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한파가 3일째 계속되고 있다 너무 추워서 밖에서 걷기에 너무나 불편하다 그러나 매일
음식만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뱃살로가는 살을 어찌 감당할까나............
*좌측이 여주 고달사지 터
그래서 점심을 하고 한시간 가량을 걸었다 약간 춥기는 하지만 해가 있는 정오라 걸을만하다 그리고
커피를 진하게 한잔 먹고 고달사에 대하여 적어 본다
*여주고달사지 위치도
*고달사지로 오르던중 4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를 만남
지 지난주(17.11.30)에 여주시에 있는 고달사지를 다녀오게 됐다 고달사의 연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던
중 고달사라는 사찰은 우리나라 황해도 와 경기 여주에 2곳이 있다고 나온다
황해도 고달사를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황해도 고달사
745년(경덕왕 4)고달(高達)이 창건하였다. 고달은 원래 사냥꾼이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쏘았는데, 살을 맞고 달아나버렸다. 사냥꾼이 피를 흘린 자국을 따라 가보니 불상을 모신 굴이 있었고, 그 불상에 화살이 꽂혀 있었다.
*주출돌만 당대규모를 알게해준다
고달은 자기가 살생을 많이 하는 것을 훈계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사슴으로 변신해서 자기를 인도한 것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활과 살을 꺾어버린 뒤 참선수도 하여 고승이 되었다고 한다. 일명 고달굴이라고도 부르는 이 절은 높이 6m, 너비 15m, 깊이 9m의 암굴이다.
*여주사찰부지의 땅은 마사토에 가깝다 흙이 참 부드럽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굴 안에는 관음조(觀音鳥)라고 불리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새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또, 절 앞에는 높이 2m, 둘레 6m의 바위가 있는데, 바위 아래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에서 절의 식솔들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한 승려가 많은 쌀을 얻어서 부자가 될 욕심으로 바위 구멍을 넓혔으나, 쌀은 나오지 않고 바위는 300m
아래쪽 굴곡천(屈谷川)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 사실을 안 산신령이 동촌면 일대에 있는 소들의 혼을 뽑아 모아, 다시 고달사 앞으로 끌어올려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원종대사 돌거북 귀비가 위엄스럽다
여주에있는 고달사를 찿아 가기위해 새로 개통된 영동제2고속도로 대신터널을 지나 여주 IC로 나와 5분
정도 가보니 고달사지가 나온다 그리고 고달사지 위쪽 산쪽으로 고달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고 다시 그 건너편 동편에는 신고달사라는 사찰있다
*탑 믿받침 부분만 남아있다
고달사지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고달사지를 좌측으로 하여 오르니 나즈막한 구릉지에 제법 규모가있는
페사지 고달사가 있다 일부에는 탑과 부도도있고 규모면에서 당대에는 굉장한 검물이었을것 같다
*고달사지 위쪽에 고달사암자
고달사지가 예전의 고달사처럼 더욱 융성하기를 고달사에 기원한다
고달사지 내 내부 관광길을 걸으며 고달사지의 옛모습을 상상하게된다 주변에 나즈막한 산과 앞이 펴원
처럼 탁트여 고달사지를 보는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듯 하다
*고달사 암자에서 본 옛고달사지
고달사지 여기저기를 걸으며 맨위 고달사라는 암자에 잠시 둘러보고 다시 좌측 관광 순레길로 내려와
고달사탐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이곳에도 옛문화재가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있다
*고달사암자
그리고 다시 산위쪽으로 600M 정도오르니 작은 원형 석실이 나온다 지금껏 석실은 직사각형태 였는데
이곳석실은 8각형으로의 원형에 가까운 원형석실이었다 주변엔 문화재 보호 보호대가 있고 석실문은
개방되었었다
*석실
여주 고달사지를 인터넷 배과사전에서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달사지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달사 터이다.
1993년 7월 23일 대한민국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사지 주차장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사지 주변 흙이 고령토 재료인듯
*야산엔 쪽대도 보인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고달사지부도 (국보 제4호)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비와이수 (보물 제6호)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탐 보관상태가 양호하고 탐에 그려준 조각이 특별하다
(보물 제7호)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
나 있다. 그 밖에고달사지불좌 (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고달사지쌍사자석등 (보물 제282호)이 있다.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고달사는 신라시대 사찰이었고 고달이리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한다 고달사지를 다 관람하고
돌아나오는데 고달사지위 암자 고달사에서 오신 스님과 고달사지에 대하여 문의하고 고달사지 내력을 조금 알개된다
터만 남은 고달사지가 애초로아 보였고 이러한 사찰페지를 가질 정도라면 스님과 이절에 관련된 많은
시설들이 당대의 고달사 위치를 알게한다
*석실 오르는 길 암길이다
*석실외부
고달사지 주차장을 나와 200m 지점에 우측으로 오르니 신고달사가 있다 들어가 보니 새로 창건된 사찰로
사찰규모가 크고 웅장하였으나 이곳을 관리하는 스님이나 보살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튼 신고달사는
신식 사찰건물로는 굉장히 큰 규모였다
*석실내부
여주에있는 고달사지와 고달사지암자 그리고 신고달사를 참배후 이내 서울방향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갑자기 고속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눈이 내린다 이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고심하다 속도를
늧추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신고달사
*관은보살상
*신고달사 대웅전 처마처리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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