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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 (113)코가 닮았네

한마음주인공 2022. 11. 23. 15:47

오늘 고교동창 이재혁님이 카톡으로 &&&  야화 (113)코가 닮았네   &&7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 작은별밭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야화 (113)코가 닮았네 

허대감은 오늘도 산삼·사향·녹용을 넣고 정성 들여 달인 신혈보정탕을 마시고 나른한 봄날 오후에 낮잠 한숨으로 원기를 북돋운 후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안방으로 갔다. 부인도 음양호합탕을 마시고 목욕재계하고 금침 위에서 대감을 기다렸다.



7일 만의 합방이라 허대감의 기세는 등등했고 부인도 등줄기에 땀이 났다. 

용하다는 신의의 처방대로 다섯 첩약을 달여 먹고 7일마다 합방하기를 일곱차례나 치렀는데도 부인은 입덧을 하지 않았다. 

허대감은 술잔을 들이켜고 나서 한숨을 토했다.
“기어코 대가 끊기는구나. 내 죽어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조상님들을 대할꼬.”
부인이 사랑방으로 건너와 대감과 마주 앉았다.
“대감, 제가 이 집안에 들어와 출산을 못하니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시앗을 보셔서 대를 이으십시오.” 


대감이 큰돈을 주고 자식을 낳아 줄 처녀를 구해 살림을 차렸지만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 부인이 대감에게 말했다. 

“대감, 청양산 견비암에서 7일 기도를 해 태기의 효험을 본 아낙들이 많다는 소문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리 퍼졌답니다. 저도 한번 다녀올까 합니다.” 

이것저것 안해 본 것이 없는 터라 허대감은 별 기대도 하지 않고 “부인 뜻대로 하시오” 하며 한숨만 토했다. 이튿날, 마당쇠가 나귀 고삐를 잡고 언년이는 안방마님의 옷가지 보따리를 들고 뒤따라 견비암으로 향했다. 첩첩산중 견비암은 조그만 암자다. 


‘똑똑 똑또르르~.’ 목탁을 두드리며 스님이 법당에서 나와 허대감 안방마님을 맞았다. 코가 주먹만하고 기골이 장대한 스님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법당 아래 숙소로 안내했다. 나귀 고삐를 잡고 걸어온 마당쇠와 옷보따리를 들고 뒤따라온 언년이는 저녁 수저를 놓자마자 곯아떨어졌지만, 허대감 마님은 목욕재계를 한 후 소복담장을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청정수 한그릇을 떠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소쩍새 소리만 요란한 밤 깊은 삼경인데, 갑자기 촛불이 꺼지며 은은한 목소리가 법당 불상 뒤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청양산 산신령이 보낸 삼신할미니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고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마님이 법당에서 나왔다. 7일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님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허대감과 합방을 하고 나서 몇달이 지나자 입덧을 하더니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서당에서 나온 허대감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삿갓을 눌러쓴 스님을 만났다. 건네 잡는 스님의 손이 따뜻했고 마주 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스님도, 허대감 아들도 코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