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선원사를 가게 되었다 예전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해마다 매년 8월 초에 선원사 연꽃축제를 실시
하던 일이 생각난다 선원사 주지 스님이신 성원스님이 주관하여 강화 연꽃의 아름다음을 무한히 펼쳐지던 곳이
기에 남다른 감회가 깃듯곳 그곳이 바로 선원사이다
우리가 찿은 시간은 오후 3시 반이라 더위도 이제 한풀 꺾인 그런 시간대이기에 선원사 경내를 둘러보며 에전의
향기를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선원사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정월 초하루 제사를 지나고 아들과 딸 아버님이 함께
선원사 도감터를 찾은 일이 있는 사찰이다
지금은 연꽃 축제는 열리지 않지만 그래도 선원사가 훨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던 같다 선원사 뒤편엔 예전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을 을 판각한 터임임을 동국대 발굴팀이 밝힌바 있고 지금은 예전의 터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어 당시의 선원사의 규모가 광장했음을 알고 있다
지금 선원사 앞마당엔 음수대 감로수가 흐르고 지나는 이들이 들러 목을 축이고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곳이며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이곳 주변에서 판각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부처님의 자비 원력이 서려있는 그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찾은 시간대가 오후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앞으로 선원사가 더 큰 자비 원력으로 다시 새롭게 도약하는 선원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번 부처님의 온기와 자비심이 충만한 강화 제일의 강화 선원사가 도약하여 예전
창건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선원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선원사의 역사유래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에 들어가 찿아보니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선원사 禪源寺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었던 고려시대 무신 최우가 창건한 사찰. 사적259호강화도로 고려의 도읍을 옮긴 최우(崔瑀)가 대몽항쟁을 위한 국민총화의 일환으로 창건하였다. 초대주지로는 진명국사(眞明國師)가 위촉되었고, 2대 원오국사(圓悟國師), 3대 자오국사(慈悟國師), 4대 원명국사(圓明國師), 5대 굉연(宏演) 등 당대의 신망이 높은 고승들이 차례로 임명되었다.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당시 2대 사찰로 손꼽히던 사찰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왕실이 다시 개경으로 환도한 뒤 차츰 쇠퇴하여 조선 초기 이후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현재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의 재조사업(再彫事業)과 깊은 관계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98년(태조 7)에 이 절에 있던 대장경판(大藏經板)을 서울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 초기까지 대장경판은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절이 대장경판을 만든 곳이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대장도감(大藏都監)의 본사(本司)가 강화도에 있었고 승려들이 경판을 필사하고 조각하였다는 점 등을 통하여 경판을 보관하였던 이 절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선원사지는 그 입지적 조건이 대장경판 간행사업을 진행시키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다.


두 궁성이 아주 가까운 곳이었고, 절의 앞뜰에서 부두가 보이는 곳이어서 목판 재목을 운송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이 절이 최우의 원찰(願刹)이었고, 충렬왕 때 궁전으로 사용하였을 만큼 규모가 컸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절터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보상화문전(寶相花文塼), 명문이 새겨진 막새기와·치미(鴟尾)·원숭이 상 등이다. 이들은 그 양도 풍부하고 질적으로도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거의가 고려 때의 유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절에는 오백불상이 있었다고 하며, 사지는 사적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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