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사

[스크랩] 97년도 12월 두번째 구간

한마음주인공 2008. 9. 25. 15:50
두 번째 구간
1997년 12월
처남과 같이 남원을 거쳐 이곳 주촌마을에 도착한 것이 3시를 넘기고 있다. 지난번의 미정이와의 산행이후 간신히 시간을 내어 그나마 처남을 유혹(?)하여 대간의 한 줄기에 섰다.
처남과 같이 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산에 다니기 전에 생각의 한계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니 신세만 한탄하고 사회만 원망하면서 내 안에 견고한 감옥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열등감과 열패감으로 무장한 견고한 감옥을....
지금 처남은 백수다. 지방대학을 나와 사회가 그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사회가 받아 준 적이 있는가? 사회는 아무도 받아 주지 않는다. 각자가 사회에 참여하는 게 아닐까? 나도 대학가기를 포기하면서 사회를 많이도 원망했었다. 나는 준비가 다 되었다고, 그런 나를 왜 외면하냐고, 그렇게 원망하고 비관하면서 자신 안에 자신을 가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번에 처남과 같이 온 것은 같이 한번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해 보고자 함이고, 또한 극한상황을 견디는 오기를 심어주고, 자신의 생각의 틀을 벗어 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동행하기를 청했었다. 다행히 처남이 순순히 따라와 줘서 설득을 하는 수고는 덜었다. 가재마을 언덕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에서 돌아보니 지나온 대간의 모습이 희미하게 들을 지나고 있다. 흐린 날씨가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다.
수정봉을 지나고 입망치를 지나 작은 산들을 지나 여원재를 향하는데 날이 어두워진다. 생각에는 여원재를 금방 지날 것 같은데 여원재는 나타나지 않고 밤이 먼저 온다. 랜턴을 켜고 밭길을 지나 여원재에 오니 가끔 자동차들이 지난다. 고개의 버스정류장 뒤에 텐트를 치고 마을에 가 물을 구하여 저녁과 곁들여 술도 한잔하고는 젖은 양말과 등산화를 말리느라 시간을 보낸다.



12월
겨울의 아침은 정말 싫다. 따스한 침낭속에서 나갈까 더 잘까를 고민하다가 가야할 길을 생각하고는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마을도 한번 둘러보고 물도 구하고 화장실도 가고 그렇게 아침이 밝아온다.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해뜨고 해지고
봄이 오고 여름 오고 이어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또한 나에게 주어진 시간중의 일부인 것을.....
벌써 몇 년인지 시계를 차지 않고 다닌다. 업무상 시간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정해진 편성표에 의해 방송을 운행하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도 나는 나의 시간을 포괄적인 자연적인 시간만을 허용한다.
허긴 그것도 결국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들이지만 그래도 산에서만은 시간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산에 가는 이유가 자유를 얻기 위함인데 시간에 자유을 억압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두우면 자고 아니 안자면 또 어떤가?
여명이 밝아 올 때 텐트를 걷고 갈 길을 간다. 내가 좋아하는 여명이다. 해가 뜨기 전의 색갈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푸른빛을 띤 하늘색과 대지를 덮고 있던 검은 색에서 밝은 광명으로의 전환기가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는 일찍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일찍 일어나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자.
일찍 일어나서 후배에게 혼이 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도봉산의 야영장에서 일찍 일어나니 할 일이 없다. 모두들 일어날 기색은 없고 직장인들의 가장 큰 위안은 일요일의 늦잠을 아는 나로서는 후배들을 생각해서 조용조용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산에서의
치사용구가 어디 조용할 수 있는가? 얇은 알루미늄 그릇들은 아주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그러고 긴장하고 있는데 후배가 거슬렸나보다. 노인네가 잠도 없이 일찍 일어나서 잠을 깨운다고 궁시렁 댄다. 이런 경을 칠 놈이 있나. 우리 산악회는 그 날 서먹한 아침이 되고 말았다.
자리를 걷고 출발 전 점검을 하니 처남의 등산화가 많이 말라 있다.
밤새 열심히 말린 결과다. 처남은 걱정이 되는가 보다. 해가 뜨기 전에 밭길을 지나고 산으로 들어가니 멀리 고남산이 우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잡목숲을 지나고 험한 바위지대를 지나 고남산에 오니 눈이 많이 싸여있다. 한국통신의 중계소에 잠시들러 이야기를 나눌까하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퉁명스럽다. 등산객들에게 많이 시달려서 일까?
아니면 추운 겨울 때문에 마음까지 닫아서일까?
많이 실망을 하였다. 나도 송신소생활을 알기에 그리고 또한 나도 엔지니어이기에 이야기라도 나누어보려고 했던 나의 마음이 잘못되었던 걸까?
통안재 아래의 사당까지 내려오는 중 내내 그 생각만 하였다. 사당을 보니 공연히 분위기가 괴귀스럽다. 이곳의 분위기는 왜 이럴까?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도 괴귀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매요 마을을 서둘러 온 것은 고남산중계소에서의 일도 있고 사당이 있던 통안재아래의 일도 있고 해서다. 사람이 사는 마을로 대간이 지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느 집은 지붕을 가르고 지나고 있지 않은가? 어느 집에선가는 대간에 누워 자고 있는 집도 있으리라. 마을을 지나고 밭사이를 지나 사치재(아실재)에 도착하니 88올림픽고속도로가 길을 막는다. 이도로는 광주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다. 경부나 호남고속도로와는 다른 느낌으로 운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 터널을 통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도로를 통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처남은 힘들어하고 길은 멀고 마침 차들은 뜸하다.
내가 먼저 건너고 처남을 오라고 한다. 처남도 용기를 내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도로를 건너니 된비알이 나타난다. 땅이 코에 닿을 듯이 가파른 길을 얼마나 올랐는지 훤한 곳에 오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산불이 났음이 확실한 능선에서 몸이 날라 갈 것 같은 바람을 맞고 걷자니 걸음도 잘 걷기가 힘들다. 배낭의 끈들을 잘 단속을 한다고 하였는데도 기다란 끈들이 바람에 얼굴을 때린다. 아파도 끈을 단속할 여유가 없다. 간신히 새맥이재에 도착하여 야영준비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복성이재까지 가고 싶지만 서너시간의 시간도 부담이고 처남도 많이 힘들어한다. 특히 처남은 방수가 안되는 등산화를 신고 있어서 발이 많이 시려운가 보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연료를 써가면서 양말과 등산화를 말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짐을 줄인다고 방수액을 안 가지고 온 것이 화근이다. 사실 나도 동계장기등반이 많지 않고 거의가 러셀이 된 유명한 산을 다녔기에 거의 방수액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처남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을 했어야 했다. 버너를 끼고 양말과 등산화를 말리는 처남은 거의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아 한편 웃음도 나온다. 매형을 잘못 둔 처남의 업보요. 저녁을 준비할 동안 텐트안의 수증기가 꽉차고 땀냄새에 발 냄새에 거의 질식할 것 같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나. 밥과 김치와 조개젓이 다인 저녁을 맛있게도 먹는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이니 이 포만감과 자유, 한가로움, 이래서 산에 다니는 맛이 있다니까.
별도 차가운 새맥이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오늘은 아침에 여유를 부려본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다. 처남도 늦잠을 좋아 하나보다. 그렇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늦게까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몰라.
여유를 부리고 일어나 아침먹고 시리봉을 지나고 철쭉이 많은 복성이뒷재에 오니 아막산성터라 백제와 신라가 쟁탈전을 부리던 곳이라고 한다. 봄에 철쭉이 피면 한 번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과 함께 한번 오리라.
복성이재에 내려와 점심을 먹으려니 아스팔트길을 본 처남은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은가보다. 할 수 없이 마을 슈퍼에 가서 차편을 알아보니 시간이 맞지를 않는다.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인월에 나갔다. 안월의 등산장비점에 가서 연료와 방수액을 샀다. 연료와 방수액의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IMF로 인하여 달러가 오른 여파다. 그간의 등반으로 갈증을 몹시 느낀 처남의 제의로 호프집에 들러 시원하게 생맥주로 갈증을 달랬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처남의 제의를 들어주지 못하는 마음이 무척 아프다. 나는 휴가를 내서 이곳에 왔다. 사실 교대근무자의 휴가는 다른 사람이 그만큼의 시간을 담보하고서야 가능하다. 하루의 휴가도 그러한데 사오일의 휴가는 미움받기 좋은 꺼리가 된다. 그러한 눈치를 감안하고 시작한 백두대간이기에 더욱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처남 혼자서 상경하라는 말에 눈과 추위속에 매형을 두고 가지는 못하겠는가 보다. 다시 따라 나서는 처남의 표정이 웬지 힘이 없다.
흥부전의 무대가 되는 아영면의 흥부마을까지 버스로 와서 복성이재의 슈퍼에 방을 잡았다.
기름보일러인 이 집의 방 값은 많이 올라 있다. 가게에서 몇가지 간식거리를 사고 그곳에 놀러온 사람과 합석이 되었다. 맥주를 사주면서 산에는 왜 다니는지? 백두대간의 의미는 무언지 묻는 사람과의 대화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눈치가 수상하다. 주인아줌마와 더 가까운 것 같다. 방으로 돌아와 있으려니 우리 방에 있는 노래방을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거절했다. 내일을 위해서 우리는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오늘은 신발을 말리지 않아도 되었다. 뜨끈한 방에 젖은 옷들을 널어 말리고 잤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아침을 먹고 방을 나선다. 발아래서 부서지는 얼음을 밟으며 새벽길을 간다. 한나절을 쉬어서인지 처남의 발걸음도 가볍다.
날이 밝아 올 때쯤 치재에 올라선다.
출처 : 된비알 산악회
글쓴이 : 울산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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