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을 가다 20171222

한마음주인공 2018. 1. 9. 14:02

세종대왕릉과 현종릉을 가다20171222

 

오늘은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을 직접 가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세종대왕 역사 문화관에서....

 

 

 

 

세종대왕릉 위치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327

 

 

효종릉 위치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산 83-1

 

 

 

2분의 왕릉은 모두 여주시 능서면 에 위치하고 있는대

모두 영릉이라고 부른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입구

 

 

 

                * 모니터 만화형식으로 역사리해를.........

 

 

 

세종대왕은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우선 우수한 창제글인 우리 한글을 만들시고 그리고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측우기를 만드신 대왕이다

 

 

 

 

 

 

                 *세종대왕 영정

 

여주시내에 들어서니 세종대왕동상이 서울 광화문과 비슷한 크기로 도로의 중앙에

위치한곳을 지나 티맵으로 치고 찿아가니 세종대왕기념관이 나와서 그안을 들러

보게 되었다

 

 

 

 

 

 

*편종이라는 악기

 

 

               *편종이라는 악기를 개발하게된 이유에 대하여....................

 

 

이곳에서는 실제 인물과 비슷한 입체만화형으로 전체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여 주고 편종이라는 악기도 전시하고 있다

 

 

 

 

 

*해시계

 

 

 

 

어린백성이 배우고져 하여도 중국말과 글이 어려워 한글을 창제하여 널리 고루 어린 백성이

읽고 배우게 하다 라는한글창제이유와 편종이라는 중국 악기가 우리에겐 불편하고 음도

고루지 못한점을 알고 이를 새롭게 개량한 편종악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집현전 회의

 

 

*효종릉 입구로 가는길

 

 

*효종릉 가는 중간지점에 제 관리인및 제관련 물품 창고인 효종재실

 

 

                   *영릉 재실 평면도

 

 

세종대왕기념관을 나와 세종릉인 영릉을 가려고 안내원에게 문의하니 지금은 영릉주변

공사로 인하여 다시 저밑으로 나가  현종릉으로 가라고 한다

 

 

 

*효종재실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재실관리들의 거처인 안채

 

 

*대문입구에 선 키가큰 회향나무

 

 

 

차를 몰아 효종릉 입구를 들어오니 이곳에서 현종릉과 세종릉이 연결됨을 알게 되었다

 

 

*재실과 고목

 

 

                *재실 향나무

 

2개 릉간의 거리는 대략 1.5KM 정도 떨어져 있어 산책겸 걷는길이 숲과 어울려져 잘

정비되어 있다

 

 

              *느티나무가 재실의 역사를 알려 주눈듯............

 

*재실을 나와 효종르으로 가면서 다시 본 재실의 고전미

 

 

 

우선 입구에 있는 효종릉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현종릉과 그왕후 인헌왕비 릉이 앞과

뒤에 한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효종릉 입구

 

*멀리 효종릉이 보인다

 

 

*잘정비된 효종릉

 

*수복방

 

 

 

*소헌황후 묘

 

 

*효종왕릉 묘 가 제단 문으로 들어온다

 

특이한 것은 조선시대 묘 주변의 석조물들이 웅장하고 크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무덤은

원래 동구릉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 묘을 관람 하기 위해 묘가는 길이 있다

 

*묘로 오라가던 중 소나무에 혹이 ............

 

 

 

 

*석조물 입상이 대단하다

 

 

 

 

 

 

 

 

*효종릉

 

 

*세종대왕릉 보다 200년 지난후 효종릉 석조물은 대단히 크고 우람했다

 

 

 효종릉에서 본 소헌왕후 릉

 

 

*양과 무신석 그리고 문신석이 참 크기도 하다

 

 

 

 

효종 왕릉의 봉분이 어마어마 하다 그리고 묘와 직접 맞닿는 부분에 묘를 대리석으로

안아주고 그밖에 양의 석조물이 밖을 향해 설치해 놓았다 효종왕릉이 위쪽으로 그래

왕비인 소헌왕후묘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크게 설치된 석조물을 이곳에서 처음 보게된다 그리고 이곳 효종왕릉의 주변과

당시 상황을 온전히 보존하여 관리되고 있는점이 인상적이다

 

 

 

 

 

 

 

 

제을 준비하는 제실과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던 곳 그리고 각종 제에 사용하는 제기등과

제사상그박의 여러 물품들 보관장소가 그시절 그 자리에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다

 

*효종릉을 돌아 보고 내려 오는중에........... 

 

 

 

 

 

 

 

 

 

 

 

               *효종릉에서 세종대왕릉으로 이어지는 왕의 숲길

 

효종릉을 관람하고 다시 세종대왕릉을 관람하기 위해 약 1.5KM의 숲소길을 걸어

세종대왕릉에 도착 하였는데 이곳 세종대왕릉의 석조물은 현종릉에 비하여 규모가

작고 초라했다 세종대왕릉은 왕과 왕비의 합장릉으로 되어있다

 

 

*눈덮인 왕의 숲길

 

 

 

 

 

 

 

 

이것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시대가 변천하며 석조물도 초기에는 작은 것 이었으나

조선 후기로 오면서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한다

 

 

 

 

 

 

 

원래 왕의 릉은 서울중심지에서 10KM박으로 나가서 릉을 설치 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 위치에서 세종릉도 이곳여주까지 와서 설치 되었다고 한다

 

 

*우측에 살짝 보이는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으로 오르는 계단 이떼 시각이 4시30분경

 

 

 

 

세종대왕릉앞의 무관,문관 그리고 릉 주변의 석조구조물인 양과 동물상도 효종릉에

비하여 아주 작게 설치되어 있었다

 

 

*세종대왕릉 효종릉에 비하여 대조적이다

 

 

*세종릉앞에서 인증샷

 

 

사실 효종릉 조성시기는 1674년이고 세종대왕의 조성시기는1446년으로 약 205년전에

세종릉이 앞서 설치된 것으로 릉 주변의 석조물의 크기는 많은 차이가 남을 알수 이었다

 

 

 

 

 

 

*세종대왕릉

 

 

 

 

그리고 현재 문화재 복원을 설치 당시 모습으로 환원하고자 대대적인 문화제 복원공사가

세종릉앞에서 실시되고 있었다

 

 

 

 

세종릉에서 이곳 문화재복구하는 사람의 세종에 대하여 역사예기를 듣고 이곳 자리가

풍수의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세종대왕릉에 대하여 궁금한점이 있어 인터넷 배과사전에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세종대왕릉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이와같이 세종대왕릉은 원래 서초구 내곡동 에 소재하고 있었던 것을 1469년 (예종1년)에

이곳 여주로 옮겨와 세로 조성되었음을 알게 한다

 

 

 

 

 

또한 효종왕릉에 대하여서도 좀더 자세히 알고싶어 인터넷 배과사전을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현종왕릉

사적 제195호. 능호는 1674년(효종 15)에 정하였다. 영릉은 현 동구릉(東九陵)자리에

병풍석(屛風石)을 갖춘 왕릉을 조영하였는데 1673년 석물에 틈이 나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로 옮겼다.

 

 

 

다음해 왕비 인선왕후의 능이 동원(同原)에 택정(擇定)되어 왕릉 앞에 비릉(妃陵)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쌍분(雙墳)을 이루게 하였다.

 

 

 

왕릉에만 곡장(曲牆: 굽은 담장)이 있고, 앞에 있는 왕비릉과 쌍분임을 나타내는 외에

비릉도 마찬가지로 석물을 갖추고 있다. 이 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令, 종5품)

1인과 참봉(종9품) 1인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2분릉이 특이하게도 영릉으로 부르는 영릉로에서 세종대왕의릉은 영(英)

꽃부리영자이고 현종릉(寧)의 괄호안의 영자로 우리가 읽을 때는 모두 영자로

읽으며 여주 영릉을 대표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하(-10도이상) 추의는 언제나 풀릴까  (0) 2018.01.31
박건호 세미나참석  (0) 2018.01.15
명성황후를 만나다  (0) 2018.01.03
새해일출을 마니산에서20180101  (0) 2018.01.02
2018년새해인사  (0) 201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