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오직 가려내고 선택함을 싫어할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애착하지만 아니하면
막힘없이 툭 트여 밝고 환하리라.
지극한 도란 무엇인가. 사람이 가장 바라는 바의 인생이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가장 바라는 바의 인생이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바른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신심명의 저자 승찬(僧璨;?-606)대사는 첫 구절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며 궁극의 문제인 지극한 도를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지극한 도는 오직 가려내고 선택하는 일을 경계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말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툭 트여 명백하리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한평생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려내고 선택하는 일이다. 그것이 범부들의 모든 살림살이다. 언제나 머리 굴리고 헤아리고 제고 저울질하고 틀에 맞춰보고 내가 그어놓은 선이나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가늠해보는 일이다. 그리고는 가려내고 선택하고 또한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일로 세월을 보낸다. 머리 굴리고 헤아리고 가려내고 선택하여 미워하고 사랑하는 삶은 언제나 편협과 편벽과 치우침과 집착과 빠짐이 따른다. 편협과 편벽과 치우침과 집착과 빠지는 일은 반드시 비교와 대립을 불러온다. 비교와 대립은 또한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은 그대로가 고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바라는 바의 행복하고 만족한 인생은 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모든 존재의 좋고 나쁨과 선하고 악함과 있음과 없음에서 벗어나서 존재의 중도적 안목으로 부정할 때 부정하고 긍정할 때 긍정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치우침 없이 수용하여 조화를 이룰 때 우리들이 바라는 바의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지극한 도의 삶이 보장될 것이다. 지극히 간단하고 쉬우면서 또한 지극히 어렵다.
마치 강은 양쪽의 언덕에 의해서 강이 존재하고 강을 따라 배를 운행할 때도 양쪽의 언덕이 있으므로 가능하다. 그러나 양쪽의 언덕 그 어느 곳에도 배가 가서 머물면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양쪽의 언덕을 이용하되 이쪽 언덕에도 머물지 말고 저쪽 언덕에도 머물지 말아야 배가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세상은 온통 상대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상대적 관계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중도적 삶이 보장된다.
법정스님은 이 구절을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풀었다.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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