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스크랩] 허준이 스승을 해부했던 얼음골 동의굴

한마음주인공 2008. 10. 27. 17:18

 

 

 


   한국 의학사상 최초로 시신해부가 이루어진 굴

 


   밀양의 얼음골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얼음골 사과가 생각난다면 틀림없이 과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얼음골 사과는 사과내부에 꿀이 박혀 있을 정도로 당도가 매우 뛰어나 고가에 팔린다.


   이와 같은 사과가 생산되는 것은 아마도 얼음골의 자연현상 때문일 것이다. 얼음골은 천황산(1,189m) 북쪽 600∼750m 기슭에 3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로,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된 곳이다. 더위가 시작되는 6월 중순부터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여, 8월이면 계곡 바위틈마다 석류알 같은 얼음이 박히며, 이러한 현상은 9월까지 계속된다. 그러다 처서(處暑)가 지나 찬바람이 불어오면 얼음이 녹고, 겨울이면 바위틈에서 15℃ 내외의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이상기온현상이 일어나는 신비로운 골짜기로, 밀양 4대 기적의 하나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풍혈현상(風穴現象)이라고 한다. 더운 바깥 공기가 바위틈의 구멍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어갈 때 차가운 바위 표면을 스치면서 공기의 온도가 매우 낮아진다. 이렇게 차가워진 공기가 땅속을 흐르는 찬 지하수와 함께 흐르다가 다시 좁은 바위틈으로 나오면서, 높은 바깥 기온에 부딪힐 때 단열냉각현상이 일어나, 그 공기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며 얼음이 맺힌다. 그러므로 외부 온도가 높을수록 얼음이 어는 현상은 더욱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반면에 겨울이면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자료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밀양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타고 남명리에 이르면 얼음골 입구이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얼음골

 


   산뜻한 단풍을 뒤로하고 별장처럼 보이는 산뜻한 건물을 지나면 천황사이다. 천황사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철책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얼음골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저 평범한 너덜지대 같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은 오히려 얼음이 녹는 시기이니 과학에 문외한인 글쓴이로서는 그냥 별로 감흥이 일지 않는다.

 

 

             별장 같은 집(1)

 

              별장 같은 집(2)

 

 

               얼음골 결빙지 

 


   얼음골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약 30분 정도 쉼 없이 오르면 바로 동의굴이다. 천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살짝 왼쪽으로 벗어난 곳, 깎아지른 절벽아래 천연의 동굴이 있다. 사람들이 한 개씩 쌓아 올린 돌무더기만 보일 뿐 매우 평범해 보이는 굴이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의학상 최초로 시신의 해부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냉장(냉동)시설이 없던 당시 시신을 해부할 수 있는 최적지로 이곳 얼음골이 가장 타당했다고 한다.

 

                                    삼거리에서 바라본 동의굴 

 

 

 

                                     바위벼랑 아래의 동의

 

      
   의성(醫聖) 유의태 선생은 조선 중기 선조 때 명의로서 이름을 떨치며 의학과 약학을 연구, 자연 속에서 한국의학의 근간을 세운 의학계의 선구자이다.


   스승 유인태는 허준을 만나 자신의 모든 의술을 전수했다. 그러나 당사는 유교사상 때문에 인체내부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유의태는 허준에게 얼음골로 급히 오라는 파발을 띄웠다. 스승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허준 앞에는 왕골자리에 반드시 누워 자진한 스승의 시체와 유서가 놓여 있었다.


   사람의 병을 다루는 자가 신체의 내부를 모르고서는 생명을 구할 수 없으니 비록 병든 몸이나마 제자에게 주니 정진의 계기로 삼으라는 내용이었다. 유서 앞에 꿇어앉은 허준은 험난한 의원의 길을 가겠다고 명세를 하고 나서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여 오장육부와 인체내부를 공부하였다. 이와 같이 스승의 살신성인의 덕택으로 명의가 되어 불후의 명작인 "동의보감"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의(太醫) 허준은 스승 유의태에게 약학, 의학, 침구학,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의.약학 일체를 전수받아 일찍이 내의원에 들어가 선조의 옥체를 돌보았으며, 채약법, 수제법 등을 기록, 1596년부터 동의보감 편술에 들어가 정유재란을 겪으면서도 편찬작업을 속개하여 1610년에 의학지식을 총망라한 동의보감 25권을 완간하였다.


   그가 평생의 원력으로 산고끝에 펴낸 동의보감은 5백여 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서 수 십 차례나 간본되어 동양 최고의 의서로 추앙. 존중받고 있다.


   동의굴 입구에는 휘어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굴을 들어다보거나 안으로 들어갈 때 옷깃을 여미게 한다. 현재 동의굴은 수 차례의 자연재해(태풍)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었지만, 자연을 이용한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의술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엿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사립문 역할을 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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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펜펜의 나홀로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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