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방문기

홍룡사 20220611

한마음주인공 2022. 6. 14. 11:16

지난 주일에  천성산 산행을 하다가 산행길에서 홍룡사를 방문하게 되어 홍문사 사찰에 대하여 기록에

남기고져 이글을 적게 됨니다 홍룡사는 천성산 정상에서 내려와 원효암을 거처 만나게되는 사찰로서

첫번째 인상은 오랜역사를 지니고 그리고 현재는 나무 소원목으로 사찰 입구부터 남다를 인상을 받앗다

 

 

그리고 소원목을 큰 대나무에 걸어 다리와 사찰 측면에 걸려 있는데 참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많은 소원목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며 무엇을 소원하는지 참 많은 소원글을 접하며 중생으로의 바램을 함께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관음전의 현판이 참 특이한 한자어로 걸려 다시금 더 보게 되엇다

 

 

홍룡사 산신각위의 흘룡폭포가 참 아름답고 주변 풍경과 어우려져 다시한번 홍룡사 홍룡폭포는 양산8경중의 하나라

고 하듯 뛰어난 장소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옆에 관음전 이 폭포와 더불어 귀인 내려와 생활했던것 처럼 마치 중국 어느지방의 풍경을 보는듯 했다 

 

 

이처럼 홍룡사에 대하여 궁금중이 많아 인터넷 백과사전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홍룡사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중국의 승려 1,000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창건한 사찰이다.

승려들이 절 옆에 있는 폭포를 맞으면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듣던 목욕터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의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고, 1970년대 말에 부임한 주지 우광(愚光)이 꾸준히 중건 및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관음전·무설전·산신각·종각·요사채가 있고, 정면 5칸, 측면 3칸에 40평 규모의 선방(禪房)이 있으며, 폭포 옆에는 옥당(玉堂)이 있다. 절 옆에 있는 홍룡폭포는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홍룡폭포 20220611

 

홍룡사는 ‘천명의 성인이 나툰’ 천성산 계곡에 앉아 있다. 산 주변에는 신라 고찰인 통도사와 내원사가 있지만, 한곳은 조계종 교구본사라는 점 때문에 다른 한곳은 비구니 수행도량이라는 점 때문에 시민들의 발길이 쉬 머물지 못한다. 반면 홍룡사에는 불자나 일반시민 모두 세속의 짊을 잠시 벗고서 머물 수 있는 삶의 여백이 있어 좋다.

 

 

‘물이 떨어지며 피어나는 무지개’로 풀이되는 ‘홍룡사’에 가면 염리심(厭離心)이 절로 난다. ‘깨달음(佛)을 챙긴다(念)’라는 선(禪)의 의미보다는 그저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한 평안을 느끼는 상태, 다시말해 ‘세속의 흐름에 들뜨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염리심에 감응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홍룡사 아래쪽은 수량이 풍부한 골짜기 다섯 가닥이 모여 물도 넉넉하고, 곳곳에 너럭바위가 널려 있을 뿐 아니라 숲도 적당히 우거져 있는 등 계곡 풍광 또한 뛰어나 여름철이면 물놀이 피서객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명(寺名)에서 터에 이르기까지 물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홍룡사는, 그래서 관음도량이다.

 

 

 

폭포 옆으로 백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이 있고, 선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홍룡사의 관음보살 중에는 폭포에 현현(顯現)한다는 낭견관음보살도 있다고 하는데, 1천여년 동안 감로수를 쏟아낸 폭포와 인접한 곳에 관음도량이 들어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 홍룡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 *
홍룡사는 선학원(禪學院)에 속하는 사찰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元曉)스님이 낙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하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홍룡사에는 원효 스님과 천명의 성인에 관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효스님께서 척판암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중국 당나라 산서성 태화사에 수도하던 천명의 대중이 뒷산이 무너져 위급한 사고를 당할 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태화사 상공에 날아다니게 했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을 보고 놀라 일주문 밖으로 나온 순간에 산사태가 나서 절은 무너져 버리고 대중은 모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1천명의 중국 대중이 도를 구하기 위해 원효 스님을 찾아왔는데, 이때 원효스님께서 천성산에 89개 암자를 짓고 머물게 했다고 한다. 그 후 대중들은 천성산 상봉(지금의 화엄벌)에서 원효 스님의 『화엄경』 강설을 듣고 모두 득도했는데 절 옆의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다고 해서 ‘낙수사’라 이름 지어졌다

 

 

 

. 또 산 이름 역시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대중 1천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다고 하며 이것이 바로‘천성’이라는 이름이 생긴 연유이다. 당시 89암자에서 정진하고 있는 대중들을 운집시키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하던 화엄벌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처럼 홍룡사는 원효스님의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생겨난 사찰로 천명의 중국대중이 도를 구하기 위해 원효를 찿아와 원효스님의 화엄경 강설를 듣고 득도 하엿다 하여 천성이라는 이름이 유래돤 역사깊은 사찰임을 알수 있다

 

 

홍룡사 교량 양쪽 난간에 걸려있는 소원목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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