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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소 싸움 장과 운강고택 방문 20231207

한마음주인공 2023. 12. 19. 16:11

오늘은 청도에 간 김에 청도소싸움장과 운강고택을 만나러 갑니다 티브에서 소 싸움하는 소 기르며 훈련을 어느 시골

부부가 소싸움을 하는것을 인간극장에서 보았기에 이번 기회에 소싸움 장을 보기로 하고 청도  소싸움장으로 차를 

가지고 가게 되었다     

 

이렇게 시골 지역에 소싸움장을 설계한 이유가 아마도 이곳 지역이 소를 많이 사육하는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곳에서는 소를 이용한 소싸움이 유래 된듯하다 마침 내가 간 날을 겨울이라서 소싸움 경기가 없어

아예 입장이 불가하다고 관리인을 말을 해 들어가지는 못하고 외부 소싸움경기장과 그 주변에 소을 이용한 조형물들만

보게 되었다 

 

 

소싸움장은 원형 경기장 안으로 마치 민속 씨름하는 것처럼 경기장 안에서 소가 상대를 노려보고 전력을 다해 상대를 지주 하며 치고받고 하며 그 결투를 사람이 줄기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이 동물의 결전을 보고  잇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스페인에서 소를 이용한 경기와 비슷한 것 같다 

 

 

아울러 소싸움장은 소 럼스스킨 병 확산으로 중단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소싸움장을 이요한 경기장이 이곳 청도에 있다 하니 청도는 예전부터 소싸움의 우리나라 유일의 소싸움 고장 같다 

소싸움경기장을 실제로 보지 못하고 다시 나와 우리는 운강고택이 있는 지역으로 이도 했다 이곳은 밀양바씨 집성촌이 있는 곳이라고도 하며 이곳 군수의 사택이었던 곳이라 한다 

 

청도소싸움장 매표소  20231207

 

얼마 나를 달려 운강고택에 도착하였으나 이곳도 출입문이 평일인데도 개방되지 않아 담장너머로 운강고택을 멀지 감치

보아야 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여러 채의 고택이 합쳐서 많은 고택이 줄지어 이어지고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특징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청도 운강고택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청도 운강고택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26년(영조 2)에 입향조 박숙(朴淑)이 처음 세웠다고 한다.

초창기의 규모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처럼 규모가 커진 것은 1824년(순조 24) 그의 현손(玄孫)인 운강 박시묵(朴時默)이 중건하면서부터이다.

 

 

그 뒤 1905년 운강의 증손인 박순병(朴淳炳)이 다시 증수하였다고 한다. 이 터는 원래 입향조인 박숙이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여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은거하던 곳이었다고 전한다.

운강도 후학양성에 크게 주력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는 강학소절목(講學所節目)을 마련하고 교육기관으로서의 기틀을 세워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이 집 대문에는 김충현(金忠顯)이 쓴 ‘雲岡故宅(운강고택)’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청도 운강고택에서    20231207

 

주택 전체의 건물배열은 사당을 맨 안쪽에 두고 그 앞에 두 개의 튼입구자형 건물군을 결합시킨 형태이다. 즉, 안채를 중심으로 한 튼입구자형 건물군과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튼입구자형 건물군이 결합되어 9동 80칸의 큰 집을 이루고 있다.

 

 

청도 운강고택  20231207

 

 

주택으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며 대지도 1,700여 평이나 되어 두 개의 넓은 안마당과 사당 앞의 밸류원(百榴園)터, 안채 후원, 사랑채 후원 등 넓은 공간을 여유 있게 두었다. 안채와 사랑채 후원에는 약간의 감나무와 매화나무들이 남아 있다. 안방에는 찬마루와 찬방이 부설되어 있고, 대청에도 여름철을 위한 잔광이 따로 마련되는 특색을 보인다. 안마당 끝에는 양통(兩通) 6칸의 곳간과 장류와 주류를 저장하던 4칸의 광채가 있다.

 

청도 운강고택  20231207

 

 

5칸의 안행랑에는 방앗간과 주인과 비복이 따로 쓰는 측간도 있어 설비의 완벽성을 보이고 있다. 행랑채의 앞마당에는 방형의 떡판돌이 있다.

곳간 옆 사랑채와 연결된 2칸 방은 뒷사랑인데, 이 방은 내당 여인들이 친가에서 온 남자들과 상면하던 방이다. 뒷사랑과 안곳간은 연접되어 있는데 그 연접부의 마루 밑을 터서 협문을 내었다.

 

 

이 협문은 안채에서 사랑채 후원을 지나 대문에 이르는 통로로서 내외의 구별이 엄격하던 당시에 부녀자들이 사랑채 앞을 피하여 드나들도록 마련된 문이다.

중 사랑채는 책방이 1칸 있고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이 있어 서당으로서의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다양한 수장고(收藏庫)와 내외분별에 치중한 설비와 공간, 주종을 명확히 구별한 측간, 서당의 존재 등은 이 집의 합리적 구성과 다양한 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강 고택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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