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금병매(084) *자살소동 10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해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금병매(084) *자살소동 10
서문경이 들어서자,
이병아는 감고 있던 눈을 가만히 떴다.
약간 원망의 빛이 서린 듯하면서도 뭔가 체념을 한 것도 같은 그런 눈이었다.
공포의 기미는 조금도 내비치지가 않았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서문경은 속으로 야, 이것 봐라, 싶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예복을 말끔히 갈아입고 방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것부터가 그랬고, 또 댓새 전에 개가해 올 때와는 달리 눈에 띄게 파리해진 얼굴에 두 눈빛만 한결 그윽하게 빛나고 있는 것도 그런 느낌을 짙게 자아냈다.
그러나 곧 서문경은 냅다 호통을 쳤다.
“이년아,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거야? 날 바라볼 염치가 있나?”
이병아는 아무 말이 없다.
표정도 별로 달라지지가 않고, 눈을 살짝 내리 뜰 뿐이다.
“대답을 해보라구. 입이 열 개라도 대답을 못하겠지?”
“..........”
“마구간지기 녀석하고 붙어먹었으니 무슨 낯짝으로 변명을 하겠어.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구. 나한테 오기 전의 일은 불문에 붙이겠어.
과부가 남자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어젯밤에 또 그녀석하고 잠자리를 같이하니...
네년이 그런 분간도 없는 천덕스러운 계집인 줄은 미처 몰랐다구”
그제야 이병아는 살짝 떨구었던 눈을 반짝 치뜨면서 입을 연다.
“너무하시다구요.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요?
내가 어젯밤에 뭘 어쨌다는 거예요?”
“뭐라구? 허, 이것 봐라.
그래도 뻔뻔스럽게 날 속이려고 드네. 이년아 어젯밤에 그래 대안이란 놈하고 같이 안 잤단 말이야?
같이 붙어 자고나서 둘이 술을 마시면서 울기까지 했잖아.
그래도 잡아뗄 거야?”
“붙어 자기는 누가 붙어 자요. 봤어요?”
“본 사람이 있다구”
“그게 누구예요? 누구냐구요? 대봐요”
“..........”
“왜 못 대나요?
그렇게 어림짐작으로 사람을 잡으러들면 못쓴다구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어젯밤에 대안이가 찾아온 것은 사실이에요.
내가 하도 잠이 안와서 한밤중에 일어나 술을 마시고 있는데 찾아왔더라구요”
“그래서 둘이 술만 마시고 울기만 했다 그거야?”
“술은 나 혼자 마셨다구요.
왜 내가 한밤중에 일어나 술을 마셨는지 알아요?
당신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런 거예요.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데려다놓고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혼자 자도록 내버려 두는 법이 세상에 어딨어요.
그래서 분하고 원망스러워서 술을 마신 거라구요”
“흥!”
서문경은 콧방귀를 뀌고서 빈정거리듯이 내뱉는다.
“내가 왜 네년한테 안 왔는지 알아? 생각할수록 네년이 더러워서 그랬다구.
아무리 과부가 됐다고는 하지만 글쎄 붙어먹을 남자가 그렇게도 없어서 대안이따위 마구간지기 녀석을 유혹하느냐 말이야.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구역질이 나서 네년한테 못오겠더라 그거야”
“내가 대안이를 유혹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남자가 그리워서 유혹했던 건 절대 아니라구요”
“그럼 뭣하러 유혹했어?”
“당신한테 다시 돌아오고 싶은 심정에서 대안이를 중간에 넣어 이용하려고 그랬던 거에요.
아무리 내가 과부가 되어 남자에 굶주렸다고 하더라도 당신 말마따나 그런 마구간지기 녀석이 좋아서 유혹했겠어요?
“흥, 입은 있어서 말은 비단같이 하는군.
그게 사실이라면 왜 나한테 온 뒤에도 그 녀석과 놀아나느냐 말이야”
“놀아나기는 도대체 누가 놀아났다는 거예요? 정말 답답해서 못 견디겠네요”
“그럼 왜 대안이란 놈이 도망을 쳤지?
네년하고 같이 안 잤으면 무엇 때문에 도망을 치느냐 말이야”
“그거야 당신이 무서워서 그랬겠죠.
같이 자지도 안았는데 잤다고 잡아 죽일지도 모르니까요”
“뭐? 잡아 죽일지도 모른다구? 내가 대안이를 잡아 죽인단 말이야?”
서문경은 매서운 눈초리로 이병아를 쏘아본다.
이병아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서문경에게는 그 말의 뜻이 비수처럼 섬뜩하게 가슴에 와 꽂히는 듯했던 것이다.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는 격으로 이미 두 사람이나 살인을 주도한 터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중 한 사람은 바로 최근에 처치해버린 이병아의 남편이니 말이다.
서문경은 손에 쥐고 있던 가죽 회초리로 냅다 사정없이 이병아를 후려갈기며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야 이 쌍년아! 내가 사람을 잡아 죽이는 걸 보기라도 했나?
응? 이년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어. 야 이년, 맛 좀 봐라. 에잇! 에잇!...”
“으악-”
사정없는 매질에 그만 이병아는 비명을 내지르며 의자에서 굴러내려 방바닥에 나가뒹굴고 만다.
“그래 이년! 네년이 오늘 한번 죽어봐라. 죽어봐! 죽어봐!”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아윽- 아윽-”
서문경의 매질과 이병아의 비명소리가 온통 가옥 안에 진동한다.
서문경이 매를 들고 이병아를 찾아갔다는 말이 퍼지자. 곧 다섯 부인을 비롯해서 몇몇 하녀들이랑 노복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 방밖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예복을 입은 채 방바닥에 나가뒹굴며 비명을 내지르는 이병아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월랑은 큰일 나겠다 싶어서 후닥닥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보, 인제 그만해요. 사람 잡겠어요. 예? 그만하시라니까요”
애원하듯 서문경의 한쪽 팔을 붙들고 매달린다.
“이거 놔! 이년 오늘 정말 죽여 버려야겠어.
마굿간지기와 붙어먹은 년이 못하는 소리가 없다니까”
“우리 집안을 위해서 참으시라구요.
무슨 큰 변이라도 일어나면 어쩔려고 그래요.
예? 그만 참으세요. 저만큼 얻어맞았으니 인제 정신 차렸을 거예요”
말리면 더 격해지는 법이어서, 서문경의 매질은 한결 사나워질 뿐 좀처럼 누그러질 기색이 없다.
오월랑의 만류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자, 맹옥루가 방으로 뛰어들었고, 곧 이교아도 뒤따랐다.
그러자 반금련과 손설아도 자기들만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듯이 따라 들어가 서문경에게 매달렸다.
다섯 마누라들이 달려들어 애원을 하며 만류를 하니 도리가 없는 듯 그제야
서문경은 매질을 멈추고, 입가에 비어져 나온 거품을 손등으로 쓱 닦으며 내뱉는다.
“오늘 네년을 정말 죽여 버릴까 했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참는다구.
이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이병아는 그렇게 매질을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 듯
그 말이 귀에 들렸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사며,
“으흐흐흑...”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힘없이 흘린다.
울고 싶어도 울음도 제대로 안 나오는 그런 상태인 모양이다.
죽은 듯이 엎어져 있질 않고, 그처럼 꿈틀거리며 흐느끼는 게...
서문경은 오히려 비위에 거슬리는 듯 이번에는 매를 픽 던지고서 냅다
그녀에게로 달려든다.
“이 쌍년, 울기는 왜 울어!”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예복을 왈칵 잡아서 홱 낚아챈다.
“무슨 염치로 이따위 예복은 꺼내 입고 있는 거야.
네깐 년이 예복을 입을 자격이나 있나!”
마구 예복을 잡아 찢듯이 하며 벗겨내기 시작한다.
이병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옷이 안 벗겨지도록 바둥거린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기어이 그녀의 몸에서 예복이 갈기갈기 찢기듯 벗겨지고 만다.
서문경은 그것을 아무렇게나 저만큼 방바닥에 휙휙 던져버린다.
찢겨진 예복이 펄럭거리며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는 다섯 여자들의 표정은 착잡하다.
무척 안됐다는 표정들이면서도 한편 그것 시원하게 잘 됐다는 그런 기색들이
내비치기도 한다.
내실에서 그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수춘이는 자기 방 한쪽 구석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두려움과 함께 심한 자책감에서 오는 울음이었다.
어쩌면 이번의 엄청난 일이 전적으로 자기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았다.
자기의 혓바닥만 날름날름 가볍게 놀리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까닭이 없었다.
주인 어른이 자기를 침실로 불러 동침하던 날 밤,
“너의 아줌마는 어떻게 지냈지? 혼자서 곱게 지내던가, 그렇지 않으면 찾아오는 남자가 있던가 말이야”
하고 물었을 때, 아무도 찾아오는 남자가 없었다고 살짝 한마디 거짓말만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을 텐데, 대안이를 들먹이는 바람에 결국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만 게 아닌가.
너무 정직한 것도 때로는 화근이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막급이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대안이가 마님 침실을 찾아온 사실도 모르는 척해버렸으면 됐을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고 방정맞은 데가 있어서, 오히려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듯이 얼씨구나 잘됐다 하고
재빨리 주인어른을 찾아가서 고스란히 일러바치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야속했다.
더구나 확실히 눈으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둘이 같이 자고나서 술을 마시고, 울었을 게 틀림없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는가.
한술 더 떠서 말이다.
이제가지 모셔온 마님을 그처럼 배신하다니, 생각할수록 수춘이는 자기가 몹시 나쁜 계집애인 것 같아서
두 눈을 찔끔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흐느끼기도 했다.
그러고 있는데, 내실 쪽이 좀 조용해지더니,
“허, 그것 참, 더러운 년 때문에 오늘 아침부터 기분 잡쳤네. 잡쳤어”
하고 내뱉으며, 주인어른이 내실에서 나와 복도를 성큼 성큼 지나가는 기척이 들렸다.
그제야 수춘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일어나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내의만 입은채 내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나가떨어져서 기절이라도 한 듯 꼼짝도 않고 늘어져있는 이병아를 맹옥루가 다가가서 안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수춘이는 놀라 그만 다시 울먹이며, “아이고 마님, 마님, 정신 차리세요. 예?예?”
하고 저도 달려들어 함께 거든다.
지켜보고 서있던 오월랑이 냅다 수춘이에게 쏘아붙인다.
“이년아!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너는 알겠지?
못된 년. 제 주인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다니...
윗것이나 아랫것이나 똑같다니까. 에잇 덜된 것들...”
서문경이 수춘이를 불러들여 동침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는 오월랑은
이미 내막을 짐작으로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터이라, 주인이나 종이나 두 년이 다 구역질이 난다는 듯이, 그만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가버린다.
난생 처음 그처럼 사정없는 매질을 당하고, 또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강제로 옷이 벗겨지는 그런 수난까지 겪은 이병아는
몸과 마음이 함께 멍이 들어 그날부터 중환자처럼 되어 침상을 병상 삼아 드러눕고 말았다.
수춘이가 뉘우치는 마음에서 극진히 간호했으나,
기력을 조금 되찾은 뒤에도 이병아는 도무지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이 없었다.
수춘이가 미음을 쑤어다가 떠먹여 줄 때도 반쯤 눈을 감은 채 표정을 잃은 듯한
그런 얼굴로 말없이 받아먹기만 했다.
용변을 보러 갈 때 역시 아무런 미움도 원망도 없는 듯이 순순히 수춘이의 부축을 받곤 했다.
그리고 넋 나간 사람처럼 멀뚱히 눈을 뜨고 누워서 천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스르르 잠이 들곤 하는 것이었다.
댓새가 지나자, 이병아는 제 몸을 혼자서 가누고 용변 길을 오가게 되었다.
현저히 기력을 되찾기는 했으나, 마음은 역시 실의(失意)에서 벗어나질 못한 듯
파리하고 무표정한 그런 얼굴이었다. 여전히 수춘이에게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밤이었다.
수춘이는 촛불 곁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문득 말을 타고 도망을 쳐버린 대안이 생각을 떠올렸다.
대안이가 마구간의 양지바른 벽에 기대서서 마님이 기거하는 이 가옥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좀 짜릿해 왔다.
어디로 도망을 가서 지금쯤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마님을 못 잊어서 이 밤에 혼자 이부자리 속에 엎드려 울고 있는 것이나 아닐는지...
자책감에 젖으며 쓸쓸한 기분이 되어 뜨개바늘을 가만 가만 놀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아윽-”
쥐어짜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수춘이는 얼른 뜨개질을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귀를 곤두세웠다.
“으으윽-”
목이 졸리는 듯한 무거운 신음소리였다.
수춘이는 정신없이 방에서 뛰어나갔다.
마님의 침실쪽이었다.
후닥닥 침실로 뛰어든 수춘이는 그만 질겁을 하고 말았다.
마님이 한쪽 기둥의 대못에 줄을 걸어 목을 매달고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악-”
놀라 자기도 모르게 냅다 소리를 내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수춘이는 우선 목숨부터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른 주방으로 뛰어가 식칼을 들고 왔다.
늘어진 마님의 발밑에 넘어져있는 의자를 바로 세우기가 바쁘게 올라서서
목을 맨 줄부터 싹뚝 잘랐다.
이병아의 몸뚱어리는 무슨 커다란 고기 무더기처럼 털썩 방바닥에 떨어졌다.
'좋은글,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병매 (083) *자살소동 9 (0) | 2022.11.07 |
---|---|
야화 (108)마늘 한쪽 (0) | 2022.11.07 |
종교는 실천의 종교이다 (0) | 2022.11.04 |
[오늘의 부처님 설법] (0) | 2022.11.04 |
급보!!! (0) |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