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 형님 김경수님이 카톡으로 &&& 정철과 진옥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 작은별밭과 함께 합니다
정철과 진옥
정철은 사미인곡을 비롯해서 조선에서 손꼽히는 시인이다.
선조에게서 술잔을 하사받을 정도로 술꾼이기도 했다.
술에 취하면 바른 소리를 쏟아냈다.
옳지 않은 사람이다 싶으면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면전에서 꾸짖었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좌의정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 하다가
54세 이후에 세자 책봉 문제로 왕의 미움을 받기 시작한다.
선조는 그에게 ‘독철(毒鐵)’ ‘간철(奸鐵)’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 시절 평안북도 강계를 떠돌며 유배생활을 한다.
그때 어느날 한 여인이 찾아왔다.
진옥이란 이름의 기생이었다.
정철의 시문(詩文)을 오랫 동안 사모하던 끝에
그가 이곳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55세에 불쑥 그를 방문한 아름다운 젊은 여인.
왕에게 배척받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대상조차 잃어버린 그에게
찾아온 그의 ‘팬’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진옥은 가야금을 들어 정철의 시를 읊는다.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네.
하늘을 이고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마음 아는 건 백발 뿐이네. 나를 따라 다시 해를 넘기네.]
居世不知世 戴天難見天(거세부지세 대천난견천)
知心唯白髮 隨我又經年(지심유백발 수아우경년)
함경도 먼 곳까지 와서 자신의 詩청원극리(淸源棘裏 청원의 가시울타리 속에서)를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는 감회는 컸다.
자신이 아주 헛살아온 것은 아님을 스스로에게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존경하는 시인을 위해서라면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날 정철은 평소의 호탕하던 성격답게 술을 한잔 한 김에 진옥에게 시조를 한 수 읊는다.
[옥이 옥이라 커든 반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진옥’이라는 이름을 두고 수작을 거는 시조이다.
이걸 뭐라 해야할까. 쉰 다섯의 시인은 호기롭게 자신을 과시해보는 것이다.
‘반옥’은 다듬지 않은 변변찮은 옥이니 시골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여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진품이라고 추켜세운 것이다.
그리고는 옥구슬을 꿰기 위해선 힘있고 날카로운 송곳이 필요할 것인데
자신한테도 ‘살송곳’이 있다고 과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정객이 원색적인 상징으로 시를 들이밀었을 때
진옥은 생끗 웃으며 답가를 내놓는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섭철은 품질이 떨어지는 쇠부스러기이니 반옥이라 한 것에 대한 맞짱이다.
사람들이 철이 철이 하기에 흔해빠진 철이거니 했는데
진짜 만나보니 이거야 말로 진품 철이다.
똑같은 구조로 응수를 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하다.
서로의 이름이 이렇게 기막한 조응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철 뺨치게 야한 마지막 구절을 내놓는다.
나한테 ‘골풀무’가 있다는 것이다.
골풀무는 철을 녹이는 기구이니 그게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살송곳을 들이미는 자에게 골풀무를 슬쩍 보여주며 핑퐁을 치니
이거야 말로 음탕 무인지경이다.
‘녹여볼까 하노라’는 ‘녹아잘까 하노라’가 생각난다.
이 시절 사랑의 오르가즘은 ‘녹는 것’었던가 보다.
옥과 철은 모두 단단한 것이니 평소 삶의 줏대와 지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랑을 만나면 그 모든 굳센 것이 녹아 하나를 이루지 않던가.
야하긴 하지만 이만큼 뜨겁고 본능적인 구애가 동서 고금 어디에 다시 있었던가.
정철은 부인 유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진옥의 이야기를 하였다.
유씨는 진옥에 대한 투기나 남편에 대한 불평 대신남편의 적소 생활을
위로해주는 진옥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답장을 보내왔다.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해인 그해 5월 강계 유배가 풀린다.
송강은 56세로 한양으로 가게 되자 진옥은 반가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송강을 보내는 자리에서 그녀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 중에는 오늘밤 이별하는 이 많으리.
지는 달 쓸쓸하게 먼 파도 속으로 들어가네.
수많은 이들 이별 슬픔 어디서 나누나.
나그네 창에 구름 속 기러기 지나는 소리 헛되이 들리네.]
정철의 부인은 송강에게 진옥을 데려오도록 권했고
또 송강도 그녀에게 그 뜻을 물었다.
그러나 진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강계에서 짧은 인연이나마 되새기며 홀로 살겠다고 말했다.
사랑을 선택한 여인이었던 그는, 정철에게 자신의 운명을
모두 맡기는 게 아니라 사랑을 지켜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정철은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모함을 받고 강화 송정촌에 물러나 있다가 숨진다.
사랑은 짧고 인생은 덧없지만 육담을 주고받으며 생의 쓸쓸함을
달랜 언어의 풍경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 남아 뒷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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