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는 2024년 12월 24일 해미국제성지를 찾게 되었다 차를 강가 쪽으로 된 곳에 정차하고
해미국제성지 지하1층으로 들어가니 문폐 없는 초가집이 우측으로 나오고 조금 더 들어가니 요한 바오로 2세
동생이 나와 서 나를 반겨준다
이어서 지하 1층 해미 국제 성지 사무실이 나오고 스원 원형건물이 소성당이고 2층은 대성당이라 고 안내푯말을
보고 들어가 내부를 관람하고 나와 서쪽으로 이어지는 정원길을 걸으니 해미국제성지의 역사를 알기기 쉽게
만들어 놓은 순교자 역사관을 돌아보고 이곳 성지가 조선시대 종교박해로 많은 이 지역 사람들이 순교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었고 해미 읍성 안에 충청 병마절도사가 근무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해미읍성안에 가톨릭을 믿고 복음을 전파한다 하여 많은 이 지역 사람을 붙잡아 놓고 신문하거나 처형이 자행되었음을
알게 한다 해미음성 안의 큰 회화나무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받고 죄를 물어 처형하고도 모자라 해미읍성 앞
개울가로 모셔와 물이 생매장하였던 곳이었다
해미국제성지 내 정원 여기저기에 순교자를 을한 비석과 생매장웅덩이가 보존되어 당시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던가를 알려준다 당시 해미음성 병마절도사는 정부지침에 의하여 죄를 받고 처형했는가 하면
이름 없는 많은 가톨릭 인들을 붙잡아와 해미음성 병마절도사가 임의로 많은 이들이 더 죽어갔다고 하니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어 해미읍성성지를 두루 경내를 돌아보고 다시 해미읍성옆 개울로 이어지는 걷기를 30분 정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이내 차로와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해미국제성지를 돌아보니 이곳이 바로 해미성당이었고 용한 바 오르 2세가 해미에 오셔을 때
이곳 이미에서 국제청소년 가톡릭 대회가 있었음을 새삼 알며 해미는 이처럼 해미읍성과 가톨릭 신자들이 가톨릭이란 이름을 너무나 큰 박해가 자행되었던 역사적 장소로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해미읍성과 해미읍성성지에 대하여 인터넷 배가 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해미국제성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사건 중 일부입니다
해미국제성지(海美國際聖地,)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 1로 13에 위치한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 순교 성지
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여숫골'이라고도 불린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천주교도 색출과 처벌의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와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해미현 관아 관할지역에서 붙잡힌 천주교도들은 해미읍성으로 끌려왔는데,
1872년까지 6년간 이어진 박해기간 동안에 붙잡힌 천주교 신자 약 1,0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잔인하게 처형 또는 생매장됩니다
1935년 서산성당 범바로(P, Barraux) 신부가 순교자들의 유해중 일부를 발굴해냄으로써 관군에 의해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발굴된 유해는 상홍리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져 와 보존 중이다. 성지 조성은 천주교 신자들 대상으로 홍보, 모금 활동을 벌여 부지를 확보하고 건립을 시작해 2003년 6월 17일 완료하였다.
2014년 로마 교황청은 해미 순교자 3명을 가톨릭교회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로 추대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자로 추대된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을 때 해미순교 성지도 직접 방문한 국제적 역사적 명소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