료인 붉은 벽돌그리고 출입문등에서 예전 당시 모습을 살펴 보게 된다 그리고 이곳 강화성공회 위치가 강화읍의 명당 자리 임을 알게 한다

 

 

 

 

 

 

*붉은 벽돌과 아치형 문이 이채롭다

 

 

 

 

*강화성공회에서 바라본 강화초등하교 우측

 

 

 

 

 

 

 

우뚝 솟은 대지에 성공회가 위치하고 있어 읍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곳이자 톡특한 건축 양식이 강화성공회 이다 그리고 아주 소박하게 지어진 것이 자주 이곳을 찿게 하는 매력이다

 

 

 

 

 

 

*강화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강화의 문학 용약 안내문

 

성공회 북쪽 좌측에 난 문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니 강화 삼일절독립기념비가 나온다 강화에서도 독립 만새 운동이 활발 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북쪽에 위치한 강화 문학관을 찿았다 1층에는 강화역사와함께한 강화 관려 인물들이 나오는데 역사 강화 문화지식인들이많고 대단하다 그리고 2층에는 강화문인 수필가 조경희 전시관이 있다

 

 

 

 

 

 

 

 

강화문확관에 대하여 자세한 위치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에서 검색 하여 보니 강화문학관 위치는 용흥궁 주차장과 접하여 있다

강화문학관(조경희 수필관) 위치도

 

 

 

 

 

 

 

이만큼 강화도는 역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유적,문학 관련인물 강화의 지역적위치 특성등 잠시나마 고려와조선의 수도가 되었던 것 처럼 정말 우리나라 축소판이나 다름 없다

 

 

 

 

 

 

 

 

 

 

 

 

대표적인 이색 이규보등 많은 인물 걸려있고 내가 알던 그 이상의 문인들이 수두룩 하다 이만큼 강화는 문학인이 참 많고 다양하다 그래서 강화는 서울과 가깝다는 지역적 특성과 섬으로 이루어져 예전 교통수단인 배가 강화만과 임진강 한강으로 이어진 첫관문이자 이를 통제하던 곳이기도 하다

 

*강화문학관2층 조경희 수필돤

 

 

 

 

 

 

 

 

 

다시한번 우리강화의 역사성에 놀랍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런 고장에서 태워나 초중교를 마치고 사회로 성장하여 나간다는 사실이이제 와서 보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소리  (0) 2018.03.08
수도관 동파수리180303  (0) 2018.03.06
해풍김씨 제38차 정기총회  (0) 2018.03.01
우리 해풍김씨 풍덕 산귀파 강화후손 세손표  (0) 2018.03.01
양초36회 척사대회 180224  (0) 2018.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