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진강산 산행1923

한마음주인공 2019. 2. 7. 12:53

 

 

진강산 산행20190203

 

*산행코스: 양도면 능내리 가능입구----진강산남쪽능선길----진강산정상을

                되돌아 오는 코스

 

 

*위치도

 

 

 

 

신년 새해가 밝아온지 32일 만에 양도면 삼흥리와 하일리 능내리에 걸쳐있는 진강산을찿게 되었다 그러니까 화도면에 있는 마니산을 갔다가 오는 길 늧은 시간 오후4시에 진강산 남쪽에 있는 능내리에 도착했다

 

 

 

*가릉입구

 

 

 

 

일단 배낭을 차에 놓고 스틱만 가지고  홀로 가릉옆을 지나 늘 다니던 산길로 오르니

정자하나가 나오고 조그만 개울을 건너니 2갈래길이 나와 좌측길로 들어 서려는데

강화 나들길 저어새 금속표시 안내 지주목을 누군가 회손하여 눕혀 놓여있다

 

 

 

 

 

 

 

이곳 지점이 강화나들길(왕능길)과 진강산 오르는 산길과 겹치는 지점이다 빨리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빠른걸음으로 걸어오르니 로프 지주목 옆길을 걷게

된다 

 

 

 

 

 

 

 

 

진강산으로  오르는 이길은 소나무가 잘자라고 있는것이 특징이며 편마암이 여기

저기 갈색과 붉은색돌색이 특징이며 먼 예전 용암이 끓어 오른 돌파편이 많이보인다

그리고 동서로 경계를 이루는 암들이 기묘하게 펼쳐진다

 

 

 

 

 

 

*능선길에서 본 이정표

 

 

 

 

 

 

중간 중간 큰 소나무와 암석이 매우 아름다운 오름길 산길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모진 바람과 자연을 이겨낸 소나무가 많기도 하다 오르면서 서측으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이 지금 오르는 시간과 일치하여  찬란한 황금 갯벌 바다을 이룬다

 

 

 

 

 

 

 

*오름길에서 바라본 하일리 방향

 

 

이 산길은 많은 사람이 단여서인지 산길은 잘 정돈 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며 올라온지 40분이 되어 진강산 보리수 나무 있는곳에 닿게 된다

르면서 아무도 사람이 없다

 

 

 

 

 

 

 

 

진강산 벌대총 전설 이야기 안내판을 읽어보고 벌대총  말 발자국을 살펴보며 드디어

진강산 정상에 서게된ㄹ처지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하일리 앞바다와 저녁ㅣ노을이

갯벌에 반사되며 나를 위로해 준다

 

 

 

 

*능선길 소나무들

 

 

 

 

 

 

 

정상에서 동 으로 김포문수산과 인천 문학산이 그리고 북으로 강화 고려산과 혈구산

이 서측 으로 석모도 해명산이 눈부스게 햇살에 반사된다 오늘 비록 늧은시간에

진강산에 오르니 저녁일몰과 겹처 더욱더 아름다운 서해를 보게된다

 

 

 

 

 

 

 

 

 

 

 

이어서 펼쳐지는 삼흥리 양도초교와 외포리 마을 그리고 바로 아래 동광중학교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그시절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잠시 산아래를 내려다 보며 있다가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다

 

 

 

 

*황금 노을바다

 

 

 

 

 

 

 

 

 

 

 

이내 발걸음을 돌여 진강산과 이별 하고 하산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중간지점에

오니 어둑 어둑 해지며 주위가 캄캄해져 온다  내려오며 오늘 진강산을 참 잘오 게

되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진강산에 인사하게 된다

 

 

 

 

 

 

 

 

 

 

 

 

*마니산 방향

 

방금 오르내리던 진강산강화가릉에 대한 아쉬움으로 진강산가릉을 인터넷 백과사전에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진강산 가릉

강화 가릉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중 하나이다. 강화 가릉 외에도 이 시기에 강화 석릉(碩陵), 강화 곤릉(坤陵), 강화 홍릉(洪陵) 등의 왕릉이 조성되어 현존하고

고려시대 강화에 가릉이 조성된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관리 소홀로 봉분이 붕괴되고 주변 석물들이 없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명은 가릉(1992년 3월 10일 지정)이었는데, 2011년 강화 가릉(7월 28일 고시)으로 변경되었다

 

 

 

 

 

 

*용암이 끓어 오른 바위들

 

 

 

 

 

순경태후 김씨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집권자 중 한 명인 최우(崔瑀)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원종이 태자가 되기 이전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1236년(고종 23) 충렬왕(忠烈王)을 낳고, 1244년(고종 31) 훙서하였다.

 

 

 

 

 

 

 

 

 

 

 

원종이 왕위에 올라 1262년(원종 3)에 추봉(追封)하여 정순왕후(靜順王后)로 삼았고, 아들 충렬왕이 즉위하여 1274년(충렬왕 즉위년) 12월에 순경태후로 추존(追尊)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원(元) 무종(武宗)이 제서(制書)를 내려 고려 왕비로 추봉하였다.

 

 

 

 

 

 

 

*진강산 보리수 나무 쉼터

 

 

 

 

 

*벌대총 말 발자국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1270년(원종 11)에 환도하였기에, 순경태후의 능은 개경이 아닌 강화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화 가릉은 강화 진강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 위치한다

 

 

 

 

 

 

 

 

 

 

 

 

 

강화 가릉은 개경의 왕릉과 비교할 때 형식상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규모가 작은 편이다. 능역은 가로 11m, 세로 14m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왕릉의 제도에 따라 묘역에 단이 구획되어 있는데, 강화 가릉의 경우 3단으로 이루어졌다. 봉분은 지름 7.6m, 높이 2.5m 규모다. 가로 2.55m, 세로 1.68m, 높이 1.78m 규모의 석실이 존재하는데, 석실 내에 부장대는 없고, 벽화의 흔적이 존재하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다

 

 

 

 

 

 

*석모대교도 보인다

 

 

 

 

봉분 북동쪽과 북서쪽 모서리에 석수(石獸)가 있으며, 석실 전면에 석인상이 석실을 중심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봉분 서편에는 하대석 및 옥개석, 동자주가 진열되어 당시 능역에 배치된 석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진강산 인증샷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고려시대 왕실의 묘제에 대하여 직접 접할 수 있는 남한 내 문화유산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 가릉을 포함한 강화 소재 고려 왕릉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진강산 바다노을

 

 

 

 

 

*진강산 정상에서 2019.02.03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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