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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 (47)줄무지 상여

한마음주인공 2022. 6. 27. 17:10

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야화 (47)줄무지 상여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을 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합니다 

 

 

야화 (47)줄무지 상여 

40년 전 고향을 떠났던 초로의 선비는 어릴 적 서당친구들을 만나러 눈발 속에 천리길을 걸어왔다. 고향이 가까워오자 새록새록 즐거웠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마침내 까치고개에 올라 고갯마루 회나무 아래 앉아 고향산천을 내려다보며 곰방대에 담배를 말아 넣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곡소리가 나더니 산허리를 돌아 상여가 올라오고 있었다. 

“북망산천 이제 가면 워-이 워-이, 어느 날짜 다시 올까 워-이 워-이.” 

 



적막강산을 찌렁찌렁 울리며 상두꾼 앞장에서 상복을 입은 향도군이 낭랑한 목소리로 곡을 읊었다. 상여가 가까워지자 이게 보통 상여가 아니란 게 드러났다. 상여 뒤에 상주도 따르지 않았다. 줄무지 상여인 것이다. 기생이 죽으면 줄무지 상여에 실려 묻힐 곳으로 간다. 대개 기생이란 일가친척이 없거나 있더라도 연락두절이라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은 기생집에 드나들며 기생 치마끈 깨나 풀어본 한량들이다. 그들은 줄무지 상여를 회나무에서 멀지 않은 고갯마루 길가에 내려놓고 모닥불을 피웠다. 

 

 



기생의 무덤은 생전에 이 사람 저 사람과 연분을 맺었으니 죽어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쉬어가는 사람을 맞으라고 고갯마루에 쓰는 것이 상례다. 이마의 땀을 훔친 상두꾼들이 막걸리잔을 돌리다 말고 향도군이 막걸리 한사발과 대구포 한조각을 들고 회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초로의 낯선 선비에게 왔다. 

 



“어르신, 약주 한사발 드시지요.” 목마르던 차에 벌컥벌컥 단숨에 막걸리를 비운 나그네 선비가 “젊은이, 잘 마셨네. 뭐 좀 물어보세. 이 고개 아래 장곡마을에 아직도 박초시가 살고 있는가?” 상복을 입은 향도군은 눈을 크게 뜨고 “저희 아버님이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자네 아버지 서당친구라네.” 

‘팔척장신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헌헌장부, 친구 아들이 줄무지 상여의 향도군이라…’ 

 

 



나그네는 쩝쩝 입맛을 다시며 집까지 모시겠다는 친구아들의 청을 뿌리치고 고개를 내려갔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길이 그대로 눈에 들어와 똑바로 박초시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도 안 신은 채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두손을 움켜잡은 불알친구와 사랑방에 앉아 술상을 마주한 채 얘기꽃을 피웠다. 술이 얼큰히 올랐을 때 “까치고갯마루에 앉아 쉬다가 줄무지 상여를 만났네.” 박초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잣거리 상춘관 기생 추월이 요절했다는 소문이 들리더구먼.” 박초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가 역정을 냈다. 

“다른 사람은 두건만 썼는데 자네 아들은 굴건제복에 향도군이 되어 앞장선 걸 봐서 호상까지 했으니 자네 체면이 뭐가 되겠나!”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던 박초시는 껄껄 웃으며 “그럼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줄무지 상여는 기생아이 떼어먹은 차례대로 상여를 메는 법! 내 아들놈이 뒷줄에라도 섰다면 못난 놈이라 호통을 치겠지만! 그리고 대감댁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대감이 죽으면 문상도 안 가는 이 각박한 세상에 보잘것없는 기생의 저승길을 보살펴준다는 건 의리있는 사나이가 아닌가.” 

박초시 친구는 말문이 막혔다. 다음해 박초시 아들은 장원급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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