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 회양(南嶽懷讓)에게서 법을 받아 선풍을 크게
드날린 마조도일(馬祖道一)스님의 속가 친척인 장
설(張雪)이라는 매우 영특한 아가씨가 있었다. 장설
아가씨는 평소에도 오직 일념으로 화두를 들어,밥을
지으면서도 빨래를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면서도 오
르지 화두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설아
가씨는 석양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빨래
를 하면서 일념으로 화두를 의심하다가 마침 뒷산
절간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범종소리를 듣고 문득
심지(心地)가 활짝 열리고 마음이 환히 밝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기쁨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다만 평소에 하든 행동과는 달리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한없이 자유로운 경지에 거침이 없었다. 그녀
는 평소에 불경책을 가슴에 고히 간직하고 다니며
탐독하곤 했었는데, 그후로는 밥을 하면서 불경책을
깔고 앉기도 하고 함부로 내던지기도 하자 이를 지켜
본 부모님들이 딸아이가 실성을 하지는 않았나하고
사뭇 걱정을 하다가 하루는 그녀의 아버지가 불러서
"애야, 너 요즘 행동이 좀 이상해 졌구나 그토록 소중
한 불경책을 함부로 취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버님 경전이 어째서 그리도 소중하옵니까"
"그게 부슨 소리냐, 불법이 담긴 소중한 경전인데"
"불법이 어디 종이의 문자속에 있답니까,"
"그럼, 경전속에 불법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단말이냐"
"잘 모르시면 마조스님께 가셔서 여쭈어 보시어요"
다음날 그녀의 부친은 마조스님을 찾아가 딸애의
거침없이 행동하는 일거일동을 소상히 일러주니,
"하하하...어찌되긴, 한 소식 한 훌륭한 딸애를 못
알아 보는 아비가 오히려 이상하이, 염려말고 내가
써주는 이 싯구를 딸애의 방앞에다 붙여 놓아보게"
싯귀는 이러했다.
밤 삼경, 나무닭 우는 소릴 들으니
내 마음 내 고향이 분명하구나.
내 집의 앞마당에 돌아와 보니
버들잎은 푸르고 꽃은 붉어라.
그녀는 이 싯귀를 읽고는 맨 마지막 귀절의 버들
잎은 푸르고 꽃은 붉어라. 에서 깊은 의심에 잠겨
그로부터 7일간이나 자리에도 눕지않고 선삼매
중(禪三昧中)에 드디어 문득 의심을 타파하고 곧
장 마조스님께로 가서 삼배를 올리니, 마침 그때
마조스님의 제자 호암(湖岩)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대를 점검하여 볼 것인즉 어디 한마
디로 일러 보겠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응했다.
"경에 이르기를 수미산 속에 겨자씨가 들기는 쉬
우나 겨자씨속에 수미산이 들기는 매우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 무슨 도리인고,"
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 놓인 찻
잔을 들어 마루 앞 주춧돌에 집어 던지니, 찻잔이
"쨍그렁" 산산 조각 나버리자 이 광경을 물끄럼히
바라보던 마조스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하기를
"옳그니, 호암이 당했음이네, 이번에는 내가 물을
것인즉, 어디 일러 보게나. 너는 불법에 인연이
깊으니, 이 인연(因緣)의 도리를 어디 일구로 일
러보겠느냐"
"네, 뭐라고 하셨나요, 다시 일러주시어요."
"인연을 한마디로 일러보라 하였느니라."
"죄송하옵니다. 다시 한번만 일러주시어요"
"인연(因緣)을 한마디로 일러보라 하였느니라"
이에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 합장 배례하고는 말했다.
"큰 스님 수고 하셨와요, 감사 드립니다."
하고는 일어나 가버리자, 이에 마조 스님이 자
기 무릎을 탁 치면서 말하기를,
"아뿔사, 나도 너한테 당하고 말았구나"
* * *
선(禪)은 지적인 이해와 관념적인 것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감정과 의지가 융합되고 행동과
사상이 일치되어 즉각 현재를 꽉 붇잡고 당장을 깨
치는 것이다. 또한 무량무변(無量無邊)하고 무소부
재(無所不在)하여 작은 겨자씨속에도 삼라만상 일
체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우주 천지에 없는 곳이
없으며 어디에도 다 생생히 살아 있으나, 고정된 형
식이나 해답은 없는 것이다.
이런 소리도 다 귀신굴로 드는 엄요삼촌설이로다.
푸른 첩첩산 맑은 바람은 날마다 새롭고
만고의 고목은 절벽에 서서 노래하는데
옳고 그름 시비가 다 거짓으로 이뤄지고
기이한 말 묘한 글귀도 모두 티끌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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