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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함박꽃

한마음주인공 2022. 12. 27. 17:34

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182)함박꽃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182)함박꽃 

새신랑 드러눕고 말 잃은 하림댁 친정길에 주막에 머무르는데… 

 하림댁은 말이 없다. 어떤 날은 하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몸종이 무슨 일의 가부(可否)를 물어봐도 고개를 끄덕이든가 흔들어 대답하고는 또다시 벙어리다. 


 친정에 무슨 일이 있어도 좀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친정아버지 회갑연이라 가기로 했다. 아침상을 물리고 사랑방에서 곰방대를 문 시아버지 유대감에게 고해 허락을 받았다. 시어머니는 가래 끓는 소리로 “가고 싶으면 가야지” 하고선 고개를 돌렸다. 

 혼례를 올리고나서 열달도 안돼 드러누운 신랑은 백방으로 약을 써도 차도가 없이 삼년째 누워 있다. 시어머니가 점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신랑이 새신부에게 기(氣)를 빼앗겨 신(腎)이 허해졌다는 것이다. 혼례를 올릴 때 새신부가 열여덟살, 새신랑이 열여섯살. 하루도 빠짐없이, 어떤 날은 두세번씩 치마끈을 풀었다. 신부는 싫은지 좋은지도 모르고 신랑이 하자는 대로 한 건데, 신랑 아픈 게 자기 탓이라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새신랑이 비실비실하더니 드러누워 가끔 요강에 피를 토하기도 했다. 폐병이다. 


 하림댁이 친정아버지 회갑연에 간다 해도 시어머니는 명태 한두름 싸주지 않았다.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는 궁궐에서 함께 봉직하다가 함께 낙향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찰을 주고받고 일년이면 한두번 서로 만나 회포를 풀던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만, 새신랑이 드러눕고 나서는 두사람 사이도 냉랭해졌다. 

 하림댁이 몸종 삼월이를 데리고 시댁 대문을 나섰다. 신랑 병시중 드느라 대문 밖 나들이가 언제였던가. 하림댁이 친정에 가는 날 삼월이가 더 신이 났다. 친정까지 칠십리길, 하루 만에 갈 수가 없어 중간에 하룻밤 자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삼월이네 집 고을인 합강이다. 두개의 강이 합쳐지는 이 고을은 여기저기서 물살이 모여 저잣거리가 떠들썩한 곳이다. 

 “마님, 저 산머리만 돌아나가면 우리 고을 합강이 보여요.” 

 삼월이 혼자 조잘대고 새댁은 가쁜 숨소리뿐이다. 길가 바위에 털썩 주저앉자 삼월이 또 쉬느냐는 듯이 팔짱을 끼고 선 채로 하늘만 쳐다봤다. 또다시 걸으며 “마님, 떨어지는 해가 강을 붉게 물들였네요.” 하림댁은 눈길도 주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합강에 다다랐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나루터 가까운 주막으로 들어갔다. 


 “마님, 오랜만이구먼요.” 늙은 주모가 반겼다. 하림댁이 친정 가는 길이면 언제나 하룻밤 자고 가는 주막이라 친근해졌다.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삼월이는 “마님 편히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올게요.” 하림댁은 고개만 끄덕였다. 

 하림댁이 자는 곳은 안방과 미닫이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윗방이다. 삼월이는 부리나케 저잣거리로 가서 식구들 줄 선물을 한보따리 사고 푸줏간에서 쇠고기도 두근 사서 종종걸음으로 제집으로 갔다. 때때로 유대감의 다리를 안마해주고 받은 푼돈에 주머니가 아직도 묵직하다. 

 합강에서 하림댁 친정까지는 삼십리밖에 되지 않아 느즈막한 아침에 삼월이가 주막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늦게 왔다고 하림댁에게 꾸중을 들을 줄 알았는데, “삼월이 너 오랜만에 식구들 만나고 오니 얼굴이 환해졌구나.” 도저히 마님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것도 활짝 웃으며. 삼월이가 하늘을 쳐다봤다. 해는 분명히 동쪽에서 떴는데…. 


 주모의 극진한 인사를 받으며 주막을 나선 하림댁의 발걸음이 구름을 걷듯이 가벼웠다. 

 “어머니, 동생들 선물은 사갔느냐? 내가 돈을 좀 줄 걸 그랬나?” “아니에요, 마님.” 

 삼월이는 계속 놀랐다. 

 “삼월아 저 꽃 좀 봐라.” “함박꽃이에요. 마님처럼 웃고 있네요.” 

 잔치 준비하던 친정집에도 웃음꽃이 핀 것은 자나깨나 걱정이던 막내딸 하림댁이 웃음을 달고다니고 수다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하림댁은 친정아버지 드시라고 이끼에 싸인 산삼 두뿌리를 내놨다. 친정에 와도 말 한마디 없이 한숨만 쉬던 하림댁을 보고 친정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는데 이렇게 활달해진 딸을 보니 하늘을 나는 듯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다니? 삼월이는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지난밤 주막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하림댁이 윗방에서 자려는데 미닫이 너머 아랫방에서 늙은 주모와 들병이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들병이는 이 주막에서 일도 도와주고 밤이면 객고를 풀려는 손님에게 치마도 벗는 퇴기다. 

 “삼년 만에 산삼 열두뿌리를 캤다고 저렇게 들떠 있는 단골 총각이 우리 집에 매출을 얼마나 올려줬어. 들어가 봐.” “이모, 제가 몸도 아프려니와 저 인간은 물건도 팔뚝만 하게 세워 밤새도록 죽지도 않고… 죽어도 못 가요.” 

 “술에 취해 색시 들여보내 달라고 저렇게 고함을 지르잖아.” “이모가 들어가.” 

 “내가 젊었으면 열번도 들어가지.” 

 산삼 열두뿌리를 팔려고 닷새째 주막에 머무르는 심마니 총각 방에 들어간 것은 하림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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