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조계종의 사찰이다. 미황사 뒤에는 달마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병풍처럼 감싸 안아 있고 달마산과 더불어 매우 수려하고 아름다운 사찰이다 약 1300년 전에 사찰이 시작되었다 하니 참 역사가 깊은
한국의 고찰이다
해남군에는 조계종 계열의 큰 사찰인 대흥사가 있고 땅끝으로 더 내려와 달마산자락에 미황사가 있어 이곳 해남이 불교와인연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미황사는 중국을 거치지 아니하고 인도에서 금인이 직접 불교를 전수한 곳이라니 아마도먼 예전에는 이렇게 불교를 남다르게 정착한곳이 미황사가 아닌가 한다
대한 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그 뒤 수백 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현종 1)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947), 응진당(보물 1183)과 명부전, 달마전, 칠성각, 만하다, 세심당 등이 있다.
지금 국보인 대웅보전이 찿아갈때에는 문화재 복원공사를 하고 있어서 내부를 볼 수 없었으니 그 주변에 딸리 ㄴ사찰건물들이 고풍스러운 달마산을 안고서 참 자연과 잘 어울리는 사찰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주변의 사찰을 건립할 때 쌓아놓은 축대들이 예전 것을 다시 보는 듯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우선 주차장에서 오면 만나는 것이 사천왕상전이 있고 다른 사찰의 사찰왕상은 무서운 얼굴이었으니나 이곳 사찰왕상은 나무받침과 사찰왕상이 현대미에 맞추어 조화롭고 아름답게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천왕상전을 통과하는 문 사이에 운장대가 놓여 있어 통과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운장대를 돌리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사천완상 전을 통과하여 전체 큰 단을 지나 오르면 넓은 광장에 좌측에 요사체가 들어서 있고 그 주변이 자연적으로 잘 조화가 이루어져 있어 한결 마음이 넓어지며 편안한 사찰느낌을 만끽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위로 한단을 오르니 대웅보전이 나타나고 그 앞이 임시로 대웅보전의 역할을 하는 작은 법당이 있었다
좌측에는 종무소가 있고 그 바로 앞에 미황사에서 시작하는 달마고도 1구간의 스탬프 안내 판이 있었다 종무소옆으로 좌로 돌아 오르니 다른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우물인듯한 커다란 돌로 만든 음수대가 있었는데 그 요사체 옆에
나를 반겨주는 홍매화가 활짝 피어 미황사방문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 대웅보전은 커다란 강구조물로 대웅보전을 감싸고 문화재복원 중에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사찰에 웬 공장건물 구조물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문화재복원을 위한 건물임을 알고 이곳 대웅보전의 천년의 건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해 보게 된다 역시 대웅보존은 미향사의 대표적 역사적인 보물급 문화재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미향사에는 대웅보존 외에 주변의 도로를 복구하고 있어 다소 산행길로 이어지는 부분이 다소 불편함이 있었어도 이런 천년고찰을 해남 미향사에 서 만난다는 마음에 개의치 않게 한다 그리고 미향사로부터 약 0.5km 떨어진 곳에
미향사부도전이 있는데 여기에도 예전에 사용되었던 돌음수대 2개가 지금도 축대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마음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나도 몰래 나무(모시다) 아미타불을 사찰경내를 돌면서 소리 내어 읽게 된다
미향사는 민간이 이 사는 곳으로부터 조금 올라와 달마산 중턱에 사찰터가 자리하고 있어 미향사 뒤로는 달마산이 아름답게 자리하고미황사를 에워싸고 미향사 풍기는 고찰의 향기를 맡으며 미황사를 둘러보게 되었다
해남 미황사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좀 더 많은 것을 더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미향사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 서쪽에, 우리나라 육지의 사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졌다. 불교가 한창 흥할 때는 불교의 요람이 되어 스님도 많았고 주위에 12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미황사는 조선시대 중. 후기에 걸쳐 이 같은 융성을 거듭하다 100년 전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중창을 위해 모금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가다 배가 조난을 당한 뒤에 점차 퇴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락한 지 100년이 흐른 후, 현재 미황사에 주석하고 있는 지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 1989년에 주인 없이 비어 있던 미황사를 찾아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삼성각, 만하다, 달마전,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퇴락한 세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10여 년 간 중창불사 원력을 세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대웅보전 (보물), 응진당 (보물)과 명부전, 삼성각, 만하다(선원), 달마전(승방), 세심당(수련원), 요사체(후원), 향적전(객실), 안심료(후원), 자하루(누각), 하심당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다.
서해바다로 지는 화려한 낙조와 수려한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미황사는 방문객들에게 늘 즐거운 풍경을 제공해 준다. 우선 뒤편의 산자락과 잘 어울리는 위치에 알맞은 규모로 자리 잡은 절터와 대웅보전의 앉음새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특히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거북, 게 등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으며, 가뭄이 들 때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내리게 한다. 괘불(보물)과 대웅보전이나 응진전 안 벽과 천장에 그려진 18세기의 벽화들, 응진전과 명부전 안에 모셔진 보살, 나한, 동자, 신장상 등 조각을 살피는 재미가 사뭇 크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긴 돌확이 있어 항시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그 앞을 가로질러 오른쪽 숲 속으로 난 길을 들어서서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부도 밭에 닿는다. 부도마다 거북, 게, 새, 연꽃, 도깨비 얼굴 등이 새겨져 있어 한적한 산속에서 뜻밖에 꾸밈없는 표정들을 만날 수 있다. 절에서 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기암괴석이 들쭉날쭉 장식하고 있어 거대한 수석을 세워 놓은 듯 수려하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보는 다도해와 서해의 낙조는 매우 아름다우며, 절 바로 아래에는 동백나무 동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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