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김사갓 연재 글인 &&& ⑽혼약(婚約) &&&을
보내 주셔서 사진을 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하려 합니다
⑽혼약(婚約)
사돈 맺기로 한 배 대감과 정 대감
배 대감의 배신으로
정 대감 가족은 몰살되고
외동딸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사화에 휩쓸려 일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정 대감댁의 나이 지긋한 집사는 대감의 열두살 외동딸을 부엌 아궁이 속에 숨겼다.
정 대감은 사약을 받아 마시고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고, 부인은 목을 매고, 세 아들은 노비로 팔려 갔다. 영특하고 예쁜 외동딸을 잡아서 색줏집에 팔려던 포졸들이 온 집 안을 뒤졌지만 찾지 못하자 집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하늘 끝까지 올라 십리 밖도 대낮처럼 밝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튿날 밤, 아직도 연기가 피어 오르는 정 대감 집 잿더미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잿더미에서 부엌 자리를 찾아 아궁이 문을 열고 “아씨” 하고 나지막하게 불렀다. 아궁이 속의 정 대감 외동딸이 새까맣게 검댕을 뒤집어쓰고 기어 나왔다. 집사는 그녀를 업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임금은 허구한 날 병상에 누웠고, 나라의 기강은 무너져 매관매직이 판을 치던 때였다. 썩어 빠진 세상을 바로잡아 보려고 발버둥 치던 정 대감은 뜻을 펴 보지도 못한 채 자신과 일족이 멸하고 말았다.
친구의 배신 때문이었다. 배 대감은 정 대감의 죽마고우요, 동지였다. 그의 삼대독자와 정 대감의 외동딸은 혼약까지 한 터였다. 두 대감은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구할 궁리 끝에 허약한 임금을 퇴위시키고 세자를 옥좌에 앉혀 사리사욕에 눈이 먼 대감판서들을 몰아내기로 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도 모았다. 하나 거사를 삼일 앞두고 배 대감이 배신했다.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썩어 빠진 세상은 변함이 없고, 배 대감은 도승지가 되어 병상의 왕을 제쳐 두고 자신이 왕인 양 온 나라를 주무르고, 그의 삼대독자 외동아들은 평양감사가 되었다. 젊은 평양감사는 주색잡기에 빠져 연회가 열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대동강에 또 하나의 달이 뜨고, 부벽루에서는 가야금 열두줄에 흥이 질펀하고 술잔도 달을 담아 바삐 돌아간다. 평양감사의 혼을 뺀 기생은 평양에 새로 나타난 열일곱 설매다. 연회가 파하자 평양감사는 설매의 허리를 껴안고 감영으로 가 금침에 쓰러뜨렸다.
“감사 나으리, 소첩은 비록 기녀이오나 이날 이때껏 제 몸을 깨끗이 간수했사옵니다.”
평양감사가 눈을 크게 떴다.
“나으리에게 매달리지는 않겠습니다만 혼례의 예는 지켜주십시오.”
냉수 한그릇을 떠 놓고 맞절을 하고 합환주를 마시고 촛불을 끈 후 설매는 옷고름을 풀었다. 천지가 진동하고 뇌성벽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졌다. 땀범벅이 된 평양감사는 고목이 쓰러지듯 설매 위에서 떨어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설매도 땀에 젖었다. 조용히 옷을 입은 설매는 쓰러져 자는 평양감사에게 절을 올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 대감과 배 대감이 십이년 전에 사돈이 되기로 약조를 했습니다. 오늘 밤, 그 약조를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서방님을 살려둘 수는 없습니다.”
이튿날 아침, 평양감사는 깜짝 놀랐다. 설매는 떠났지만 비단 요 위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긴 것이다. 평양감사는 설매를 기방에서 빼내 살림 차릴 궁리를 하며 일어나려다가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젯밤에 술이 과했나, 설매와의 운우가 과했나. 저녁이 되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제대로 손쓸 사이도 없이 아흐레 만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가솔들이 합환주를 담았던 은술잔 하나가 시커멓게 변한 걸 뒤늦게 발견하고 설매를 찾았으나 그녀는 아흐레 전에 자취를 감췄다. 삼대독자가 후손도 두지 않고 죽자 배 도승지는 매일 밤 요강에 피를 토하다가 석달 만에 아들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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