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 (38)줄초상
아들없는 천석꾼 오생원 &&&&라는 글을 보내 주셔서
사진을 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하려 합니다
(38)줄초상
아들없는 천석꾼 오생원
육갑 짚어본 스님의 만류 뿌리치고
육촌형 셋째 아들 양자로 들였는데
어릴때부터 온갖 못된 짓만…
천석꾼 오 생원은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데 걱정거리가 딱 하나 있다. 슬하에 딸만 다섯이고 아들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재종(육촌)형의 셋째 아들을 양자로 들이기로 한 오 생원은 이공스님을 찾아갔다.
산속 외딴 암자에 혼자서 벽면 수행을 하는 이공스님은 오 생원과 절친한 사이다. 이공스님이 탁발하러 나오면 언제나 오 생원집 사랑방에 들러 시를 짓고, 오 생원도 때때로 암자에 올라 이공스님과 고담준론을 나눈다.
오 생원이 양자를 들이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자 육갑을 짚어본 이공스님이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을 토했다. 하지만 오 생원은 이공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들였다.
양자로 들어온 병택이란 녀석은 어릴 때부터 말썽꾸러기다. 청개구리 귀신이 들었는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하지 말라는 도둑질은 밥 먹듯이 한다. 오 생원이 출타만 하면 사랑방에 들어가 다락을 열어 돈을 훔쳤다. 그 돈으로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저잣거리를 휩쓸고, 심지어는 서당에서 졸고 있는 훈장님의 주머니에도 손을 댔다.
그뿐이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색줏집을 드나들고 한밤중에 찬모방에도 몰래 들어가더니 급기야 행랑아범이 오 생원 심부름으로 한양에 간 사이 행랑아범의 마누라를 덮쳤다. 이 마누라가 디딜방앗간에서 목을 매려고 하는 것을 다른 하인들이 발견해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일이 알려지자 열다섯살 병택은 사랑방 다락에서 금붙이를 훔쳐 도망쳤다. 행랑아범이 시퍼런 낫을 들고 병택을 찾아나서자 오 생원은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떼 주고 없던 일로 마무리 지었다. 딸 다섯 시집보낼 때는 남들 하는 것처럼 조촐한 혼수를 장만해 주고 출가외인이라고 논 한 마지기 떼 준 적 없는 오 생원이 양자 병택에겐 아낌없이 퍼 줬다.
병택은 평양으로 가서 월매라는 기생에게 빠져 있는 돈을 다 쓰고 빚을 지고 잡혀 있게 됐다. 결국 연락을 받은 오 생원이 집사를 보내 데려왔다. 이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이날 이때껏 집 나간 병택을 사람 풀고 돈 풀어 데려온 것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도 힘들다.
오 생원이 양자로 들여놓은 개망나니에게 하도 시달렸음일까. 노망이 들었다. 병택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다락 속 궤짝 깊숙이 들어 있는 그 많은 땅문서가 제 손아귀에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었다. 병택은 고마움도 모르고 양아버지를 학대했다. 오 생원이 사랑방에서 똥을 싸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얼음 같은 찬물을 퍼붓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오 생원이 가출을 했다. 입춘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얼음이 깡깡 어는 밤에 병택은 제 아비를 찾지 않았다. 얼마 후 오 생원이 이공스님의 암자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못 들은 척 했다. 청명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 생원은 암자에서 숨을 거뒀다.
병택이 제 잘못을 깨우쳤음일까. 9일장으로 장례를 거창하게 치르며 이름 난 지관을 불러 묏자리를 잡아 봉분을 높이 올렸다. 또 석물을 바리바리 올리더니 묘지 옆에 초막을 짓고 조상식·석상식은 물론 점심까지 챙겼다.
천하에 효자가 났다고 소문이 자자할 즈음에 동네 주막에 이공스님이 들어와 곡차를 마셨다. 한 호리병, 두 호리병, 세 호리병…. 이공스님이 주막 아궁이로 가 쑥 뭉치에 불씨를 옮겼다. 그러고는 오 생원의 묘지로 가 효자의 초막에 불을 붙였다. 석상식을 들고 온 찬모를 눕혀 놓고 헉헉거리다 뛰어나오는 병택의 뒤통수를 향해 이공스님의 박달나무 지팡이가 날아갔다.
상주의 삼일장이 치러졌고, 스님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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