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 형님 김경수님이 카톡으로 &&& ♡사람은 죽을때 까지 배운다♡ &&&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과 함께 합니다
♡사람은 죽을때 까지 배운다♡
유대인의 격언에
"몸의 무게는 잴 수 있어도 지성(知性)의 무게는 잴 수 없다.
왜냐하면 체중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은 곧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지식은 언제나 몸따라 함께 다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학교 교육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의 배움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요즈음은 평생교육(平生敎育) 또
는 생애교육(生涯敎育)을 강조합니
다.
그러면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니,그 선한 쪽을 골라 이를(그의 선을) 따르고,
그 악한 쪽을 골라 이를(나의 악을) 고쳐야 하느니라.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하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濟)나라 환공군(桓公軍)이 싸움이
끝난 뒤 돌아갈 길을 잃고,모두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때 명재상 관중(管仲)이 이렇
게 말했답니다.
"이런 때는 나이 먹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되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해 환공
군은 그의 말대로 늙은 말을 놓아주고 그 뒤를 따라가
자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한비자(韓非子)
에 나오는 일화로
관중 같은 총명한 사람도 자신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늙은
말을 스승으로 여겨 배웠던 것이지요.
소설 흙을 읽으며
변호사를 꿈꿨던 청년 정주영이 16
세 때 고향 통천을 떠나는 계기가 됐던 것은 당시 모 신문에서 연재한 이
광수의 소설「흙」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당시 해당 신문을 구독하고 있던 마을 이장 집으로 밤마다
2㎞ 이상을 달렸다고 합니다.
소년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으며 도시 생활을 꿈꿨고,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출했는데,
실제로 상경한 후 정주영은`법제신
(法制通信)' 등 여
러 법학 관련 서적을 독학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출 후 인천부두에서 막노동을 할 때 청년 정주영이 머물던 노동자 합
숙소에는 `빈대'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50년대 말까지도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빈대가 많았습니다.
온종일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자려니 빈대의
극성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궁여지책으로 큰 밥상 위에 누었더니 잠시 뜸하다가
이내 상다리를 타고 올라와 물어뜯더랍니다.
기어 올라오는 빈대를 잡기 위하여 양동이 4개를 구하여 물을 가득히 담
아 밥상 다리를 그곳에 담가 놓고 잠을 자니,
2, 3일은 조용하다가 다시 빈대가 찾아와 물어뜯기 시작하여 이상해 불
을 켜고 빈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양동이 물 장애를 극복하고 올라 왔을까?
살펴보니 놀랍게도 빈대들은 방벽(房壁)을 타고 천
정까지 올라간 다음,상을 겨냥 해 뚝 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에나 전심전력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빈대의 지
혜를 기업경영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
서나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려는 의지를 가질 때 나의 스승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공자(孔子)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 한다면 천하 에만물이 다 나를 가르치는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