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산에 있는 수덕사를 방문 하게 되었다 일단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 오르니 오른쪽에
수덕사 방물관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가 수덕사 관련 보물과 역사유물들을 들러 보았다
그리고 마침 박물관 안에서는 불화 채험 색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실 유리창 넘어로 색채작업 하는 것을
잠시 보고 돌아 나왔다
이어 수덕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양쪽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단풍나무들이 가을 단풍을 아름답게 뽐내고
마지막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잘 대변해주어 이곳 수덕사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들어가는 정원 여기에는 아직 겨울이 아닌 듯 조경식물들이 너무나 푸르고 싱싱하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길양옆 단풍들이 초경울로 가는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예쁜 고은 색들이 다시 한번 초겨울 속의
단풍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내고 있다 그리고 들어가는 양쪽 변의 소나무 잎이 누런 잎으로 떨어져 초겨울로 들어서는
겨울추위를 대변하고 있다
이어서 연결되는 대웅전 앞 넓은 마당에는 큰 종각과 운경대등이 사찰 규모에 맞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멀리 저 아래 풍경들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풍경이 고풍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대웅보전의 색 바랜 외부 도장색이 한층 더 역사 속의 수덕사의 대표적 건물로 보이는 듯하다
다시 대웅보존이 있는 건물 가까이 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참배를 한 후 돌아 나와 주변의 약사전 삼성각 등을 두루 관람한 후 다시 오라온 반대길로 내려가며 수덕사의 역사와 수덕사의 관련 고승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수덕사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수덕사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수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이나 그 이후 역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말 숭제법사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중수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백제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가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말에 경허가 선풍을 일으킨 뒤 1898년(고종 35) 그의 제자인 만공(滿空)의 중창으로 번성하여 현재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이나 그 이후 역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말 숭제법사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중수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백제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가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말에 경허가 선풍을 일으킨 뒤 1898년(고종 35) 그의 제자인 만공의 중창으로 번성하여 현재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1962.12.20 지정). 앞면 3칸, 옆면 4칸에 겹처마와 맞배지붕을 지닌 주심포계 건물이다. 배흘림이 현저한 기둥은 낮고 기둥 사이는 넓어서 안정감을 주며, 헛첨차를 써서 공포가 주두 아래에서 시작되는 백제계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백제미술). 마루보와 대들보의 낙차를 크게 두고 우미량을 겹으로 걸어 지붕에서부터 계속된 우미량의 율동미가 소슬 합장의 곡선, 이중량의 곡면과 함께 백제계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1937년부터 4년간에 걸친 해체·수리 작업 중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308년(충렬왕 34)에 세워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지역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건축연대가 뚜렷하며 이 시기 목조건물 양식편년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수덕사벽화
1937년부터 4년간 대웅전을 해체·수리하던 중 발견되었다. 당시 단청과 벽화의 모사를 맡아 이 공사에 참여했던 임천(林泉 : 1908~65)이 모사 중에 1528년(중종 23) 단청을 개채 했다는 기명을 발견하고, 모사하던 벽 내면에 있던 밑그림이 원래의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벽화가 그려졌던 벽체를 분리하던 중에 "至大元年戊甲四月十七日立柱"라는 묵서명을 발견함으로써 대웅전과 벽화의 제작연대가 1308년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되었던 벽화는 6·25 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임천의 모사도 일부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벽화는 건물 결구 사이의 작은 공간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40점이며, 주로 소불삼체, 주악비천, 나한도, 청·백 극락조, 수생화, 야생화 등을 그린 장엄용 벽화들이다.
모사도만으로 당시의 양식을 정확히 판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고려시대의 벽화가 드문 상황에서 이 작품은 고려 말기 사원벽화의 대체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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