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교 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아버지의 손 3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하려 합니다
아버지의 손 3
언젠가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남자는 도둑이나 이단자보다 더 나쁘니 결코 하느님의 나라에 들지 못하느니라’하는 성경 구절을 설교하는 걸 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그 구절을 읽어 달라고 했지만 나는 통 찾을 수 가 없었다.
그 뒤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마치 기적이 일어나 읽게 된 것처럼 성경을 뒤적이더니 한 페이지를 짚었다. 바로 그 성경 구절이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성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경을 못 읽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이모에게 가신 주말의 어느날이었다. 아버지는 가게에 가서 저녁 찬거리를 사오셨다. 저녁을 먹고 나니까 아버지는 멋진 디저트를 주겠다고 했다. 부엌에서 깡통 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웬일인지 조용했다. 나는 부엌에 가보았다. 아버지는 깡통을 딴 것을 들고 서 계셨다.
“난 배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혼자말을 하면서 뒷마당으로 나가 계단에 앉으셨다. 내게 부끄러우신 것 같았다. 깡통에는 ‘순 감자’라고 씌어 있었다. 그러나 상표에 붙어 있는 그림은 영락없이 배 같았다. 나는 아버지 곁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별자리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북두칠성 등 웬만한 별자리를 다 알았다. 아버지는 별자리에 따른 신화도 들려 주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 깡통을 선반 위에 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씩 그 깡통을 손에 들고 빙빙 돌렸다. 손으로 글자를 만지면서 그 손이 저절로 글을 쓰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몇 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아버지더러 함께 살자고 했다. 아버지는 변두리 조그만 집에서 가축이나 채소를 돌보면서 혼자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이었다. 심장병 때문에 여러 차례 입원도 했다. 늙은 의사 그린씨가 매주 진찰을 하고 약을 주었다. 그 가운데는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얼른 삼키라는 니트로글리세린 알약도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다. 산 아래 목장에서 그 크고 따듯한 손 이젠 늙어 마다가 울퉁불퉁했지만-으로 내 아이들의 어깨를 붙잡고 멀리 보이는 연못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전에 아버지와 내가 수영을 하고 낚시질도 하던 연못이다.
그날 밤 내 가족은 새 직장 관계로 해외로 떠났다. 3 주일 후,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예의 그 심장마비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식엔 나 혼자 돌아와 참석했다. 의사 그린씨가 유감을 표했다. 그는 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날도 그가 처방전을 써줘서 아버지가 약국에 가 약을 지으셨는데, 여지껏 그 약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니트로글리세린 약만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도움을 청할 때까지 버틸 수 있어 안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마당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슬픔이 북받쳐 올라 나는 아버지가 숨지신 그 땅을 손바닥으로 흝어보았다. 내 손가락에 딱딱한게 닿았다. 반쯤 묻힌 블록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블록을 들어 팽겨쳤다. 그랬더니 그 아래 부드러운 땅속에 콱 박혀 있는 약병이 보였다. 뚜껑이 꾹 잠긴채 알약이 가득 들어 있는 플라스틱 병이었다.
약병을 집어드는 내눈에 어바지가 뚜껑을 열려고 애를 쓰다 못해 필사적으로 블록으로 약병을 깨려고 했을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손이 죽음과의 싸움에서 그토록 맥없이 패배한 까닭을 알고 나니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약병의 뚜껑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 손이 안 닿게 되어 있는 안전 뚜껑. 눌러서 돌리셔야 열립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바로 그날부터 새로운 안전 약병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리석은 짓인줄 알면서도 시내로 나가 제일 좋은 가죽표지의 사전과 순금 펜 세트를 샀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면서 따뜻하고 충실했던 손. 그러나 글자를 못 썼던 그 손에 그것들을 쥐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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