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208)도편수- 하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 작은별밭과 함께 합니다
(208)도편수- 하
황각중의 양자된 거지 공진이 솜씨 좋은 목수로 거듭나지만
호적서 파냈단 소식 듣는데…
설날 아침, 동산에 붉은 해가 떠올랐다. 활짝 열린 대문으로 월천교 거지떼 예닐곱이 들어왔다. 오 대인이 사랑방 문을 열자 거지들이 흙마당에 꿇어앉아 “어르신, 세배받으세요”라고 하자 오 대인이 고함을 쳤다. “행랑아범~ 빨리 대문을 잠가라.”
거지들이 마당에서 합동세배만 하고 도망치려다가 꼼짝없이 잡혀 사랑방에 들어가 한사람씩 세배를 하고 세뱃돈이 가득 든 주머니 하나씩을 받았다. 나이 지긋한 노인은 오 대인과 맞절을 하며 “어르신 덕택에 소한·대한 지나며 한사람도 얼어죽지 않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날이 풀리면 우리 산 남향받이 자락에 제대로 집을 짓자고. 그리고 딸린 밭에 농사지어….” 오 대인의 이야기에 거지들은 울음바다가 됐다. “여봐라~ 이 사람들 떡국상 차리고 뒤뜰에 윷판을 펼쳐줘라. 종일 술과 고기도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그렇게 겨울이 따뜻하게 지나갔다.
공진이는 설이 지나자 열두살이 돼 도편수 황각중네 집에 들어갔다. 몸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아예 호적에 황각중의 양자로 등재돼 부자지간이 된 것이다. 아버지만 얻은 것이 아니라 네살 위 예쁜 누나까지 얻었다. 황각중은 십년 전에 병으로 부인을 잃고 여섯살짜리 딸 하나를 손수 키우며 새장가를 가지 않았다. 그 딸 국화가 이제 열여섯 처녀가 되어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다.
국화도 아버지하고 둘이만 살다가 남동생을 얻자 너무 기뻤다. 공진이가 땟국물에 전 옷을 벗고 국화누나가 지어준 바지저고리에 조끼까지 받쳐입자 제법 말끔한 총각티가 났다. 황각중도 흐뭇하다. 눈썰미 좋은 도편수 후계자 아들을 얻은 것도 좋지만 항상 안쓰럽던 딸 국화가 그리 좋아하는 걸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국화는 뜨개질로 공진이 모자를 떠주고 토시도 만들어줬다. 꽃피고 새우는 봄에 오누이는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공진이는 지게 가득 나무를 하고 국화는 나물을 한바구니 캐 함께 집으로 왔다.
도편수 황각중이 집짓기 의뢰를 받았다. 목수를 넷 쓰고 공진이에게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새참시간에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앉은 황각중은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지. 공진이를 양자로 잘 들였어.’ 공진이는 영리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목수일 배우는 것도 일취월장, 가을에 열여섯칸 집을 다 지었을 때 공진이는 한사람 몫의 목수가 돼 있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황각중은 파김치가 되어 골아떨어지는데, 공진이는 호롱불 아래서 제 누이와 밤새 얘기꽃을 피웠다.
삼년이 흘렀다. 열다섯이 된 공진이는 키는 쑥, 팔뚝은 무쇠, 어깨는 벌어졌다. 황각중이 특히나 기뻐한 것은, 목수의 가장 큰 덕목인 지붕 처마 선을 잡는 데 공진이를 따를 목수가 없을 뿐더러 자신도 밀리는 것이다.
절을 짓고 여섯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 아비 눈치도 아랑곳없이 공진이와 국화가 얼싸안고 빙그르르 돌았다. 어느 날 황각중이 국화와 장에 가고 공진이 혼자 대들보와 서까래 도면을 그리고 있는데 동헌의 호적관리가 찾아와 “황각중 어른이 부탁한 호적 파기가 다 정리됐네” 하며 서류 하나를 놓고 갔다. 공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황각중과 공진의 부자관계가 파기된 것이다.
공진이는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동구 밖 주막으로 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몇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술을 잔뜩 마시고 나니 지난 세월이 꿈처럼 이어졌다. “호적을 파기했어도 아버지를 원망할 순 없어. 이때껏 나를 이렇게 키워줬는데…. 내가 떠나면 되지만 국화누나를 보고 싶어 어쩌지.”
집에 돌아온 공진이는 도편수 황각중 앞에 꿇어앉았다. “아버님, 내일 집을 떠나겠습니다. 한양에 궁궐을 새로 지어 목수들을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몇년 보내면 저도 도편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황각중이 “지금 남촌에 짓는 집이나 마무리하고 가면 안되겠냐? 너 술에 취했구나. 네 방에 가서 자거라.”
공진이 누워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자박자박 살며시 국화가 들어왔다. 공진이 벌떡 일어나 국화를 끌어안았다. “누나, 잘 있어. 으흐흑~.” “나는 이제 누나가 아니야.” “나도 알아. 호적을 파기했으니….” 공진이 한숨을 토하자 국화가 “아버지가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렸어. 의원 말씀이 일년을 못 넘긴대. 호적을 파기해야 아버지와 공진이는 남남이 되고 공진이는 나의 서방님이 될 수 있지. 남촌에 짓는 집은 우리가 살 집이야.”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공진이는 더듬거리며 “남촌에 지지, 짓는 집이, 구구궁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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