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CEO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정동일 교수의 리더십 이야기](1) /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경영학)
스타벅스, 창업주 슐츠 복귀 소식에 주가 10% 폭등 애플에 복귀한 잡스, 10년 만에 주가 30배 끌어올려
CEO 리더십에 따라 조직의 목표 20~40%가 좌우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20%는 매년 CEO '퇴출'
사례 #1: 1997년 미국 최대 전화회사 AT&T의 CEO로 마이클 암스트롱(Armstong)이 취임했다. 당시 AT&T는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미국 장거리 전화시장 자율화 여파로 버라이존(Verizon)과 같은 새로운 경쟁회사들이 출현하고, 수익률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온다는 소식에 회사의 가치가 하루 만에 40억 달러(현 환율로 약 3조 9000억원) 증가했다.
사례 #2: 2008년 1월 8일 미국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보였지만, 스타벅스의 주가는 무려 10.3%나 폭등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회사의 창업주인 하워드 슐츠(Schultz)가 다시 CEO로 복귀해 경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사례 #3: 작년 11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쇼크로 위기를 겪고 있던 씨티그룹의 척 프린스(Prince) 회장은 회사 순이익이 57% 격감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또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최고 경영자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탠리 오닐(O'Neal) 전 메릴린치 회장 역시 서브프라임 투자로 8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낸 책임을 지고 비슷한 시기에 퇴임했다.
■ CEO의 리더십이 기업 성과에 실제 영향을 미칠까?
위 3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식시장과 주주가 CEO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점일 것이다.
유능한 CEO가 취임을 한다는 소식에 회사 가치가 하루 만에 몇십 퍼센트가 올라간다. 반대로 회사의 상황이 나빠지고 실적이 기대치를 충족 못하면 이 모든 잘못이 CEO에 있는 것처럼 희생양으로 삼는다. 매년 미국 포천(Fortune)지 선정 500대 기업의 CEO 중 20% 정도가 회사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통계도 있다.
리더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았을 법한 질문 중 하나가 바로 CEO의 가치에 관한 의문이다. 과연 CEO의 리더십이 조직의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면 그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CEO가 가진 조직에서의 상징적 위치를 생각한다면 쉽게 "yes"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CEO의 리더십과 조직의 성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직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이 크면 클수록 이들 간의 상관관계가 복잡해진다. 오죽하면 CEO를 '조직의 성공과 실패에 모든 책임을 지지만,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들에 대한 통제력은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정의하기도 하겠는가?
■ 리더십의 로맨스?
그래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 리더십 학자들은 리더십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과장되거나 남용되어 사용돼 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시각을 '리더십의 로맨스(romance)'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뭔가 원인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어떤 기업의 실적이 아주 뛰어나거나 혹은 나쁘게 되면,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아주 편리한 '설명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역시 능력 있는 CEO가 오니까 이 회사 실적이 좋아지는군!' 내지는 '작년에 CEO가 새로 추진했던 그 형편없던 신사업 때문에 올해 우리회사 실적이 이렇게 형편없어졌군!"과 같은 말들이다.
실제로 이런 경향이 있는지 입증하기 위해서 이들 학자들은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즉 1972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34개를 표본 추출, 이들 기업의 CEO에 대한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에 몇 번 나왔는가를 조사했다. 그리고 기사의 빈도 수를 매년 각 기업의 경영 성과와 비교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기업의 실적이 매우 좋았던 해와 매우 나빴던 해의 기사 건수가 실적이 평균 수준이었던 해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또 1929년부터 1983년까지 매해 미국 대학에서 출간된 리더십과 관련된 박사 학위 논문의 편수를 조사해 보았더니 미국의 경제가 월등히 좋거나 혹은 월등히 나빴을 때 논문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들이 CEO의 리더십과 조직 성과간에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필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리더에 대한 기사가 늘어나고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지는 것은, 단지 우리가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적당한 구실을 찾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조직의 최고 리더로서 CEO가 하는 모든 결정이 조직의 성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우리의 신념이자 현실의 표현일 뿐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한 조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가의 20∼40% 정도는 그 조직의 CEO가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에 기인한다고 한다. CEO가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리더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Jobs)이다. 1997년 9월 CEO로 복귀한 잡스는 탁월한 창의력과 비전으로 5달러 남짓하던 주가를 10년 만에 150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잡스가 CEO로 복귀한 직후에 애플의 주식에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현재 3600만원을 쥐게 됐을 것이다.
얼마 전 애플은 포천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는데, 거기에 흥미로운 부연 설명이 달려 있었다. 역대 1위 기업 중 CEO 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플의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가는 몇 년 전 잡스가 희귀한 췌장암에 걸렸다는 뉴스가 보도된 다음 날 여실히 입증됐다. 애플의 주가가 2.4%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월가의 한 유명한 투자분석가는 "만약 어떤 이유든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난다면 애플의 주가는 하룻 밤 사이에 20% 정도 폭락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 CEO의 세 가지 역할
그렇다면 수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의 CEO가 어떻게 기업 성과에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조직의 최고경영자로서 CEO가 수행해야 할 세 가지 역할 때문이다.
첫째가 '꿈꾸기(dreaming)'이다. 꿈꾸지 않는 리더는 죽은 리더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꿈꾸기는 조직의 미래를 책임지는 CEO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한마디로 꿈꾸기는 우리 회사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소비자와 주주들에게 비칠 것인가에 관한 포괄적인 고민과 노력의 과정이다.
CEO의 두 번째 역할은 '실행하기(executing)'이다. 역사적으로 탁월한 비전으로 유명한 CEO는 많았어도, 효과적인 실행으로 유명한 CEO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장기간 묵묵히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실천하는 것 보다 더 신나고 명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CEO의 가치는 꿈꾸기보다 실행하기에서 빛이 난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실현 가능한 목표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우선 순위에 따라 회사의 소중한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 포지셔닝(positioning)과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을 통해 어떻게 경쟁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처할 것인가? 오랫동안 탁월한 경영 성과를 유지한 CEO들의 비결 역시 꿈꾸기 능력보다 비전과 전략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능력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가 '격려하기(motivating)'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인 스티브 발머(Ballmer)의 원숭이 춤을 본적이 있는가? 전 사원 앞에서 원숭이처럼 소리 지르며 "나는 이 회사를 정말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스티브 발머의 모습에서 필자는 리더의 진정한 치어리딩의 모습을 보았다. 숨이 넘어갈 듯 고함을 지르며 격려하는 CEO를 보며 MS의 종업원들은 '구글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 CEO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CEO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그렇기에 많은 CEO들이 본능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찾아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CEO로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길 원한다면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이 '현재'가 아닌 '미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가 CEO로서 갖는 모든 고민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CEO의 목표가 조직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격려하기가 CEO의 세가지 역할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직원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걸 모두 해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외적으로도 주주가 원하는 것과 회사의 전략적 방향이 단기적으로 충돌한다면, 단기 성과를 바라는 주주에게 '노(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포천의 표지에 인드라 누이(Nooyi) 펩시 CEO가 "만약 여러분(주주)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 회사의 두 자리 수 성장이라면 나는 여러분이 원하는 CEO가 아닙니다"라고 외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 있는 CEO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와 자신만의 핵심가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동일 교수는
뉴욕 주립대학교 경영학 박사(리더십 전공)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경영대학에서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2004년 미국 경영학회 서부지부(Western Academy of Management)가 수여하는 '올해의 유망한 학자상(Ascendant Scholar Award)'을 수상했다. 리더십 연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The Leadership Quarterly'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입력 : 2008.04.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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