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진강산(강화도)산행 20230217

한마음주인공 2023. 2. 21. 14:47

올 들어 처음으로 진강산을 산행하게 되었다 진강산은 강화도의 중간에 위치한 강화군 양도면에 위치하는 산으로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도장리·삼흥리·하일리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강화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조선시대 진강현의 진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 정상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진강산정상 443m
진강산에서 셀카  20230217

 

강도지와대동여지도에 진강산이 표기되어 있으며 산 정상부에 봉수가 확인된다. 신 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도 산 이름이 나오며, 강화부지에는 “강화부성 남쪽 삼십 리에 있는데 산등성이가 낙타 등과 같다. 그 아래로 촌락이 번성하여 옛 진강현이 있었다. 또한 산에 목마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자료에 “진강산 봉수는 동쪽으로 대포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망산에 응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상에서 본 하일리 앞 바다  20230217
장지포와 석모도 방향   20230217

 

이처럼 진강산은 원래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또한 진강산 벌대총으로 현재에도 정상 바로아래 남쪽 부분 바위에 말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벌대총 전설이 깃들어져 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1년에 2번씩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게 되는데 내 고향 산하가 환히 드러나 보이고 가능평야와 장지포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벌대총 말 발자국   20230217
건평포구와 저멀리 장지포 평야    20230217

 

 

진강산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59년 전에 학교 봄소풍으로 처음 올랐던 산이다 당시에는 산정상에 이르는 길이  잘 형성이 안되어 바로 서쪽 바 큰 바위아래까지지만 간 기억이 있고 당시 바위밑에 옹기종기 모여 보물찾기 게임과  어머님이 도시락 싸준 도시락을 먹은 기억이 난다 

 

 

이처럼 진강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참 진 물 수 메산 즉 맑은 물의 산이름이다 이러한 진강산을 내 고향 어머님 같은 산으로 각인되어 마음을 달래려거나 좋은 소식을 들으려면 꼭 이산에 가게 된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삼흥리 산문마을 삼흥리 존강마을 그리고 능내리 가릉에서 그리고 도장리에서도 능선 따라 쉽게 오르는 산이다 

 

 

능선에서 본 저멀리 화도 선수 포구   20230217

오늘은 가릉 옆을 지나 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랐다 30분이면 주능선자락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30분 오르면 주봉인 진강산 정상이다 그래서 고향 같은 산 어머님 같은 산 바로 그산이 진강산이다 정상에서 멀리 석모도와 그리고 마니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동쪽으로 길정저수지와 멀리 초지대교도 한눈에 들어온다

 

 

진강산에는  대구 팔공산에 갓바위와 비슷한 진강산 갓바위가 있다 대부분 갓 바위를 모르는데 갓바위도 참 신기한 

바위이며 이곳 바위도 벌대총과 깊은 전설이 관련하고 있다 또한 능내리 입구 가릉은 고려시대 왕릉인데 이곳 능내리 초입에 있고 진강산은 맑은 날 동서남북이 환히 잘 보이는 그런 강화 중심의  산이어서 주말이면 산행인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능선에서 양도면사무소 방향 20230217

이 글을 쓰면서 능내리 입구 강화 가능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 사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강화가릉

강화 가릉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중 하나이다. 강화 가릉 외에도 이 시기에 강화 석릉(碩陵), 강화 곤릉(坤陵), 강화 홍릉(洪陵) 등의 왕릉이 조성되어 현존하고 있다.

고려시대 강화에 가릉이 조성된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관리 소홀로 봉분이 붕괴되고 주변 석물들이 없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1992년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명은 가릉이었는데, 2011년 강화 가릉(7월 28일 고시)으로 변경되었다.

가능 능선길 중앙에서   20230217
진강선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소나무들  20230217

순경태후 김 씨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집권자 중 한 명인 최우(崔瑀)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원종이 태자가 되기 이전 입궐하여 경 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1236년(고종 23) 충렬왕(忠烈王)을 낳고, 1244년(고종 31) 훙서하였다. 원종이 왕위에 올라 1262년(원종 3)에 추봉(追封)하여 정순왕후(靜順王后)로 삼았고, 아들 충렬왕이 즉위하여 1274년(충렬왕 즉위년) 12월에 순경태후로 추존(追尊)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원(元) 무종(武宗)이 제서(制書)를 내려 고려 왕비로 추봉 하였다.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길에 안전지주대와 안전줄이 새로 설치되어있다   20230217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1270년(원종 11)에 환도하였기에, 순경태후의 능은 개경이 아닌 강화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화 가릉은 강화 진강산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에 위치한다.

강화 가릉은 개경의 왕릉과 비교할 때 형식상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규모가 작은 편이다. 능역은 가로 11m, 세로 14m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왕릉의 제도에 따라 묘역에 단이 구획되어 있는데, 강화 가릉의 경우 3단으로 이루어졌다. 봉분은 지름 7.6m, 높이 2.5m 규모다. 가로 2.55m, 세로 1.68m, 높이 1.78m 규모의 석실이 존재하는데, 석실 내에 부장대는 없고, 벽화의 흔적이 존재하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다.

봉분 북동쪽과 북서쪽 모서리에 석수(石獸)가 있으며, 석실 전면에 석인상이 석실을 중심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봉분 서편에는 하대석 및 옥개석, 동자주가 진열되어 당시 능역에 배치된 석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고려시대 왕실의 묘제에 대하여 직접 접할 수 있는 남한 내 문화유산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 가릉을 포함한 강화 소재 고려 왕릉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