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마곡사를 방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조건 아내와 함께 티맵에 의존한 체 마곡사가 있는 곳을
서해안 고속도로로 하여 내 달렸다 아침 9시에 출발하였는데 수원 고속도로에서 차선이 바뀌어 평택에 이르니 도로공사 중으로 차가 많이도 밀리기 시작한다
평택에서 조금 벗어나 공주로 가는 인터 체인지에서 부터는 조금 여유가 있다 그리고 공주에 들어서자마자 산비탈에는 밤나무 꽃이 하얗게 보이며 밤나무 등이 참 너무 많다 이곳에는 공주밤으로 밤 재배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나 밤나무가
많이 재배하여 밤 농사를 짓는 줄 상상을 못했다
그리고 도로변의 밭에는 콩심는 시기여서인지 밭을 로터리 치고 콩 파종이 한창하고 잇다 농사꾼인 나도 얼마 전 서리태 콩을 파종했는데 이곳 공주 마곡사로 들어가는 도로 양 옆에는 밭에는 콩 산에는 밤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간혹 고추농사하는 곳도 보이는 데 우리 강화도처럼 고추농사밭은 잘 안 보인다
집을 떠난지 2시간 반에 마곡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이때 시간이 11시 반이다 입구 주차장을 지나 좀 더 마곡사로 올라가니 사찰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비는 4천 원이라고 표지 말에 되어 있어 마곡사 주차장에 차를 대여하고 바로 아래 마곡사 입구로 걸어가는데 이곳 주변에 웬 암자가 이리도 많은지 간판에 있는 것만으로도 꼭 11개가 표시되어 있다
마곡사는 천년 고찰이다 그리고 산속 깊이 있어 마곡사가 3년 전 유네스코 등록 되이전에는 별로 찾는 이가 없어던 곳인지
지금은 등록이후 마곡사를 찾는 이가 참 많다고 한다 내가 간 날은 평일 인 목요일 6/20이었는데도 마곡사 경내에는 많은 이들이 와서 관람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국인들도 여럿 보인다
일단 입구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서 천왕문이 보물로 지정 되었다는 안내 문구 표지가 있다 그리고 이곳 마곡사에서 6/29일 산사음악회가 있다고 깃발에 표시하며 안내하고 마곡사 대웅전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마곡사 게곡 물이 너무 아름답고 산사와 어울려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이곳 마곡사 5층 석탐을 관람하고 있는데 서울 어는 불자회에서 성지순례를 왔다고 25명이 마곡사 문화 해설인을
따라 안내 하기에 나와 아내도 동참해 문화 해설을 들으며 불교 상식을 배우게 된다 석탑에 부처님 진심 시리를
넣으면 불탑이라 부르고 경전을 놓으면 경담 그냥 돌로만 된 탑을 석탑이라고 한다
마곡사 5층 석탑 바로 뒤에는 대광불전이 있었는데 대광불전은 비로자나 부천밈을 모셔둔 자리라 하여 대광불전이라 하고 이곳 마곡사 대광불전이 비로자나불은 보통 북에서 남으로 배치하는데 이곳은 서에서 동쪽을 응시하고 비로 자나불을 배치하셨다 하고 이런 곳 이 전국 3개 정도가 존재한다고 한다
대광불전 뒤에는 2층 규모로 된 대웅보전이 이었는데 이곳 에는 중심에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측에 아미타블과 우측에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대웅보존 석가모니불을 모셔진곳에 닷집이 없어 해설사에게 문의하니 그 이유는 모른다 하신다 이곳 대웅보전에 닷집이 없는 곳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돌아 나와 이곳이 백법 김구 선생님의 도피처 이자 이곳 마곡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셨다 하니 마곡사와 백범김구선생 그리고 백범기념 역사가 곳곳에 산재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님 수행처 앞에 삼지전나무가 있어
이곳 삼지 전나무도 무릇 다른 곳의 나무와 달리 마곡사와 함께 도를 닦는 나무가 아니가 한다
마곡사에는 템플스테이가 실행하는 곳으로 이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국인들도 많이 출가수행 체험을 한다고 하니
마곡사는 이미 수천 년부터 고용히 마음 정진하는 명당터가 마곡사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도 된다 내가 마고사를 50년 전에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1, 2학년에 여름휴가차 들렀던 곳인데 지금은 예전 기억이 하나도 없고 다만 마곡사 입구 계곡 들아가는 길만 어름풋이 생겨난다
해설사와 동행 해설을 듣고 나서 잠시 마곡사마당 개울과 접하는 벤치에 않아 쉬고 잇는 데 개울가에 큰 자라가 한 마리 우리가 왔다고 얼굴을 내민다 이곳 개울가에 자라가 산다는 것은 이곳 생태계가 어떤지를 알려 주는 것 같다 그 외 승보 박물관이 있는데 가보지 않고 이내 돌아 나와 마곡사 입구 근처 태화식당에서 점심을 한채정식을 시켰는데 21가지 산나물 반찬과 밥이 얼마나 맛있고 좋았는지 다시금 다음에도 가보고 싶어진다
이 글을 쓰면서 마곡사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마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그 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 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 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 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 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문화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 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 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 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마곡사 5층석탑(고려 후기), 보물 제799호, 높이 876cm,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1782년 대광보전 화재 때 많이 파괴되었으나 현재 화강암으로 보수되어 있으며 1972년 탑을 해체·보수할 때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특이한 상륜이 놓여 있는 구조로 일반적인 석탑형식을 따르고 있다. 상층기단에는 양쪽 모서리에 우주가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안쪽으로 둥근 형태의 기둥이 1개씩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석은 높고 폭이 넓은 편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며 상층기단의 갑석 위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높은 2단 굄이 있다. 탑신의 옥개석과 옥신석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옥신석은 각 층마다 양쪽으로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그 사이로 1층 탑신의 남면에는 문비와 자물통이 조각되어 있고, 2층의 각 면에는 불좌상 1구씩을 새겨 사방불 형식을 취했다.
2단 받침의 옥개석은 전체적으로 곡선을 이루며 처마 끝부분의 반전이 심해 장식화 경향을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노반 위에 풍마 동이라는 청동제로 된 부재가 놓여 있는데, 그 형태는 3층의 전각형 건축물 위에 원형의 복발과 보주가 놓여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상륜부의 형식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중국 원대의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원나라와 문화적으로 교섭이 빈번했던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적어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점과 옥개석의 심한 반전 등에서 고려 후기 석탑의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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