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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 (147)은주머니

한마음주인공 2023. 2. 23. 15:49

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야화 (147)은주머니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 작은별밭과 함께 공유 합니다

 

춘천 스카이워크에서   20230219

 

야화 (147)은주머니 

포토뉴스
 조범은 뼈대 있는 집 자손이지만 윗대에서 가세가 기울어져 어깨너머 독학으로 근근이 글을 깨우쳐 원주 고을 관아의 사령자리를 얻었다. 쥐꼬리만한 녹을 받아 노모를 모시고 착한 아내와 아들 셋, 딸 하나 일곱 식구가 가난하게 살지만, 조범은 천성이 정직하고 성실해서 남의 것을 탐하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밤새도록 관아에서 일을 하고 새벽녘에 집으로 오는데 발에 차이는 게 있어 주워 보니 묵직한 비단주머니였다. 주머니를 열어 본 조사령은 깜짝 놀랐다. 새벽 그믐달빛에도 눈이 부시도록 번쩍이는 은덩어리들이 가득했다. 


 ‘이걸 떨어트린 사람은 지금쯤 얼마나 속이 탈까.’ 

 그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길가에서 은주머니 주인을 기다렸다. 얼마 후 기골이 장대하고 수염이 텁수룩한 남정네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형씨, 주머니 하나 못 봤소?” 

 “무슨 색이오?” 

 “노란색 비단 주머니요.” 


 조사령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등 뒤에 쥐고 있던 주머니를 돌려주자 잽싸게 낚아챈 그 사람은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조사령이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삽짝을 흔들어 나가 보니 주머니를 찾아간 그 사람이었다. 조사령은 주머니 속의 은이 모자란다고 생떼를 쓰려는 게 아닌가 하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데 그 사람은 “나하고 술 한잔하자”며 다짜고짜 팔을 잡아끌었다. 

 밤길을 한참 걸어 새벽 장꾼들을 받으려고 막 문을 연 주막으로 들어갔다. 구석방에 마주 앉아 뜨끈한 막걸리 한사발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켠 주머니 주인이 고개를 푹 떨구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소반에 떨어트렸다. 

 “나는 도둑이오.” 

 조사령은 깜짝 놀랐다. 또다시 긴장된 침묵이 방을 가득 채웠다. 


 “보아하니 형씨 집도 가난에 찌든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은주머니를 갖지 않고 주인에게 돌려주려 한 것이오, 글쎄!” 

 한참 말이 없었던 도둑은 목이 메어 “나는 소·돼지보다 못한 놈”이라며, “황첨지네 집에서 훔친 이 은주머니를 되돌려주려는데 함께 가자”고 조사령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이른 아침, 못 보던 남정네 둘을 맞아 헛기침만 하고 있는 천석꾼 부자 황첨지에게 도둑이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은주머니를 내밀었다. 황첨지가 큰 기침을 하더니 “나는 도둑맞은 적이 없소. 그 은주머니는 내 것이 아니오.” 도둑도 놀라고 조사령도 놀랐다. 

 “분명히 지난밤 삼경 녘에 제가 어르신 댁에 들어와 다락 속에서 훔쳤습니다.” 

 “어허 참, 나는 은주머니를 거기 둔 적이 없소.”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도둑과 조사령은 쫓겨나다시피 황첨지 집에서 나왔다. 이번엔 다시 길에서 두 사람이 서로 은주머니를 떠넘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은주머니는 도둑이 가져갔다.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리를 다쳐 관아에서 나온 조범은 화전 밭뙈기 농사로 입에 풀칠을 하고, 황첨지는 늦게 본 외아들이 투전판에 빠져 집까지 날리자 문중 제실 방 한칸에 처박혀 목숨을 부지했다. 

 서설이 펄펄 내리던 설날. 허우대가 멀쩡한 장부가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고리짝을 짊어진 하인 일곱을 거느리고 황첨지에게 세배를 왔다. 바로 은주머니 도둑, 그 사람이다. 거상이 되어 황첨지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보름 동안 원주에 머물며 황첨지가 살던 집과 남의 손에 넘어간 문전옥답을 모두 찾아 주었고, 그때의 조사령, 조범에게는 쉰마지기 옥답과 번듯한 기와집을 마련해 줬다. 마지막 날 밤, 세 사람이 술자리를 함께한 자리에서 쉼 없이 눈물을 떨구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