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학교를 간다, 처음 가는 아이처럼. 중남미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조금 스페인어를 배워보려고. 최초의 등교 길이었던 초등학교 1학년의 첫날은 어땠나? 반세기가 넘었던 그 땔 기억할 수가 없네.
새도랑 모퉁이 돌아 둑길 지나서 신작로를 걸었겠지. 흙바닥 운동장에서 ‘앞으로 나란히!’하고 외치는 선생님 따라 줄서는 것부터 시작했을 거야. 그 때는 오 리를 걸었지만 오늘은 세 블록(blocks)만 왔고, 동네 꼬마들과 떠들며 갔겠지만 이 아침엔 혼자 잠잠했다. 카바길 스페인어 학교(Esquela de Espanol Cabaguil)는 식민지 시대의 수백 년은 묵었을 오랜 건물 안에 있다. 거긴 큰 플라타너스가 둘러섰던 넓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일제(日帝) 때에 지었던 긴 단층교사(校舍) 앞으로는 향나무들 섰었고. 운동장 없는 여긴 작은 도로변에 두꺼운 벽으로 꽉 막아서 아주 높고 육중한 대문으로 들어간다. 우물 정(井)자식 뜰 안에는 조그만 마당뿐이며 야자나무 한 그루 서있다. 작은 한국식당 하나, 과테말라 식 큰 식당, 인터넷 카페와 문간에는 작은 여행사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복잡한 낡은 건물이다.
(지진대비로 아주 두꺼운 벽의 성당 유적)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ias)!" 좋은 아침이라는 영어식 인사보다는 ‘좋은 날(Good day)'이라는 뜻이지만 그렇게 아침인사를 한단다. 내가 제일 먼저 왔다, 시간 지나서 온 젊은 여선생이 인사를 하네. 늦는 게 과테말라 시간이려나. 토요일이라 학생은 다섯 명뿐. 물론 일대일 교습인데 처음 만나는 교사는 피부가 짙은 본토인의 모습이었다. 닷새 동안 뭐 얼마나 배울까마는 여행을 위한 몇 마디 에스파뇰(Spanish)을 터득해 볼까하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니까.
멕시코에서보다 훨씬 싸다며 많은 여행자들이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코스를 택하고 있었다. 이 안티구아(Antigua)에도 학원이 많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꺼풀 문화의 속을 벗겨보는 것과 같고 직접 현지의 사람들을 가까이 접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무 때나 시작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고, 1주일에서 몇 달, 내지 1년을 배울 수도 있다. 어떤 학원에서는 언어 말고도 등산과 같은 프로그램, 살사(salsa) 춤도 가르치는 코스를 선택으로 가미하기도 한다. 여행객이 모이는 곳은 도시나 시골이나 거의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어학원은 질이 문제일 것 같다. 다행이 내 교사는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편리한 대신 교육의 경험이 없고 전혀 훈련받지 않은 미숙련이었다.
영어가 라틴(Latin)어를 바탕으로 발전한 언어이듯이 서양인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기는 조금 쉽겠지. 마치 한국, 일본어가 한자의 바탕으로 기록 문자가 자라왔던 것 같이. 특히 이태리와 프랑스인들은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고도 거의 절반가량은 소통이 된다니까 더욱 배우기기 수월한 모양이다. 많은 서양의 젊은 여행객들이 과테말라에 와서 스페인어를 먼저 배우고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듯이 나도 그렇게 흉내를 내는 셈이다. 대개 한 달 내지 수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하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 마침 같은 건물 안에 있는 한국식당엘 가보았다, 누들 꼬레아(Noodle Corea)라고. 간이식당처럼 작고 낮엔 손님이 없어 한국인 주인과 한담도 할 수가 있었다. 안티구아가 좋다고, 교민은 셀 정도로 적으며 한인유학생이 몇 명이 체류하는 정도일 뿐이란다. 뜻하지 않게 한국인을 여기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독특한 돌길의 보존)
첫날 오전 4시간은 견딜만, 소개와 간단한 인사법을 배웠다. 점심 먹으러 숙소로 간다. 라틴아메리카(Latin America)에서도 여기가 스페인 사람들이 와서 만들었던 독특한 돌길(coble stone)은 여전히 보존하고 있다. 아스팔트가 없던 그 때에 길바닥에다 돌을 총총 박아서 포장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옛날의 토착민들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 위로 마차가 다녔겠지, 양옆 건물 밑으로는 좁은 인도(人道)를 조금 높여 만들었다. 차가 약간 덜거덕거려도 아스팔트로 갈아버리지 않아서 고풍스럽다. 흙 담을 쳐서 지은 건물들과 두꺼운 담벼락에 진한 색깔이 또 인상적이다. 노랑, 빨강, 오렌지, 적갈색(terra cotta) 등 밝은 흙색이 많았다. 지금은 유네스코(UNESCO)의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되어서 건물을 통제하고 고풍을 지키느라 돌길과 색깔까지 제한하고 있는데 저런 컬러가 남유럽의 색깔이었나.
일주일의 숙소는 시내의 큰 시장(mercado)에 접한 산타루시아(Santa Lucia) 길가에 위치했다. 짧은 통학 길에는 무너진 콜로니얼(Colonial) 성당도 지나고 돌을 깐 작은 찻길에 제법 차들도 다닌다. 흙 담과 건물 벽 밑에 좁은 보도(步道)는 항상 사람들이 비키기에 불편했다. 게다가 쇠막대기로 댄 건물의 창틀막이는 하마터면 얼굴에 박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르랴, 한 아이 아빠 따라 정신없이 가다가 거기 얼굴 부딪쳐 우는 것도 보았지 뭔가. 그러거나 말거나 협소한 보행자의 그 길에 가로막고 앉아서 손을 내미는 늙은 걸인도 있으니.
돌아오는 2km의 하교(下校) 길은 늘 배고프게 만들었으니, 그냥 걷기만 하진 않았으니까. 아카시아 잎을 훑어서 길바닥에 뿌리기도, 한 잎은 접어서 입술에 물고 빨면 악기가 되어 삐르르, 삐르르 소리를 냈다. 산기슭으로 올라가 진달래를 꺾기도 하고, 짓궂게 벌집도 쑤신다. 오, 더우면 개울에 내려가 목욕을 하고, 시냇물 풀 섶에선 손으로 작은 고기도 잡았다. 그러니 에너지를 오죽 소비했을까. 한나절 오늘 공부마저도 새론 어학이라고 날 또 배고프게 했다. 중미의 점심은 세 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 스테이크(beef steak)와 밥일세. 기운을 채우고 다시 학교로 간다, 오후의 두 시간을 더 하려고. 상급학년이 되면 오후 수업을 해서 점심을 싸갔었지. 가까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집으로 달려가서 오늘 나처럼 밥을 먹고 왔었고.
1시부터 한 시간 반만 했다, 주말이라 조금 일찍 끝내자고 제안했다. 흐리더니 비가 내리네. 우산 한 개를 샀다, 미국 돈 2,5달러 정도인 18께짤(Quetzals)에. 여기도 값싼 중국산이네. 오, 제법 내린다. 겨울, 그러니까 우기(雨期)이다 지금이. 그러므로 비 오는 것을 감안해야 하거든. 그러나 종일 오지는 않는다. 한 차례 적어도 오후엔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우기의 완벽한 안티구아의 날씨는 7월 중순ㅇ 1주일 뿐이라니 어쩌나. 저녁은 안주인이 외출을 했다가 늦게 오기도 했는데 샌드위치뿐이네, 대개 저녁은 점심보다 가볍다더니. 미국에서 버릇해 온 바라 저녁이 허술한 것 같아 사온 망고를 두어 개도 더 먹었네. 공부는 아무 때든지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거든. 브레인도 칼로리를 많이 먹나 봐. 칼로리를 먹는 만큼 스페인어로 내 머리가 통통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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