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김연우 씨(여 27세, 가명)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다.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과 화려한 말솜씨를 바탕으로 한 대인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대학 때부터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지낼 정도로 가까웠던 친구가 갑자기 이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혼란스럽기만 한 연우 씨, 그에게 고백을 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과연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2달 넘게 혼자 가슴앓이 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다행히 그는 연우 씨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주었다.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뇌 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김연우 씨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까지 2달이 걸렸는데, 한 달 혹은 3달이 지난 다음에도 그녀의 결정은 같았을까? 어쩌면 그녀는 그 친구가 이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고백을 하겠다고 결정하지는 않았을까?’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이러한 의사결정과 관련된 질문들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민하는 순간, 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위 질문들에 대한 뇌 과학자들의 생각은 이랬다. 그녀는 이미 그 친구가 이성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부터 고백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다만 ‘고백을 정말로 해도 될까?’ ‘혹시나 거절을 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등의 생각들로 ‘사랑의 고백’이라는 의사결정이 조금 지연되었을 뿐이다. 김연우씨의 뇌는 이미 ‘고백을 해야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때문에 1달 혹은 3달이 지난 뒤에 결정하든 혹은 하루 만에 결정하든 그 결과는 이미 같다는 것이다. 당신이 고민하는 그 순간,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뇌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 뇌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뉴로 마케팅 - 고객의 심리를 꿰뚫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간의 뇌를 관찰, 잠재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분석했다. 뇌 과학자들은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이 사실은 상당부분 잠재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연구결과를 기업의 마케팅에 접목시키기 위한 시도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를 ‘뉴로 마케팅’이라 부른다.
▶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테스트
소비자의 심리상태와 관련하여 유명한 실험이 바로 코카콜라와 펩시의 맛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 눈을 가리고 시음하는 것)이다. 미국의 마케팅 학자들과 뇌 과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하여 블라인트 테스트 상에 나타난 소비자들의 뇌 반응을 살펴보았다. 먼저 본인이 마신 콜라가 어떤 브랜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모두 동일한 뇌 영역, 즉 전두엽(달콤한 맛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 되었다.
반면, 브랜드를 알려주면서 콜라를 제공했을 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코카콜라를 음미할 때는 전두엽 외에도 정서 및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전전두엽과 해마)가 활성화 되었다. 펩시를 마실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는 소비자의 뇌가 코카콜라 브랜드에 대한 정서와 기억이 펩시 브랜드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코카콜라는 이러한 소비자의 뇌 반응의 활성화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브랜드 파워의 상대적 우위를 지속시켜 나가고 있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선호 브랜드를 무의식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 무의식이 제품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뉴로 마케팅의 핵심은 이처럼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성의 측정’에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조나스 카플란(Jonas Kaplan) 박사가 실시한 광고와 관련된 실험이다.
▶ 맥주광고 테스트
그는 미켈럽(Michelob) 맥주광고를 보는 동안 미국 여성들의 뇌 반응의 활성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미켈럽 맥주의 광고에는 멋진 여성들이 등장해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여성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고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이 광고 이후 미켈럽의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카플란 박사의 결론은 이렇다. 대다수의 미국 여성들이 그 광고에서 젊은 여성들이 터치다운을 한 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에 ‘공감(Empathy)’을 했다. 가령, ‘그래, 미식축구 한 뒤에 마시는 맥주가 최고야!’ 혹은 ‘나도 다음 번에 미식축구 한 다음에 맥주를 마셔야겠다’ 라고 공감하는 미 여성들의 미켈럽 맥주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뉴로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성을 측정함으로써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런 뉴로 마케팅을 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뉴로 마케팅의 활용분야는 ▶ 제품 디자인 개선
뉴로 마케팅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제품의 디자인 개선 부분이다. 혼다는 최근 기발한 디자인의 오토바이를 출시했다. 혼다 ASV-3 제품명의 이 오토바이는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마치 사람의 화난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이 디자인 되었다. 미국 UCLA 대학 마르코 야코비니 교수는 사람에게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의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뿐 아니라 느낌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제품에 특정한 감정을 투영하였을 경우 뇌에서는 특정한 영역이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혼다에서 화가 난 사람의 얼굴을 띈 제품을 디자인 한 이유도 이와 같다. 즉,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화가 난 얼굴의 오토바이를 보게 된다면 운전자(혹은 보행자)의 뇌가 특별히 이를 민감하고 빠르게 인지하여 대처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fMRI를 이용한 실험결과, 얼굴모양 디자인의 경우 상대편 승용차의 운전자가 오토바이를 발견할 가능성이 무려 43%나 향상되었다. 이처럼 뇌 연구가 제품 개발 시 디자인 개선의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 광고효과 분석
마케팅에 있어서 광고효과를 분석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을 살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실시해 온 광고효과 분석, 즉 설문 조사 및 인터뷰 등과 같은 방법으로는 소비자의 구매패턴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속 마음과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뇌의 활성화 정도를 알아보면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광고효과를 분석할 수 있다. 뉴로 마케팅에서 대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방법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추적하는 아이트래킹(Eye-tracking)이다. 실험에 참여한 소비자들에게 특정한 기기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다음 그 소비자가 바라보는 곳이 어디인지 모니터 상에 나타나게끔 하는 것이다. 우측 사진은 구글과 네이버의 웹 지도 서비스 이용자의 시선을 추적한 결과이다.
네이버와 구글 모두 시선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이용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용자들의 시선은 검색페이지 상단에 집중되며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시선집중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네이버의 경우 하단부분의 경우 시선집중도가 상당부분 높게 유지되는데 구글의 경우 하단의 경우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는 네이버와 구글이 제공하는 컨텐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네이버는 검색 키워드에 따라 뉴스, 블로그, 이미지, 동영상 등의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페이지 하단에도 집중을 하게 된다. 반면, 구글의 경우 검색결과를 관련성 및 정확성에 따라서 일렬로 줄을 세우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상단에서 찾게 되면 굳이 하단부에 집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업체는 이와 같은 이용자들의 아이트래킹(Eye-tracking)을 통하여 자사 홈페이지의 컨텐츠 및 광고를 배치를 효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즉 소비자의 시선 집중도가 높은 부분에 핵심 컨텐츠 및 주요 광고를 배치시키는 것이다.
▶매장 디스플레이 전략
고객들의 시선추이를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 매장의 동선 및 디스플레이이다. 일반 소매점에서 소비자들이 실제로 물건을 구매할 때 구매결정이 내려지는 장소를 ‘포스(Point of Sales; POS)라고 부른다. 고객이 구매를 준비하는 방법과 형태는 구매 장소(POS)에 의해서 달라지게 되는데,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의 저서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Brain View)’에 따르면 전체 구매의 약 35%만이 소비자들의 계획에 의해서 이뤄진 소비인 반면 65% 정도는 판매장소에서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이뤄진 구매다.
뇌 과학자들은 일반 소비자들의 이러한 구매패턴에 착안하여 매장의 동선 및 디스플레이를 전략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가령,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POS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몸과 시선을 이동하며 물건을 고른다. 이는 대뇌 기저핵 속에 있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때문이다. 우리 몸의 오른쪽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왼쪽 뇌의 도파민의 농도가 더 높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오른쪽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또한 할인정책을 실시할 경우, 빨간색으로 가격표를 인쇄하면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빨간색을 전투와 공격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빨간 글씨는 ‘가격파괴’의 기대를 주며, 해당 가격표에 시선이 고정된다. 이처럼 고객들의 시선추이를 활용하여 매장의 동선 및 디스플레이를 전략적으로 구성한다면 매출증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뉴로 마케팅의 미래 엿보기: 구매욕구를 높이는 옥시토신
뉴로 마케팅 분야에서 특히 주목 받는 호르몬이 있다. 바로 옥시토신(Oxytocin)이다. 이는 뇌하수체 후엽에 있는 호르몬으로 지금까지는 여성의 자궁수축 및 젖 분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06년 스위스와 미국 과학자들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옥시토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남학생 178명을 대상으로 ‘투자게임’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실험집단의 남학생들에게 옥시토신 호르몬을 주입한 다음 각각 32센트짜리 투자티켓을 준 뒤 “3배로 불려주겠다’고 투자를 권유했다. 이 ‘투자게임’ 결과, 옥시토신 투여 그룹이 약 17%나 더 많이 투자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과학적으로 옥시토신 호르몬이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강화한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옥시토신 호르몬을 기업의 영업측면에서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품에 대한 신뢰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옥시토신이 타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면대면으로 영업활동을 하든 혹은 매장에서 소비자를 상대하든 옥시토신 호르몬을 조금 살포하면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매출 증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렇다. 백화점의 각 매장 입구에 공기 청정기 속에 옥시토신을 살포시 뿌려주면 소비자들의 뇌 속에는 판매원 및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서 제품구매 욕구가 훨씬 증가될 수 있다.
혹자는 ‘그런 방법은 불법이 아닐까?’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판매행위를 규제할 법 조항은 없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인간의 생활규범을 앞질러 가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옥시토신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제품판매가 아닌 ‘신을 믿으라’는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기 위하여 옥시토신을 사용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불쑥 “신을 믿으시오”라고 하면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옥시토신을 활용하면 믿음이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는 정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기업들, 뉴로 마케팅에 주목하라
뇌 영상의 촬영, 뇌파 조사, 시선추적 등의 기술이 아무리 진보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 마음을 100% 읽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뉴로 마케팅을 활용한다면 소비자들의 뇌 반응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구매 여부 및 패턴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뉴로 마케팅을 향후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 연구, 특히 인간의 잠재의식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은 대부분 그 사안을 인지하는 순간 결정되고 이러한 행위는 잠재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하버드 대학의 잘트먼 교수 역시 “인간의 사고는 95%가 무의식 적인 상황에서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서 진행되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는 향후 뉴로 마케팅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영역이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인간의 뇌는 인류가 처음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진화가 거의 멈춰서 인류 초기의 뇌와 현재의 뇌의 발달 정도는 큰 차이가 없다”며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뇌 과학의 영역이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까지 앞으로 뇌에 대한 연구가 발전할 수 있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아직도 인간의 뇌에 대해 연구할 부분은 무궁무진하며, 따라서 뉴로 마케팅의 활용 범위 또한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남성과 여성, 연령대, 소득격차, 성장 배경 등에 따라 소비활동에 차이를 보이는 소비자들에 대한 뇌 연구가 보다 정교해 진다면 각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