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가을 시제일이 되었다 시제일인 11월23일 아침에 시제를 지내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눈이 한없이 많이도 내린다 일기예보로는 1~5센치 정도로 예보 되었는데 생가보다 많은 눈이 내린다
*산입구 초입에 눈이 내려 어마 어마하다
오전 8시경에 아들과 연수네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데 시제를 지내느냐고 한다 그래서 시제일은 정해져 있기에 눈이많이와도 날씨변화에 상관없이 지내게 된다고 예기하고 눈이 좀 잦아 지기만을 기다렷다
*게암산에 오르는데 뒤 따라오는 태열 아저씨가 걱정되어...........
오전9시반이 되자 눈발이 약해지면서 눈이 서서히 꺼져간다 그리고 연수네와 우리가
다와 기다리는데 삼성리 서문안 태식 아저씨 형제분들이 강화로 차로 내려오는데
눈이내려 늧어진다고 전화가와 잠시 더 기다리다가 오전 10시반이 되어서 서문안 태열 아저씨가 성남에서 강화에 도착 하였다고 하신다
우리 강화 해풍김씨 산귀파 강화후손이 처음으로 1978년 개성인군 개풍에서 강화로
오신 최초 할아버님이 모셔진 강화 삼흥리 계암산 8부능선 중턱에 자리잡은 묘소로
가기위해 인산저수지 둑 하부에 차를 주차해 놓고 산으로 오르려 하니 눈이 많이내려
미끄러워 겨우 산입구 산길에 접어 들었다
산길을 오르는내내 눈이쌓여 어지나 미끄러운지 3번을 넘어지고서야 겨우 우리 강화선조님 묘역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눈이 내려 묘소 접근이 불편했던것은 시제를 지내던 중 처음인것 같다
하얀 눈을 밟으며 묘역에 도착하여 우선먼저 산신제를 올리고 그리고 가지고온 차례음식을 배열하여 놓고 2018년 시제를 정중하게 올렸다 오늘 비록 갑작스런 눈으로 인해
우리 가족들의 참석이 저죠하였지만 참석자 모두의 선조님모시는 마음으로 제를 정성스레 올리게 되었다
*게암산 산신제
시제을 올리고 다음 2번쨰 시제 장소인 인사리 국사봉 남측 우리선조(계암산 강화이주 자손묘역) 묘역에 올라 다시 국사봉 산신제를 봉행하고 이어 우리선조님묘역에 가지고간 제사음식을 차려놓고 정성스레 2번째 제를 올렷다
*게암산 묘역 시제음식을 준비하며
매년 치르는 제를 음식과 술을 마련하여 정성껏 올려 드리니 비록 선조님들과 세대는 멀지만 선조님 묘역에모여 시제를 올리게됨이 자랑스럽고 감사한마음이 솟구친다
이러한 제를 올리면서 만약에 우리선조님이 강화로 오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시제도 이북산하에 있기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암산 묘역
시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하고나니 아침에 무섭게 내리던 눈은 소리없이 다 녹아버리고 주변은 눈없던 논과 밭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뒷밭에 있던 순무를 조금
뽐고 남아있던 배추도 20포기정도를 뽐아서 집으로 가지고와 보온이 잘되도록 해두었다
*제주 연수의 시향 올리기
이렇듯이 오늘시제를 무시히 잘 지내고 다시 내년 시제를 지네게 된다 해마다 시제를 지내면서 다시금 시제를 지낼수 있는 내 여건과 주변의 모두에게 감사드리게 된다 그래서
시제는 한해농사를 잘마무리하고 그동안 보살펴주신 선조님과 우리 후손이 한데모여
우리종친들의 화합과 단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된다
글을 쓰다가 시제에 대하여 궁굼하여 인터넷 백과 사전에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제
사시제(四時祭)·시사(時祀)·시향(時享)·절사(節祀)·묘제(墓祭)라고도 하는데, 크게 보아 사시제와 묘제로 나눌 수 있다. 사시제는 사중시제(四仲時祭)라고도 하는데 춘하추동의 중월(仲月)인 음력 2·5·8·11월에 길일을 골라 부모로부터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받드는 것으로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한 정제(正祭)이며 제사의식도 가장 완비되어 있다
*게암산 묘역 주변은 온통 눈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사시제는 고려 공양왕 2년(1390) 8월에 「사대부가제의(士大夫家祭儀)」를 제정하여 사시제의 절차와 내용을 정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규정하고 있는데, 대체로 주자(朱子)의 『가례』 의식을 본떴다.
*게암산 시제음식준비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대부·사·서인 사중월시 향의(大夫士庶人四仲月時享儀)’라고 하여 2품 이상은 상순에, 6품 이상은 중순에, 7품 이하는 하순에 길일을 점쳐서 받들도록 하였다.그 절차는 재계(齋戒)·설위진기(設位陳器)·봉주(奉主)·참신(參神)·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음복(飮福)·사신(辭神)·납주(納主)·철찬(徹饌)·준(餕)의 순서로 되어 있다.
참고로 주자의 『가례』의 절차를 알아보면, 전기삼일재계(前期三日齋戒)·전일일설위(前一日設位)·진기(陳器)·성생(省牲)·척기(滌器)·구찬(具饌)·봉주·취위(就位)·참신·강신·진찬·초헌·아헌·종헌·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門)·수조(受胙)·사신·납주·철(徹)·준의 순으로 되어 있다.
*게암산 2대 할어버님 묘역
이 사시제의 절차가 제사의 가장 완비된 절차이므로 기제를 비롯한 나머지 제사에도 그 경중에 따라 덜거나 더하여 사용하였다.묘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며, 오늘날 음력 3·10월 중에 날을 택하여 대진(代盡)된 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해마다 한번 그 묘소에서 받드는 제사로서, 관습상 이 제사를 시향·시사·시제라고 일컫고 있다. 묘제는 고례(古禮)에는 없는 제사인데 주자가 시속에 따라 만든 것이다.
주자의 『가례』의 묘제는 음력 3월 상순에 택일하여 받들며, 그 절차는 가제(家祭)의 의식과 같이 전일일재계(前一日齋戒)·구찬·궐명쇄소(厥明灑掃)·포석진찬(布席陳饌)·참신·강신·초헌·아헌·종헌·사신·철의 순으로 지낸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는 이 묘제를 매년 사절일(四節日)인 한식·단오·추석·중양(重陽)에 하였고, 뒤에는 지방에 따라 한식과 추석에 두 차례, 혹은 추석이나 중양에 한번 행하는데, 먼저 집에서 절사(節祀)를 행하고 다음날 성묘를 하였다.이이(李珥)는 절사를 정월 15일, 3월 3일, 5월 5일, 5월 15일, 7월 7일, 8월 15일, 9월 9일의 7번으로 하였는데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저자인 이재(李縡)는 이를 너무 과중하다 하여 주자의 『가례』의 3월1제(三月一祭)를 찬성하고, 사시제를 행하고 묘제는 1년에 한번 하도록 제창하였다.
묘제를 위한 비용은 문중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매 신위마다 제위토를 마련하여 그 수익으로서 비용에 충당하며, 자손들이 묘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묘의 주위를 청소한 다음 위의 절차에 따라 분향하고 제사를 받들며, 아울러 산신(山神) 또는 토신(土神)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사시제나 묘제와 비슷하면서도 구별해야 할 것으로는 천신제(薦神祭)가 있다.
이는 정월 초하루·정월보름·한식·삼진(三辰)·단오·유두·추석·중양·동지 등에 지내는 것이며, 속절제(俗節祭) 또는 절사라고도 한다. 짐승[牲]없이 여러 가지 온갖 음식[庶羞]만으로 하며, 고조부모 이하의 신위에 대해서는 독축하지 않고 술도 일헌(一獻)만으로 한다. 이것은 차례(茶禮) 또는 차사(茶祀)라고 흔히 불리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기제를 제외하면 묘제와 함께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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