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조명장소

교동읍성 20220918

한마음주인공 2022. 9. 19. 16:58

오랜만에 교동도에 가서 교동읍성을 처음 보게 되었다 교동도에 읍성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 것이 교동도의 역사의식을 한층 더 갖게 된다

비록 지금은 강화도의 일계면에 해당되지만 과게에는 그 위상이 강화도 위에 존재했던 것 같다

 

유량루

 

 

읍성이라 함은 읍성 안에 관아가 있어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겡게를 확고히 하여 이 섬 전체를 지켜

주는 요새 같은 진지 엿을 것이다 그런 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고 이런 사실이

교동도에 있다는 것이  교동도의 지리적 특징이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교동도에 직접 가서 교동읍성을 찾아보고 관련 내용을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동읍성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 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 통 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 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 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 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 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

 

 

교동읍성 성문안쪽 마을길과 주택들20220918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의 교동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으며, 군데군데 문을 내어 바깥과 통하도록 만들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로,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두었고, 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고 하였다.

조선 인조 7년(1629)에 처음 쌓았으며, 영조 29년(1753)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성문을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고종 27년(1890) 동문과 북문을 다시 세웠다고 하나, 현재는 3문이 모두 남아있지 않다.

 

 

교동읍성에서 바라본 석모도 20220918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이 남아 있다. 2018년 남문인 유량루(庾亮樓) 문루가 복원되었다. 향후에는 웅성과 성벽.치 복원이 될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