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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매 (083) *자살소동 9

한마음주인공 2022. 11. 7. 11:22

어제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금병매 (083) *자살소동 9&&&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고유 하려 합니다 

 

 

■금병매 (083) *자살소동 9 
   
이 깊은 밤중에 대안이가 불쑥 침실로 들어서다니,
이병아는 너무나 뜻밖이고 또 어처구니가 없어서 얼른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벌서 이병아는 독한 홍고량주(紅高粱酒)를 석잔 째 마시고 있는 터여서 꽤나 주기가 올라 있었다.
놀라서 술잔을 손에 든 채 바라보고 있는 이병아의 취한 듯한 눈매는 섬뜩하리만큼 고왔다. 

그 눈매와 마주치자 대안이는 자기도 모르게 흐흐흑 하고 흐느끼는 듯한 숨을 몰아쉬며 후닥닥 곁으로 다가갔다.
“마님, 정말 어쩌면 좋죠? 예?” 

이병아는 가만히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이 밤중에 왜 이렇게 혼자서 술을 마시고 계시는 거예요? 어찌 된 일입니까?” 

“..........”

 

“주인어른께서는 어째서 마님한테 하룻밤도 안 찾아오시는 거죠?
부인으로 맞아들인 지가 벌써 며칠 쨉니까.
그런데 그동안에 한 번도 안 찾다니... 이런 법도 세상에 있나요?
너무하지 뭐예요. 정말 너무하다구요”
대안이의 말투는 차츰 울먹이는 듯한 소리로 바뀐다. 

가만히 대안이를 바라보고 있는 이병아의 두 눈이 핑 흐려진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실소가 살짝 내비치기도 하면서, 
“그말을 하러 찾아온 거야?”
하고 가만히 묻는다. 

“마님이 가엾어서 그래요. 낮에 수춘이한테 얘기를 들었지 뭐예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오늘 밤도 마님이 혼자 주무시는가 어쩌는가 보려고 찾아온 거죠” 


“고마워. 대안이”
이병아는 쓸쓸하게 웃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그에게 좀 앉으라고 권한다. 

대안이는 의자에 털썩 궁둥이를 내린다. 

이병아는 탁자에 놓았던 술잔을 들어 다시 입으로 가져간다. 

가만히 지켜보고 앉았던 대안이가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마님, 저도 매일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지 뭐예요.
오늘밤도 지금까지 잠을 못 자다가, 찾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왔어요.
마님이 보고 싶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구요.
마님이 주무시는 거나 보고 가려고...” 


“어머나, 이일을 어쩌나... 그런 소리 안하기로 했었는데...” 

“알아요. 그래서 죽고 싶은 생각뿐이라니까요. 난 죽어버릴 거예요”
대안이는 그만 복받치는 격정을 어쩌지 못하겠는 듯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이병아는 잔에 남은 붉은 빛깔의 고량주를 훌쩍 마저 마셔버린다.
그리고 잔을 떨어뜨리듯 힘없이 놓고 잠시 대안이의 울음소리를 하염없이 듣고 있더니, 그만 자기도 설움에 목이 메는 듯 흐흐흑 하고 숨을 다급히 몰아쉰다.
그녀의 하얀 볼을 타고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수춘이는 서문경으로부터 이병아와 대안이 사이를 감시하라는 분부를 받은 뒤로는 밤으로 여러 차례 잠이 깨이곤 했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박혀서 그런지, 여느 때 같으면 소변이 마려워서 한 번쯤 일어나는 게 고작인데,
서너 차례 절로 잠이 깨어서 일어나 살금살금 이병아의 침실 쪽으로 가보곤 하는 것이었다.
어떤 짜릿한 재미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조금도 그 일이 귀찮지가 않았다.
어디선지 누군가가 울고 있는 듯한 어렴풋한 기척에 수춘이는 잠을 깼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라더니, 그 울음소리가 꿈속에서 들린 듯도 하고, 실제로 귀에 와 닿아서 잠이 깨인 듯도 한 몽롱한 상태였다.
잠이 깨었으니 마님의 침실 쪽을 한 번 살펴봐야지 하고 이부자리 속에서 빠져나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있노라니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는가.
약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아마도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울음소리 같았다.


“야, 이것 봐라”
수춘이는 얼른 그러나 소리가 안 나게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마님의 침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수춘이는 마치 무슨 기가 막히는 먹이라도 발견한 밤 고양이처럼 두 눈이 반질거리고 있었다.
침실 문밖에 살그머니 걸음을 멈춘 수춘이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방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다름 아닌 바로 대안이와 마님이 아닌가.
대안이는 복받치는 슬픔을 어쩌지 못해 제법 어깨를 들먹여가며 울고 있는 것 같았고, 마님은 설움을 억누르며 훌쩍훌쩍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듯했다.


참 별일이었다. 이 깊은 밤중에 왜 둘이서 울고 있는 것일까...
수춘이는 숨을 죽이고 불빛이 가느다랗게 새나오고 있는 문 틈서리로 안을 엿보았다.
그러나 마님 앞에 놓인 술잔이 조금 보일 뿐 두 사람의 모습은 시야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술을 마시며 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잠시 후, 방안의 울음이 그치더니, 아직도 설움에 젖은 듯한 마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안아. 밤이 너무 깊었어. 이제 그만 돌아가 자도록 해. 응?” 

뜻밖에도 대안이는,
“예”
하고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수춘이는 놀라 후닥닥 주방으로 꺾어져 돌아가는 모서리에 몸을 숨겼다.
곧 문이 열리고, 대안이가 침실에서 나와 가만가만 사라져가는 게 느껴졌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서 수춘이는 서문경을 찾아갔다. 

거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서문경은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묻는다. 

“수춘이가 아침부터 웬일이지?” 

“간밤의 일을 보고 드릴려고요” 


“뭐? 간밤의 일이라니?” 

“간밤에 대안이가 우리 마님 침실을 찾아왔었지 뭐예요” 

“뭐라구? 그게 정말이야?” 

“예, 정말이에요. 한밤중에 무슨 우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애서 일어나 가보니까
글쎄, 대안이와 마님이 같이 울고 있지 않겠어요. 술을 마시면서요” 

“술을 마시면서 둘이 울어?” 

“예” 


“헛헛허...”
서문경은 뜻밖에도 껄껄 웃음을 터뜨린다. 수춘이는 약간 머쓱해진다.
웃음을 거두고서 서문경이 묻는다.
“술을 마시고 울기만 했나, 아니면 둘이 같이 자기도 했나?” 

“글세요, 그건 확실히 모르겠어요” 

“그걸 확실히 알아야지” 

“그때가 아마 자정이 지나도 훨씬 지나서였으니까,
둘이 같이 자고서 술을 마셨겠죠 뭐. 그러다가 이별의 시간이 되니까 운 거 아니겠어요” 

“음-”
방금 웃음을 터뜨렸던 서문경의 표정이 싹 바뀌어 심각하게 굳어든다. 


수춘이는 혀끝에서 굴러나오는 대로 나불나불 지껄여 댄다.
“울고나서 말이죠 마님이 인제 밤이 깊었으니 돌아가 자라고 하니까, 대안이가 예, 하고 순순히 돌아가더라구요.
그것만 봐도 벌써 먼저 둘이서 잔 게 확실하지 뭐예요.
안 잤으면 글쎄, 대안이가 그렇게 순순히 돌아갔겠어요. 안 그래요?” 

“음- 고이얀 것들 같으니라구”
서문경의 이마에 여덟팔자 주름이 거꾸로 우뚝 솟구치며, 한쪽 눈썹이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듯 바르르 떨린다.
약간 휘어진 콧대가 더욱 삐딱해지며 실룩거리기까지 한다. 

주인어른의 표정이 너무나 험악해지자,
수춘이는 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서문경이 옆방을 향해 냅다 고함친다. 

“아량이 거기 있느냐? 빨리 이리 오너라!” 

“예”
가냘픈 대답 소리와 함께 곧 아량이가 들어선다. 

“너 가서 대안이란 놈 당장 이리 데리고 와. 그놈 죽고 싶어 환장을 했으니, 오늘 죽여 줘야지. 어서 가라니까!”
아량이에게까지 냅다 호통이다. 

대안이는 아침을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마구간에 붙어있는 자기 방의 허름하고 좁은 침상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늘어져 누워 있었다. 


아량이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서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큰일 났어. 큰일 났다구. 주인어른이 너 빨리 오래.
간밤에 이병아 마님한테 갔었지? 수춘이가 주인어른한테 일러바쳤다구. 방금 말이야”
아량이도 옆방에서 들었던 것이다. 

“뭐라구?”
후닥닥 이불을 박차고 뛰어 일어난 대안이는 서문경의 거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마구간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한 마리 끌어내기가 무섭게 훌떡 올라타고
마구 대문간 쪽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줄행랑을 놓는 것이었다.
대안이가 말을 타고 도망을 쳐버리는 바람에 별안간 집안이 온통 뒤집히다시피 되고 말았다. 


그게 다른 일도 아닌, 바로 며칠 전에 여섯 번째 마님으로 들어온 이병아와 동침을 한 것이 발각되어 주인어른의 호출을 받자 두려운 나머지 그렇게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는 것을,
안 집안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어처구니가 업어서 벌어진 입들이 쉬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반금련까지도,
“어머나, 저런 저런... 별일도 다 보겠네”
하고 남들 못지않게 놀라며 혀를 내둘렀다.
자기도 일찍이 금동이를 유혹해서 은밀히 관계를 가지는 바람에 금동이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부친이 위독하다고 속여 귀향한 뒤로 돌아오지 않고만 그런 전력을 가졌으면서도 말이다.
이병아와 대안이의 그간의 내막을 잘 모르는 터이라,
반금련은 빨라도 이만저만 빠른 게 아니로군 하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이병아가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속으로 혼자 웃기도 했다. 


서문경이 격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려죽일 놈이 도망을 갔으면 갔지, 왜 남의 말은 타고 가느냐 말이야.
제 발모가지로 도망갈 일이지.
재수 없게 말까지 한 마리 잃어버렸잖아.
아이구 빌어먹을 놈, 더러운 놈...”
대안이를 놓친 것도 분하지만, 말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더 원통한 듯이 내뱉기도 했고,
“야 이년아, 너는 뭘 하고 있었어?
그놈이 마구간에서 말을 끌어내 타고서 도망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느냐 말이야?
응? 이년아, 네가 도망치라고 시킨 거 아냐?”
냅다 아량이에게 퍼부어대기도 했다.
그 녀석을 뒤쫓아서 잡아오도록 할까 했으나,


말을 타고 줄행랑을 놓았으니 벌써 성 밖으로 빠져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도리가 없을 터이니 헛일일 게 뻔해서 그만두기로 하고, 마구간지기와 붙어먹은 이 더러운 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서문경은
잠시 이병아에게 내릴 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당장 내쫓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집안사람들 앞에서 곤장을 치게 할 수 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방안에 가두어 놓고서 자기가 직접 매질을 하여 손과 발이 닳도록 빌 때가지 고통을 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녀를 여섯 번째 여자로 들여앉힌 지가 불과 며칠밖에 안됐는데, 공개적으로 징벌을 하는 것만은 아무래도 너무 가혹하고, 그녀에게 치명적인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서문경은 당장 견딜 수 없는 격한 감정을 풀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직접 이병아의 방을 찾아가서 우선 냅다 고함부터 내지르면서 시작하는 게 옳겠다 싶었다.
“어디 이년, 쌍판 좀 보자. 더러운 년...”
하고 내뱉으며 서문경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실의 한쪽 벽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회초리가 걸려 있었다.
서문경이 집안사람들, 특히 하인들을 다스릴 때 사용하는 매였다.
그것을 벗겨 오른손에 불끈 쥐고, 서문경은 거실을 나섰다.
새로 개축한 가옥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서문경은 일이 참 묘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아를 맞아들여놓고 한동안 찾아가질 않고 내버려두리라 마음먹긴 했으나
내심으로는 그녀가 제 발로 찾아오기를 바랬다.
밤에 침실로 찾아 들어와서 진정으로 지난 일을 사과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들어 그녀가 먼저 일을 시작해 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면 자기는 못이기는 체하고 슬슬 응해 주리라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일이 그렇게 돼야 자기의 체통이 설 것 같았다.
그저 그녀의 서찰에 적어 보냈던 사죄의 글만으로는
맺힌 감정이 제대로 다 풀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일이 터져서 자기가 먼저 찾아가게 되니 입맛이 소태 같았다.
한손에 매까지 들고서 가는 터이니 말이다.
현관을 들어서자
서문경은 냅다 호통부터 쳤다.
“이년 어디 있느냐? 썩 이리 나오지 못할까!” 

그러나 아무 기척도 없이 가옥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서문경은 냅다 쿵쾅쿵쾅...
발자국 소리가 울릴 지경으로 복도를 구르며 내실 쪽으로 다가갔다.
이병아의 거처인 내실 앞에 이르자,
“이년 뭘 하고 있는 거야!”
벌컥 고함을 내지르며 왈칵 거칠게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병아는 마치 대죄(待罪)를 하고 있는 수인(囚人)처럼 방 한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다소곳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화사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이미 일이 터지고 만 것을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대안이가 말을 타고 도주하고 서문경이 격노를 하자, 겁에 질린 수춘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좌우간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 마님에게 사실을 알려야겠다 싶어서 허겁지겁 달려왔던 것이다. 

수춘이로부터 얘기를 들은 이병아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새하얗게 질렸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하다가 그녀는 뽀도독 뽀도독 두어 번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냉정을 되찾은 듯 오히려 여느 때보다 월등히 가라앉은 차분한 태도로 무슨 생각에서인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늘 입는 옷을 벗고 개가해 올 때 입었던 예복으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그리고 탁자 둘레에 놓인 의자 한 개를 가져다가 방 한가운데에 놓고 거기 조용히 앉았다.
그러고는 살포시 두 눈을 감고 마치 정물(靜物)인 듯 미동도 하질 않았다. 

방안으로 성큼 들어선 서문경은 이병아의 그런 모습을 보자 주춤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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