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회룡사
도봉산의 포대능선 북쪽으로 사패능선이 이어지는데, 회룡사는 사패능선의 동쪽 회룡골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회룡사(回龍寺)는 신라 신문왕 1년(681)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조 무학대사에 의하여 1395년(태조 4)에 처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정설이다.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① 1398년(태조 7)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왕사 무학을 방문했다. 무학은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 때 태조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881년(고종 18년)에 승려 우송(友松)이 쓴 <회룡사중창기>에 전하고 있다.
②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년)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 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것이다.
③ 1384년(우왕 10년)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한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와서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자료 : 회룡사 홈페이지).
서울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회룡골로 들어서면 회룡폭포가 있고, 교량을 건너면 회룡사이다. 다리에 서니 회룔골의 축대와 기와담장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사패능선의 풍경이 매우 친근감이 든다.
사찰 안내판 뒤에 서 있는 고목나무의 밑둥을 보면 그 세월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오른쪽의 선화당을 지나자 좌측에 조그만 연못이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 같은데 절집의 분위기가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2층으로 된 범종각 아래에는 석조(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7호)가 있다. 석조(石槽)는 생활용수를 저장하는 사찰의 필수시설이다. 이 석조는 규모도 크고 외양도 깨끗해 조선시대 석조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극락보전 앞에는 5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6호)이 있다. 15세기 조선왕실의 발원으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석탑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반듯하게 지어진 극락보전은 그 창호가 매우 아름답다. 극락보전 앞에는 능소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다.
극락보전
극락보전의 창호
극락보전 내부
화사한 능소화
극락보전과 이웃하여 대웅전이 있다. 그 규모나 내부가 비슷하여 어느 전각이 본당인지 모를 지경이다.
대웅전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이의 뒤쪽에 위치한 삼성각도 절의 규모에 비해 매우 크다.
절 집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연못에서 뒤돌아보니 전각의 배치가 상당히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회룡골을 오르내리며 그냥 종종걸음으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회룡사에 들러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읽힌 전설도 되새겨 보고 또 석조(石槽)에 흐르는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면 한결 기분이 전환될 것이다.(2008. 7. 1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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