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청도 역과 청도 읍성 방문기 20231207

한마음주인공 2023. 12. 19. 15:26

청도역을 난생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청도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15분 경이다  이른 아침이고 이곳이 있는 곳이고 청도역이 있어 청도에서도 조금 인구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청도 역사 내에 작은 민속 박물관이 있고 그리고 이곳 청도가 새마을 운동의 발생지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청도역은 아주 예전 역건물이 아닌 한번 개량을가진 건축물로 보였다 그리고 역 앞 죄 측에는 청도역 인근 안내도가 크게 

있었고 이곳이 아주 소박하고 조용한 고장임을 알게한다 청도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조금 오르니  청도남덕바위 쉼터가

나와 살펴보니 아래 사진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청도역앞 도로에서   20231207
청도역 앞에서 보게된 복숭아농장 복숭아나무 관묵 자라는 모습   20231207

 

 

이어 조금 개울가 쪽으로 나오니 이곳에서 복숭아가나오는 고장이라고 하며 복숭아농장이 길옆에 있기에 들어가 보니

농장 복숭아 나무가 예전 우리가 보았던 나무가 아니 죄, 우로경사지게 하여 재배하는 복숭아나무 모양이 특이하다

역시 효율과 다기능의 용도로 이제 복숭아 농장 나무도 이렇게 기른다고 한다

 

청도역구내 민소박물관  20231207
청도역민속박물관
청도역민속박물관에서   20231207
청도역압 민속박물관  20231207

 

청도는 무엇보다 청도반시가 유멸한 곳이다 이곳에서 자란 청도반시는 씨앗이 없이 자연적으로 재배가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곳 지형의 땅속에는 감나무 씨가 자라지 아니은 그 무엇이 있는가 보다 그리고 청도역 주변에는 오래된 감나무 거 여기저기 보인다 

 

청도읍성 안내판   20231207
청도읍성 내부    20231207

 

 

이렇게 청도역 부근의 여러 가지 관광을 한 다음  다시 청도읍성으로 갔다 청도역에서 10KM 정도의 거리인 것 같다 이곳은 예전 청도의 관아 청사가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그 읍성이 부근 보구 되어 예전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도 문화재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만 부분 복구이어서 원형 데로의 복구가 아쉬웠다

 

청도읍성에서    20231207

 

 

읍성 안으로 자동차도로가 남북으로 지나며 자연이 성안 접근이 자동으로 연결되고 예전 마부 전이라는 말을 기르고 녹읍을 받았던 자리를 복원해 놓았고 그 옆에는 말의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는데 마치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 성주변을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찌고 청도읍성의 역사적 안내판을 보며 청도읍성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청도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을 찿ㅇ나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청도역 

청도역(Cheongdo station, 淸道驛)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에 있는 경부선 철도역이다.모든 정규 무궁화호 열차와 일부 ITX-새마을이 정차한다.임시 무궁화호 열차의 경우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청도역은 지금의 역사보다 100여 미터 북쪽 지점에 있었는데, 초라한 목조단층 건물로 이전의 남성현역의 규모보다 더 작은 것이었는데, 복선공사 때 현 위치에 이건 되었다가2008년에 개축하였다.

이 역에서 상동역에서 경상북도 경상남도 경계로 거리가 9.5km로 상당히 멀다

이용객은 동대구, 대전역 이남 구간과 같이 상당하나 역사가 낡고 협소해 열차시간에는 상당히 혼잡하다.

 

 

 

 

청도읍성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데 높이는 대략 1m 정도이고 길이는 10m 정도이다.

성곽의 축조 년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완공되었으나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동·서·북문이 소실(燒失)되는 등 크게 파손되었다고 한다.

그 뒤 소실된 문루(門樓)를 다시 새우고 성벽을 보수하여 조선조 말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어버려 지금과 같이 그 흔적마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이 성곽 안에는 동헌(東軒)·객사(客舍)·근민당(勤民堂)·군관청(軍官廳)·장관청(將官廳)·기고청(旗鼓廳)·군사(郡司)·인리청(人吏廳)·군기고(軍器庫)·대동고(大同庫)·고마청(雇馬廳)·사창(司倉)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서는 객사로 사용되던 도주관(道州館)과 동헌이 있다. 동헌은 화양초등학교(華陽初等學校) 동쪽에 있는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