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3. 1960년대 소주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을 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하려 합니다
3. 1960년대
도꾸리에 담아서 팔던 소주는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소주 제조에 일대 변혁이 시작됩니다. 양곡괸리법은 식량이 모자라서 정부가 양곡관리법으로 식량 부족을 해결하려했던 법입니다. 이로 인해 양곡이 많이 사용되는 전통 방식의 소주 제조는 금지됩니다. 당시에는 식량의 부족이 심각하여 정부가 식량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입니다.
이 때는 한국주정이라는 회사가 주정을 만들어 소주회사에 공급하고 각각의 회사가 인공 감미료로 알콜의 쓴맛을 없애고 마시기 좋게 도수를 맞추어 제조합니다. 결국 당시의 소주는 같은 원료에 첨가물만 다른 소주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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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3가지 병에 담아 팔게 됩니다. 2홉(360ml), 4홉(640ml), 1되(1.8039리터, 1되=10홉) 3가지 병의 상품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35도와 30도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때 도시에는 낮은 도수, 시골에는 높은 도수의 소주를 판매하고 1되 짜리는 시골에만 팔았습니다. 이러다가 도수가 너무 높아서 도수를 낮추게 되는데, 이때 정리되어 25도와 30도짜리 소주로 정착합니다. 점차 1되짜리는 판매가 저조하고 주로 2홉, 4홉 자리가 주종을 이룹니다.
이때 사용한 병은 현재 진로 이즈백의 소주병과 같은 옅은 하늘색이었습니다. 이때 전국적으로 진로가 가장 인기가 있어 대부분의 소주회사가 진로와 유사한 색상의 소주병을 사용합니다.
4. 1970년대
이러다가 1970년대가 되자 소주는 또 한 번의 대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정부 주도로 당시 전국에 퍼져 있던 254개 소주 업체를 싹 정리해 주류회사 통폐합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당시 통폐합의 명분은 저질 주류 생산 방지와 유통 질서 회복이었다).
실제적인 이유는 정부가 주세를 탈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의 주세는 국가 재정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었습니다. 이런 주류 회사의 통폐합으로 1977년, 각 지방별 제조장 기준으로 각도에 한 개씩 총 열 개의 희석식 소주업체가 유지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소주 회사들입니다.
이때 주세 탈세에 대한 정부 방침이 상당히 엄격했습니다. 당시에는 주세 부과 기준이 병 뚜껑이었습니다. 지금은 맥주병이나 소주병을 딸 때 숫갈, 나무 젓가락을 이용하여 병 뚜겅을 따기도 하는데 이것의 전래는 사실은 탈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에 소주회사의 직원들도 소주를 회사에서 마시기 어려웠습니다. 제조 과정에서 직원이 손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주가 생산 완료되어 주세를 부과하는 병 뚜껑이 닫혀진 이후에 마실 수 있었읍니다. 소주회사에 다니면서 소주를 사먹기는 억울하고, 비용도 안들이고 먹으려고 고안한 방법이 생산 완료된 병으로 다른 병을 따서 마시고 병 뚜껑은 다시 라인에 투입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세를 부과하는 병 뚜껑은 손상하지 않고 소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탈세는 국가적인 문제가 되어 정부가 손을 댑니다. 이때 소주는 진로와 삼학이 대세를 이루고 서로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름에서 알수 있지만 삼학은 전라도에서 나오는 소주입니다. 당시의 애주가들은 진로 보다는 삼학을 더 좋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삼학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그 후의 파장으로 결국은 문을 닫게 됩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영향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입니다. 당시가 3공화국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1973년 전후로 생각됩니다.
이후로 진로가 소주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됩니다.
도꾸리에 담아서 팔던 소주는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소주 제조에 일대 변혁이 시작됩니다. 양곡괸리법은 식량이 모자라서 정부가 양곡관리법으로 식량 부족을 해결하려했던 법입니다. 이로 인해 양곡이 많이 사용되는 전통 방식의 소주 제조는 금지됩니다. 당시에는 식량의 부족이 심각하여 정부가 식량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입니다.
이 때는 한국주정이라는 회사가 주정을 만들어 소주회사에 공급하고 각각의 회사가 인공 감미료로 알콜의 쓴맛을 없애고 마시기 좋게 도수를 맞추어 제조합니다. 결국 당시의 소주는 같은 원료에 첨가물만 다른 소주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부터 3가지 병에 담아 팔게 됩니다. 2홉(360ml), 4홉(640ml), 1되(1.8039리터, 1되=10홉) 3가지 병의 상품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35도와 30도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때 도시에는 낮은 도수, 시골에는 높은 도수의 소주를 판매하고 1되 짜리는 시골에만 팔았습니다. 이러다가 도수가 너무 높아서 도수를 낮추게 되는데, 이때 정리되어 25도와 30도짜리 소주로 정착합니다. 점차 1되짜리는 판매가 저조하고 주로 2홉, 4홉 자리가 주종을 이룹니다.
이때 사용한 병은 현재 진로 이즈백의 소주병과 같은 옅은 하늘색이었습니다. 이때 전국적으로 진로가 가장 인기가 있어 대부분의 소주회사가 진로와 유사한 색상의 소주병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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